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사이 심하게 앓았다. 큰아이가 크게 아프고 말쑥한 얼굴로 일어난 아침부터 바통 터치한 듯 아프기 시작했다. 상체 뼈 사이사이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것이 돌아다니는 듯한 몸살이었다. 한인마트에서 사 온 쌍화탕을 데워 마시고 이불속에 웅크리고 누워 끙끙 앓으면서 어서 낫게 해달라고 하늘 끄트머리를 잡고 기도했다. 아이들은 내가 아픈 걸 알고 서로 전쟁(?)을 멈추고 다정하게 지냈다.
큰아이가 아프고 내가 아픈 즈음 우리들의 비쥐엠이 있었는데 바로 장수탕 선녀님과 알사탕 뮤지컬 OST 였다. <장수탕 선녀님>은 큰아이가 아가였을 때부터 둘째까지 몇 년째 즐겨 보는 백희나 작가의 동화책이다. <알사탕>도 백희나 작가 동화인데 한국에 살 때 큰아이에게 읽어주고 조카네 주고 오는 바람에 둘째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하지만 백희나 작가의 다른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한국에 가면 꼭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뮤지컬 관람이었다.
지난해 겨울, 우리는 장수탕 선녀님 뮤지컬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손꼽아 기다린 공연인가! 그때 당시 아이들의 반응은 살짝 뜨뜻미지근했다. 공연 보고 나오는 길에 굿즈를 파는 곳을 더 진지하게 대하던 모습… 나에게 그 한 시간은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 장수탕 선녀님이 덕지와 한바탕 실컷 연못에서 놀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었다. 어릴 때 할머니 옆에 앉아 파나 부추를 다듬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날들이 떠오르거나,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나면 곧이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던 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녀님이 덕지에게 이렇게 노래한다.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친구
그런 너를 이제 만나
그런 너와 다시 찾게 된 이곳‘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할머니한테 편지를 띄웠는데 그때 이렇게 썼다.
‘할머니 다음에 우리 다시 만나면 친구로 만나.
내가 할머니 이야기 다 들어줄게 ‘
장수탕 선녀님 OST를 듣고 있으면 눈물이 핑 돈다. 할머니 생각이 나기도 하고, 선녀님과 덕지의 만남과 우정이 애틋해서 마음이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장수탕 선녀님 OST를 다 듣고 나면 알사탕 OST 가 시작된다. 다행히도 지난가을에 한국에 갔을 때 아이들과 알사탕 뮤지컬을 볼 수 있었다. 그때도 아이들은 뮤지컬보다는 굿즈에 더 관심을 보였다. 나는 이번에 또 무한 감동을 받았다.
주인공 동동이가 문구점에서 알사탕을 사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알사탕은 각기 다른 무늬를 가지고 있고, 일사탕을 깨물어 먹기 시작하면 그 무늬를 가진 무언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알사탕에도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동동이가 핑크빛 사탕을 먹기 시작하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 ‘동동아 잘 지내지’ 이렇게 인사를 하며 노래가 시작된다. 할머니는 하늘나라에서 친구들이랑 잘 지낸다며 동동구리도 잘 지내라고 하며 할머니는 떠난다. 그러고 동동이가 마지막 인사를 한다. ‘할머니, 또 만나‘
이 노래를 듣는 내내 울었다. 잘 지내냐고 묻는 말도, 또 만나자는 말도 왜 그렇게 가슴이 콕콕 들어왔을까. 사람들과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와서 그랬던 것일까. 세상을 떠나고 없는 이들 중 다시 한번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동동이와 아빠의 이야기도, 동동이가 친구에게 같이 놀자고 용기 내어 손을 내민 이야기도 모두 감동이었고 눈물을 줄줄 흘렀다.
그런데 뮤지컬을 볼 때에는 시큰둥했던 아이들이 지금에 와서 왜 이렇게까지 OST를 즐겨 들을까. (지난 주말 전후로 나흘을 뮤지컬 OST만 듣고 산다.) 뮤지컬 장면을 다시 떠올리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이어 붙이고 있는 것 같다. 가사를 외우고, 큰소리로 뮤지컬 공연을 하듯 따라 부르고, 자기들 이야기로 개사해 부르기도 한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아 시원~~ 하다’ 할 줄 알고, ‘목욕 가야지’를 ‘놀이터 가야지’로 개사해 부른다. 어쩌면 며칠째 우리 셋이 뮤지컬 배우가 되어 우리들의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 집을 구해 숙소를 탈출했다. 하루 온종일 청소하랴 애들 밥해주랴 놀아주랴 정신이 없다. 이것도 곧 끝이 보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