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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힘

무턱대고 시작한 동네 달리기

어린이 등교 프로젝트 <동네 달리기> 첫 번째 이야기

by 아멜리 Amelie

어쩌다 어린이가 스쿨버스로 통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느닷없는 결정이었으나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아침에 나와 남편 중 한 명이 버스를 타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되고 오후에는 아이들 봐주시는 이모가 데려올 수 있어 그리 힘든 통학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아이의 통학 스케줄을 정리하자며 마주 앉았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몇 분이 걸리는지,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구글 지도를 검색하며 시간 계산을 했다. 학교에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 정해졌고,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아이가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30분,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총 한 시간이 걸린다. 여전히 코비드로 인한 재택 중이라 다녀와서도 여유 있게 업무에 착수할 수 있다.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참 하던 중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


"데려다주고 오는 길은 걸어볼까?"


얼마 전 아이 생일 선물로 받은 허리에 복대처럼 차는 러닝용 가방을 꺼내어 교통카드, 집 열쇠, 직불카드와 이어폰을 챙겨두고, 다음날 입을 운동복 바지와 스포츠 브라와 땀이 잘 통하는 재질의 티셔츠 하나를 꺼내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실로 오랜만 아이와 둘이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을 흘러가는 동네 풍경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 학년 올라와 새롭게 사귄 친구들 이야기도 나눴다. 아이는 쉬는 시간에 자주 노는 친구들 이름을 한 명씩 알려줬고, 난 이름들을 외우기 위해 한두 번 입말로 읊조렸다. 마농, 레아, 엠마...


학교에 다다르자 교문 앞에 엄청 많은 아이들이 등교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자전거와 스쿠터를 탄 아이들이 먼저 교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아이는 2년 넘게 스쿨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던지라 이런 등교 모습이 생소했는지 살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자전거와 스쿠터 대열이 끝이 나고 나머지 아이들이 학교 교문을 들어가기 시작했고, 아이는 어깨를 조금 펴고 상기된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안녕'이라 하고 알록달록한 다른 아이들 책가방 속에 파묻혀 학교로 들어갔다.


아이의 작은 어깨가 안 보이는 즈음이 되어 쪼그리고 앉아 운동화 끈을 다시 한번 묶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전날 밤 아이의 버스 노선을 찾아보면서 길을 익혀두었고, 버스 노선대로 걷겠다고 계획을 미리 세워둔 터였다.


세상 모든 아침 햇살은 따스하고 포근할 테지만, 적도의 아침 햇살은 그것보다 조금 더 뜨겁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을 뿐인데 이미 등허리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어깨에 닿는 햇살은 살짝 따끔거릴 정도이다. 아이의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향연이다. 서서히 오르다 보면 이내 내려가는 길로 진입하고,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종아리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어서 한편으로는 기분이 더 좋기도 했다.


아이의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첫날이기에 큰 욕심 내지 않았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마주하면 종아리에 조금 더 힘을 주고 걸었고, 평지가 등장하는 짧은 시간은 달리기도 했다. 구글 지도로 약 3.3 km 되는 거리를 50분 동안 걷고 뛰어 집에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제야 배가 고팠고, 요거트에 바나나 하나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아주 맛나게 먹었다.

지난 2년간 코딱지만 한 베란다에서 비가 오나 해가 내려쬐나 홈트에 매진했다. (다음엔 홈트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겠다.) 홈트도 즐겁지만 달리기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달리고 있다. 그것도 더 흥미진진하게!

당분간 매력적인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 운동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달리기.jpg

* 매일 달리는 길을 육교에서 내려다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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