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솔직해지기로 다짐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까. 좋아하는 사람의 집 앞을 서성이듯 나의 과거 시간을 헤매고 다녔다. 갑자기 기분이 축 처지고 몸도 무거워지기 시작한 2주 전 상황부터 시작해야 하나, 코비드 19로 인해 강제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일상의 많은 부분이 달라진 올해 3월부터 시작해야 하나, 싱가포르로 이사를 한 2018년 3월로 돌아가야 하나.
아마 한국에 가을이 찾아온 탓에 내 마음도 덩달아 울렁거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건네는 인사가 '추워?' '얼마나 추워?'로 시작하면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든다. 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덥기만 한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데 그들은 가을과 겨울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차를 타고 떠나는 것 같아서. 적도 부근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1년 365일 한결같이 덥다. 살아보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날씨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2가지로 요약할 있다. 덥다 또는 비가 온다.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10월 14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는 어제보다 조금 더 더운 느낌이었는데 9시부터 10시까지 한 시간 동안 비가 쏟아졌다. (비가 오기 직전이라 더 덥게 느꼈나 보다. 세상이 단순하니 사람이 이렇게 섬세해진다.)
최근 2주 마음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 안 드는 것처럼 속이 헛헛하고, 생각을 잘라내고 싶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탓에 뇌는 하루 온종일 바쁘고 숨이 차다. 처음 얼마 동안은 이유에 집중했다. 왜 마음이 무거울까, 왜 생각이 끝도 없이 샘솟을까, 뭐가 문제일까.
하루 생활 일정을 돌아보면 하등 문제가 없다. 아침 6시 일어나서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시며 KBS 클래식 라디오를 켜 두고 영어 소설책 한 챕터를 읽는다. 6시 30분 아이들이 차례로 일어난다. 6시 50분 큰 아이가 아침밥을 먹기 시작한다. 옆에 앉아서 글자를 짚어가며 한글책을 읽어준다. 7시 30분 등교 준비를 마친 아이를 스쿨버스에 실어 보낸다. 8시 45분 코스로 짜 놓은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후 등교 준비를 마친 둘째와 인사를 나누고 미팅 준비를 하러 방으로 들어간다. 9시 줌 미팅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180cm 길이의 책상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각자의 노트북을 바라보며 일을 한다. 점심때가 되어 배가 먼저 고픈 사람이 주방에 가서 점심을 준비하고 거실에 있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으며 오전에 있었던 일 중 답답하거나 화가 나거나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나눈다. 오후 미팅까지 시간이 좀 남는 날이면 동네 슈퍼에 가서 장을 봐 오고, 오가는 길에 못다 한 회사 이야기를 더 나눈다. 큰아이가 하교하고 집에 들이닥치는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서둘러 중요한 일들은 마무리를 지으려 애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랑 실랑이를 벌이며 일을 하거나 혹은 오후 업무를 포기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일도 잘 마무리하고, 애들과 저녁 시간도 잘 보내고 잘 재운 날은 드러누워 소설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요가 매트를 깔아놓고 남편과 태양 경배 자세를 한다. 11시가 되면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지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잠을 청한다.
이렇게 생활한 지 7개월이 되었다. 이제 지하철로 출근해 회사에 가는 생활이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동안 재택근무 스케줄에 적응을 너무 잘한 탓에 사무실에 나가는 생활이 더 어색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생활이 너무 좋다. 일은 일대로 다 하면서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도 늘고 출퇴근에 소비했던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어서 좋다.
그럼 왜 마음이 힘들었을까. 최근에 인도네시아에 있는 에이전시와 인도네시아에 있는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하나 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전까지 카톡으로 일 관련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람이어서 충격을 받기도 했고, 인도네시아에 있는 동료가 자살을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또 같은 사고 소식을 들은 탓에 충격이 더 컸다. 아니 이제 더 솔직해져야 한다. 만나서 일을 해본 적도 없는 이 분을 내심 싫어하고 있었다. 카톡 메시지나 전화 통화로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문자나 전화 통화 습관을 유심히 들여다볼 때가 많다. 아마 만나서 미팅을 했다면 상대방의 손짓과 표정을 읽으려 애쓰거나, 옷매무새나 소지품으로 그 사람 속을 들여다보려 애썼을 것이다. 이 분이 카톡 메시지로 질문을 하는 방식이 불편했고, 요구사항은 구체적이지 않아 늘 되물었어야 했다. 그리고 언제나 문장 마침표로 찍은 점이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점을 많이 찍는 사람의 메시지는 뒤끝이 아주 많은 사람처럼 느껴져 대화하기가 불편하다) 아주 간단한 일을 하는데 대화량은 생각보다 많았고, 사소하지만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은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고 지겨웠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혼자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와중에 사고 소식을 들었다. 미안했다. 너무 미안했다. 코비드로 인해 사업이 어려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는 하지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이 분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평가를 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는 내가 가졌던 부정적인 마음 한 구석이 사고에 큰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마음에 달려있던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그분 마음으로 날아가 꽂힌 것 같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괴로웠다.
마음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쓰는 시간이었다. 땅 속으로 축 쳐진 마음 한 구석을 어르고 달래며 생활은 해야 했다. 매일 뜨는 맑은 해를 보며 축 쳐진 입꼬리와 힘이 들어간 미간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일도 해야 했다. 애들과 마주하며 많이 웃으려 노력했고, 부단히 움직여 쳐지는 마음을 추스르려 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도 했다.
나 사는 모습이 나한테도 솔직해 보이지 않았다. 좋은 말들 좋은 생각들로 치장하려 애쓰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나, 괜찮은 척하는 나, 일상을 유지하려 애쓰는 나의 모습 외에 진짜 내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엉엉 울고 싶은 나는 어디에 있고, 스스로에게 못된 말로 질타하거나 손가락질하는 나는 어디에 있고, 미안해서 심장이라도 꺼내어 미안하다고 읊조리는 나는 어디에 있을까. 하루 24시간이 모두 연기하는 내 모습으로 느껴진 순간 땅 속으로 온몸이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니 내가 썼던 모든 글들에 내가 잘 안 보였다. 부끄럽고 부족하고 못난 내 모습들은 내 글 속에 없었다. 늘 나 자신을 솔직한 사람이라 여겼지만 진짜 내 모습이 잘 안 보였다. 그리고 나를 마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 내 마음, 내 모습, 진짜의 그것들, 날 것의 그것들을 찾아보고 싶어 졌다. 코비드 탓에 일상이 단조로워진 탓일 수도 있고,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찾아온 생각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나를 더 들여야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을 좀 만나볼까 생각했지만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떠올려보다 포기했다. 싱가포르에는 친구도 없고, 사람들은 다 바쁘니까. 할 줄 아는 건 글 쓰는 것 밖에 없고, 글 쓰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어서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자기 검열을 하지 않겠다, 이쁜 글을 쓰려 노력하지 않겠다, 생각이 흐르는 그대로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2020년 10월 14일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