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친구를 보내며

보고 싶은 조영이에게

by 아멜리 Amelie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는 토요일 아침에 네 이름으로 메시지가 왔다. 부고라는 단어 옆에 놓인 네 이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너의 부고를 들을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기에 이게 진짜 너의 부고가 맞는지 내가 잘못 본건 아닌지 장례식장과 발인 날짜가 짧게 들어간 부고 메시지를 보고 또 봤다.


열세 살에 너를 만나 마흔셋이 되었다. 호기심 많은 십 대와 방황하는 이십 대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삼십 대를 지나 어른이 되고 있기는 한 건지 나이만 먹는 건 아닌지 헷갈리는 사십 대가 되었다. 그리고 네가 하늘로 갔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너의 집 마당을 거쳐 네 방에서 피아노 연탄곡을 연습하곤 했다. 음악 시간 실기시험을 준비하면서 자신감이 넘쳤던지 우린 연탄곡을 골랐다. 그때 좋은 점수를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아 악보를 읽고 피아노 화음을 만들던 그날만 영화처럼 떠오른다.


좋아하는 노래와 노래를 직접 소개하는 내레이션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고 서로 주고받곤 했다. 너는 음악 디제이처럼 잘도 노래 소개를 했고, 나는 라디오를 듣는 착각에 빠진 듯 네 목소리와 네가 고른 노래를 들었다.


머리가 커지고 생각이 많아진 고등학생 땐 참 할 말도 많았다. 밤새 전화통을 붙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눠도 할 말이 넘쳐났다.


너는 오른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잘도 웃었다. 오랜만에 만날 때마다 이쁘다는 칭찬을 참 잘해줬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했고 애정을 담은 질문을 했다. 그럴 때마다 너는 진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이제는 너에게 무슨 생각을 했었냐고 물어볼 수가 없다. 네가 가고 없는 날이 되었다.


내가 싱가포르로 떠난다고 했을 때 언젠가 단 둘이서 태국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었다. 단 둘이 가서 방콕 시내를 돌아다니고 맛집을 가고 맛난 술도 한잔 하자고 했다. 인생에 언젠가 할 일보다 지금 당장 할 일이 더 많은데 그걸 지키지 못했다.


우리가 서로 나눈 노래들, 생각들, 이야기들이 모두 산산이 부서져 햇빛 조각처럼 흩어져 우리 곁에 머문다. 너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으니 우리의 하굣길도, 수화기 너머 네 목소리도, 편지 속의 너의 글자체도 어느 것 하나 부서져 사라지지 않고 다 떠오른다.


다음 달에 너를 만나면 오랜만에 같이 사진을 찍자고 말하려고 했었다. 나이 드는 우리도 이 정도면 아직 괜찮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자고 말하려고 했었다. 사진 한 장 없는 열세 살의 우리도 마흔셋의 우리도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겨둔다.


조영아, 따뜻한 빛으로 훨훨 날아다니다 언젠가 내 꿈에 한번 와주라. 네 손 꼭 잡고 이제 더 이상 아프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영아, 우리 다음 생에 만나면 한번 더 피아노 연탄곡을 치고 노래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교환하고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밤늦도록 수다를 떨자. 그리고 꼭 태국 방콕으로 여행을 가서 못다 한 이야기 나누자.


너무 늦은 편지를 보내 미안하다.

너를 온 마음으로 안아보고 싶다.


사랑해, 내 친구 조영아

다음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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