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로 주행
2주 전에 벌링턴(Burlignton)에 있는 H마트에서 콩나물 두 봉지를 사 와서 콩나물국을 한번 끓여먹고 콩나물 나물을 무쳐 먹었다. 우리 아이들의 소울 푸드는 콩나물이고, 3주 동안 한국에 머무를 때 양가 할머니 댁에서 1일 1 봉지의 콩나물을 국과 나물로 먹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그만큼 중요한 식재료라 할 수 있다. 지난 토요일에 콩나물을 사기 위해 캠브리지(Cambridge)에 있는 H마트에 갔는데 콩나물이 없었다! 에 사는 한인 및 캠브리지(Cambridge) 아시아 사람들은 콩나물을 먹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보스턴 내 H 마트에 콩나물 재고가 떨어진 것일까, 섭섭한 마음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오전 근무를 하고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숙소에 온 남편을 회사에 데려다주고 아이 둘을 실어 H 마트에 가기로 했다. 우리의 목적은 콩나물 구입!
보스턴에는 총 세 개의 H 마트가 있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숙소에서 벌링턴(Burlignton) H 마트는 35분(27.1마일), 캠브리지(Cambridge)까지 30분(24.6마일), 퀸시(Quincy)에 잇는 H 마트까지는 20분(16.6마일) 걸린다고 했다. Burlington H마트에 가기로 결심하고 구글 맵을 켰다. 남편이 왜 하필 가장 멀리 있는 곳에 가냐고 물었다. 우선 다녀온 적이 있고, 캠브리지(Cambridge) H 마트는 보스턴 도시 내에 있어서 겁나고, 퀸시(Quincy)는 가본 적이 없어서 겁난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95번 도로를 따라 북쪽을 향해 달렸다. 숙소 근처 인근 10분 거리에 있는 책방이나 대형마트, 도서관은 운전해서 다녀본 적이 있었지만 30분 정도를 달리는 건 처음이었다. 95번 도로는 마치 서울 외곽순환도로 같다. 북쪽을 향해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계속해서 나들목이 등장한다. 95번 도로에 진입하고 처음 만난 나들목 번호는 28A/B였다. 나는 50A/B 나들목까지 가야 하기에 아직 멀었다는 마음에 편안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조금 달리다 보니 운전대를 잡은 손과 어깨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픽업트럭 옆을 달리거나, 픽업트럭이 내 옆을 지나 만 가도 긴장되었다. 가끔 자동차 5대 정도 길이의 트럭이 내 뒤를 따라오거나 내 옆을 지나가면 그것도 긴장되었다. 내가 진출해야 하는 50A/B 나들목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오른쪽에 스쳐 지나가는 나들목 표지판을 보며 숫자를 세면서 또 긴장했다. 픽업트럭 바퀴는 작은 아이 키 정도인데 1m가 약간 안된다. 주차되어 있는 차만 봐도 탱크처럼 느껴지는데 길 위를 달리는 차가 주는 위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는 한국에서 스물일곱 무렵부터 10년 정도 운전을 했다. 서울 도심 운전도 곧잘 하는 편이었고, 저녁에 한남동에 있는 강변 북로 두무개길을 지나는 걸 제일 좋아했고, 친구 밭에 가서 농사일을 도우러 서울에서 의성까지 중부내륙 고속도로도 곧잘 달리곤 했다. 그러고 싱가포르를 가서 5년 정도 운전을 하지 않았다. 싱가포르는 차가 너무 비싸 살 엄두가 나지 않았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 갓난아이를 실은 유모차를 가지고 이동을 해도 힘든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이 넓은 나라에서, 이 큰 차들 사이를 달리려니 심장이 다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H 마트를 향해 북쪽으로 달리다 엉뚱한 나들목에서 빠져서 10분 동안 어딘지도 모를 동네를 헤맸다. 뒤에 앉아 있는 아이가 이것저것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을 던지다가 직진을 했어야 했는데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진출로로 빠진 것이다. 표지판을 제대로 보지 않은 내 탓으로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버럭 아이에게 큰 소리를 쳤다. 내가 운전하는 동안 말을 걸지 말고 얌전하게 앉아 있으라며 화를 낸 것이다. 아이는 그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몇 분 후 정신을 차린 나는 미안한 마음에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미국에서 운전이 처음이라 너무 긴장되고 무섭다며, 나를 이해해달라고 말이다. (글을 쓰는 지금 버럭 하고는 미안하다고 말했던 내가 밉다.)
그렇게 가까스로 H 마트에 도착했다. 휴...... 콩나물이 있었던 진열대로 곧장 달려갔는데 숙주나물만 잔뜩 놓여있었다. 아뿔싸... 보스턴 콩나물 재고가 다 떨어진 것인가. 야채 코너를 모두 샅샅이 뒤졌지만 콩나물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굳이 여기서 살 필요도 없는 파 한대를 사고 소고기 한 근을 사고 H 마트를 떠났다. H 마트 근처에 있는 책방에서 애들이랑 책 구경하고 놀다가 스타벅스 커피를 한잔 사들고 다시 숙소를 향해 길을 떠났다.
요즘 보스턴은 오후 4시 30분이면 해가 진다. 4시쯤 길을 나서면서 해가 쑥 빠지면 운전하는 게 힘들 것 같다는 걱정부터 앞섰다. 보스턴 사람들 퇴근시간도 4시 30분일까. 서울 외곽순환도로 같은 95번 도로에 차가 많았다. 그렇게 한참 앞만 보고 남쪽을 향해 달리다가 아뿔싸, 또 엉뚱한 나들목으로 빠졌다. 작은 아이는 잠들어 있었고, 큰 아이는 혼자 조용히 놀고 있었다. 오롯이 내 탓이다. 남 탓을 할 수도 없다. 첫 장거리(?) 운전이니까, 저녁이니까, 아이들을 태우고 가느라 긴장했으니까, 픽업트럭이 옆에 지나가면 무서우니까 등등의 이유를 혼자 생각하며 괜찮다 괜찮다 나를 위로했다. 아까 북쪽으로 향할 때 엉뚱한 나들목으로 빠졌을 때도 아이에게 이렇게 너그러웠어야 했는데 자책했다.
숙소에 다다를 즈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서 무얼 하냐고. 아직 길 위라고 했고, 다행히 숙소 방향으로 잘 달리고 있다고 했고, 많이 무서웠다고 했다. 저녁에 운전을 하다 보니 미국 차들이 상향 등을 주로 사용하는지 눈이 부셔서 백미러로 뒤를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차선 변경을 할 때 거울을 봐야 하는데 반사되는 불빛이 너무 강해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다. (차체가 높아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날은 어둡고 애들은 뒷좌석에 모두 잠들어 있고, 유리창에 뿌옇게 김이 서려 히터를 서투른 손동작으로 히터를 켜면서 내가 지금 H 마트를 다녀오는 것인지 담력 테스트를 받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집에 돌아와 H 마트에서 사 온 파와 소고기를 냉장고에 넣어두며 내일은 소고깃국을 끓여 먹고, 숙소에서 애들이랑 책 보고 농구공 놀이나 하며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틀 연속 장거리(?) 운전은 건강에 해로울 것 같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남쪽으로 향하는 하향선의 나들목 번호는 홀수로 줄어들었다. 북쪽을 향할 때는 제대로 못 봤는데 H마트로 빠지는 나들목이 50A/B였으니 아마도 상향선은 짝수로 늘어나나 보다. 하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