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이불 구입하기
미국에 오자마자 구비해야 할 품목 중 하나가 겨울 이불이었다. 5년 가까이 싱가포르에서 여름 이불만 쓰다가 겨울 이불에 대한 감을 잃었다. 5년 전 한국에서 내가 어떤 이불을 썼었나 떠올려봤다. 작은 꽃무늬가 아기자기한 이불을 신혼살림으로 장만했다. 이불 커버를 씌웠다 벗길 필요가 없고 물빨래가 가능한 이불이었다. 구스 이불과 극세사 이불을 어디서 선물로 받아서 가지고는 있었는데 자주 쓰진 않았던 것 같다. 큰아이가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기관지가 좋지 않았다. 병원에서 진드기를 방지하고 먼지가 덜나는 이불을 쓰라고 해서 알레르망 이불을 썼다. 그 이불들은 싱가포르로 떠나면서 모두 친정에 갔고 엄마와 아빠 몸을 잘 덮어주고 있다.
한국에서 이불을 하나 살까 망설였지만 주변에서 쇼핑하기 좋은 미국이란 나라에 가는데 굳이 여기서 왜 사냐며 채근했다. 그래, 쇼핑하기 좋은 나라라고 하니 나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이 마음으로 여기 왔다.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화 밑창이 다 닳으면 버리고 새운동화를 산다. 누군가 물려준 가디건을 한참 입다가 보풀이 너무 심해서 끝내 버렸고, 가디건을 대체할만한 웃옷이 있어서 일부러 가디건을 사지 않았다. 회사 갈 때는 거의 교복처럼 입었다. 까만 바지에 흰 셔츠. 아침에 옷 고르는 것도 시간이 아깝고, 갑자기 미팅에 불려 나가도 복장 문제가 없는 차림새, 까만 바지 서너 개와 흰 셔츠 서너 개를 돌아가며 입으며 나름 느낌에 따라 골라 입기도 했다. 환경과 경제를 고려했을 때 물려 입는 게 최고라 여긴다. 얻어 입는 옷이니 간수할 때 신경을 덜 써도 되고, 내가 굳이 고르지 않을 스타일을 입을 수도 있다. 그리고 쇼핑하러 어딜 나가지 않아도 되니 그게 제일 좋다.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미국에 와서 며칠 동안 대형마트들을 몇 개 둘러봤고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물건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면 좋을지도 머릿속으로 정리해뒀다. 장을 보러 가거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야 할 때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찾아보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당장 이사를 하면 없는 것 중 하나가 겨울 이불이어서 이불을 장만하러 길을 나섰다. 남편이 출퇴근길에 봐 둔 매장이 있다며 그리 인도했다. bed & bathbeyond라는 매장이었는데 이름부터 전문성이 느껴졌다.
’ 이불이나 하나 사야지 ‘에서 시작된 쇼핑이었고 미국 매장에 들어가는 것이니 영어로 ‘blanket’만 떠올렸다. 그런데 blanket은 담요, 소파에서 까무룩 잠이 든 아이를 덮아줄 때 쓰는 느낌의 그 담요였다. 그것도 신발 브랜드로 유명한 UGG였다.
살짝 당황하며 상품을 분류하는 표지판을 열심히 읽었다. comforter, duvet, fitted sheet, sham 등이 눈에 들어왔다. 홑이불, 솜이불, 풍기인견, 삼베, 구스, 요와 같은 단어에만 익숙한 터라 머리가 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불을 사기 위해 영어 공부가 필요했다.
comforter, 지금 보니 솜이불, 차렵이불이다. 면이불도 될 수 있고 구스도 된다. comforter를 이불 커버에 넣어 쓰기도 하고, comforter 위, 아래로 얇은 이불을 깔고 덮고 쓰기도 한다. 즉, comforter에 사람 몸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도록 한다는 것.
duvet, duvet는 omforter와 비슷한 솜이불을 말하고, duvet cover는 이불에 씌우는 이불 커버를 말한다.
fitted sheet과 flat sheet이 있는데 fitted shery은 이불 끝에 고무줄로 처리되어 있어 매트리스를 감쌀 수 있는 매트리스 커버를 의미하고 Flat sheet은 매트리스를 감싸는 용도로 사용하긴 하는데 고무줄이 없고 침대 모서리에 쑤셔 넣어야 하는 매트리스 커버다. 여기다 top sheet도 있는데 이불 제일 위에 까는 거라고 하는데 왜 까는지 잘 모르겠다.
Sham, 베개가 있고 그 베개를 꾸며주는 또 다른 배게라고 하는데 왜 베개를 꾸며주는지 알 수가 없다. 여하튼 외국사람들은 침대에 베개를 여러 개 두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comforter와 duvet cover, fitted sheet과 욕실 발매트를 샀다.
아이들이 껴안고 잘 인형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일 사러 나가 볼 생각이다. 기관지가 안 좋아 털 많은 인형을 모두 버리고 왔는데 같이 잘 인형이라니. 휴… 최대한 털이 없는 녀석으로 찾아봐야겠다.
아, 그리고 우리 집 짠돌이는 늘 내가 뭘 좀 사려고 하면 싼 걸 추천해주는 경향이 있는데 오늘 이불 사러 가서는 아무것도 추천을 하지 않아 좀 의아했다. 저녁을 먹을 때 왜 싼 거 사라고 하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미국 달러로 계산을 하니까 얼마나 많이 비싸고 싼건지 감이 없어서 선뜻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했다. 별거 아닌 이불 하나지만 가격으로 뭐라 하지 않고 내가 사고 싶은 걸 사서 너무 기뻤다. 너무 기쁜 나머지 저녁 먹으며 와인을 두 잔 마셨고 오늘은 태양 경배 자세는 못하겠다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에 이불 산 이야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