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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힘

아이가 아프다

by 아멜리 Amelie

어제 이불을 사러 가기 전부터 큰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토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고, 소파에 드러누워 놀기도 했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기도 했다. 우선 해열제를 한번 먹이고 두고 보기로 했다.


이불을 사고 돌아오니 아이 상태가 더 안 좋았다. 대충 밥을 먹이고 재우려 눕히니 숨 쉬는 게 조금 불편하다고 했다. 급하게 후릭소타이드와 벤톨린 스프레이를 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작년 11월 어느 새벽, 아이가 나를 깨웠다. 숨을 쉬기 어렵다며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해가 뜨면 동네 병원을 갈 수 있다고 다시 재울까 하다가 오죽 힘들면 일곱 살 아이가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말할까 싶어 남편에게 응급실에 가는 게 좋겠다며 둘을 보냈다. 밤새 아프지도 않은 작은 아이 이마를 쓰다듬으며 남편의 연락만 기다린 밤이었다.


아이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코비드 테스트를 했고, 산소포화도가 92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보통 산소포화도가 98, 99 정도라고 하니 심각한 상황이었고 의사는 아이가 빨대로 숨을 쉬고 있는 느낌일 거라 했다. 결국 아이는 입원을 했다. 각종 검사를 했고 코비드 바이러스는 아니고,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 감기 바이러스라고 했다. 보통 이런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오면 콧물 조금 흘리고 기침 조금 하고 지나가기 마련인데 아이는 다르게 반응을 하는 것 같다며 의사는 폐호흡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외래로 다시 방문해 호흡 검사를 했고, 의사는 천식이 약간 있다고 했다. 이 대화가 모두 영어로 진행되어 내가 이해를 제대로 한 건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어봤다.


“만약 학교에서 아이에게 천식이 있냐고 물으면, yes와 no 중 yes 라 답하면 되나요?”

의사가 그렇다고 답하며 아이가 아직 어리니 정기적으로 관찰하자고 했다.


싱가포르에서 지낼 때 아이를 힘들게 한 건 높은 습도였다. 아이를 지켜본 의사들은 높은 습도가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했다. 특히 우기가 되면 정신을 바짝차리고 제습기를 켜 두고 습도 관리에 신경을 썼다. 우기에는 나도 뭔가 불편한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아이 상태가 나빠질까 늘 불안했다.


보스턴에 와서 왜 안 좋아졌을까? 엊그제 놀이터에서 놀면서 갑자기 오랫동안 찬바람에 노출된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환절기나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 이것도 폐에 영향을 준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아이가 아프니 서글퍼졌다. 싱가포르도 의료비가 만만치 않지만 응급실 정도는 양육자인 내 마음 편하고자 갈 수 있었다. 똑같이 기침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집보다 병원에 아이를 눕혀 두면 내 몸은 고생스러워도 마음은 편했기 때문이다.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는 36개월부터 48개월 사이에 4번이나 입원을 했었다. 미세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고, 몸속에 있는 모든 장기가 튀어나올 것처럼 기침을 했다.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고, 응급실은 더 비싸고, 엠뷸런스는 절대 타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여태껏 듣다 보니 병원을 마음대로 못 갈 수 있다는 상황이 속상하고, 병원을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늘어갔다. (오늘 남편이 회사 보험을 등록했다고 했고, 이 말을 듣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아이가 눕고 싶어 했다. 컨디션이 나빠지는 게 느껴졌나 보다. 해열제를 주고, 벤톨린 스프레이를 하고 이마를 쓰다듬어줬다. 잠깐 자고 일어난 아이가 퇴근하고 온 아빠에게 한마디 건넸다.


아빠, 아파서 미안해.


저녁 준비하다 이 말을 듣고 울컥했다. 아니야, 이건 미안해할 일이 아니지, 그냥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되는 거지. 이틀 아팠으니 내일은 진짜 좋아질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소셜 시큐리티 넘버도 아직 안 나왔고, 이사도 못 들어갔고, 가정 주치의도 없는 상황이 새삼 외줄 타기 하듯 불안하게 느껴졌다.


내일 되면 다 좋아질 거야. 우리는 주말에 코스트코에 가서 이사 준비를 위한 살림살이와 너희들이 갖고 싶어 하는 두두 인형도 살 수 있을 거야. 다 좋아질 거야.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7시에 한다며 그때 꼭 보여달라고 했다. 티브이 프로그램 예고를 보고 기억을 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보며 아이의 이마를 또 쓰다듬는다.


내일 되면 다 좋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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