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직장생활 3년 9개월 마무리하며
싱가포르에 온 지 십 개월일 무렵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한국 회사여서 한국인 직원도 있고 고객사도 한국 기업이라 온종일 영어를 쓰진 않았지만, 현지 협력사와 팀원들과는 영어를 써야 했기에 심적 부담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인 동료들과 협력사 직원들의 영어는 적응이 필요했다. 외부 미팅을 가면 녹음을 해서 다시 듣고 미팅 내용을 정리할 정도였으니까.
입사 후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촬영팀과 삼박 사일 동안 광고 영상을 촬영했다. 오랜만에 한국땅에서 온 사람들이 그저 반가웠다. 아침마다 촬영팀에게 줄 열대과일을 잔뜩 사들고 갔다. 그들과 현지 로케 담당팀이 섭외한 곳들을 확인하러 다니고, 내가 사전에 섭외한 모델을 카메라 테스트를 하고, 촬영팀을 쫓아다니며 고객사의 사전 확인이 필요한 부분들을 체크하며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통화를 했다.
싱가포르는 언제나 덥다. 촬영지를 따라다니다 보면 등줄기에 이마에 땀이 줄줄 흘렀다. 그런 더위는 일도 아니었다. 이동하면서, 대기하면서 촬영팀 멤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진짜 재밌고 신이 났었다. 같이 뭔가 만들고 있다는 뿌듯함, 끝까지 잘 만들어보자고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 그런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다.
예전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그때 그날들이 떠올랐다. 모든 촬영을 마치고 촬영팀과 회식을 하는 자리였는데 눈물이 핑돌아서 친해진 감독님을 잡고 엉엉 울었다. (그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날 나는 왜 울었을까?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태어나 처음 와 본 싱가포르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다시 일을 해서 너무 기뻤을까. 현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기뻤을까.
어쩌면 늘 일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찾던 사람이어서 일을 하지 않았던 싱가포르 생활 첫해가 생각보다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전히 일을 하고 싶고, 잘하고 싶고, 새로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시도해보고 싶은데 나는 계속 일을 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일에 대한 나의 관점을 조금 바꿀 시점이 온 것 같다. 월급쟁이가 아니라 내가 만드는 나의 일. 나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고 정열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이 또한 잘 할 수 있을거라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