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멜리 Amelie Jan 11. 2023

아이의 공부 목표가 내 목표는 아닙니다만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요즘 나는 지쳐있다.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고 (한국은 퇴근 시간이어서 동료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다), 큰 아이의 등교를 도와주고, 늦게 일어난 둘째의 아침 식사를 도와주고,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간단하게 하고, 점심을 챙겨 먹고, 작은 아이와 두어 시간 산책 및 운동을 하고, 작은 아이와 잘 그리지도 못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지문이 사라질 때까지 종이를 접거나, 목청 터져라 책을 읽어주고, 하교하고 돌아온 큰 아이의 간식을 챙겨주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큰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고, 저녁을 먹고, 집정리를 하고 애들을 씻기고 재우고, 책 한자 읽거나 요가로 몸을 풀려다가 쓰러져 잔다. (남편이 일상 대소사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나 굳이 이 글에는 등장시키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가 그리울 틈도 없고, 화장실 갈 때나 꺼낼 수 있는 이북 리더기를 조금 더 자주 꺼내보고 싶은 마음뿐이고,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조용히 앉아서 1시간만 있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점점 더 새벽 일찍 일어나 어두운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두 가지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데, 여덟 살 큰아이에게 ‘공부란 무엇인가’와 다섯 살 작은 아이에게 ‘학교란 무엇인가’이다. 오늘은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큰아이는 싱가포르에서 3년 동안 프랑스 학교에 다녔다. 프랑스어를 듣고 이해하고, 책을 읽을 수 있고, 본인의 생각을 유창하진 않지만 표현할 수 있고, 실수는 하지만 쓸 수도 있다. 프랑스어는 영어와 달리 동사변형이 많고 여성형 남성형이 있어 배우기 까다로운 언어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가 3년을 익혔으니 미국에서도 계속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보스턴 시내에 프랑스어 학원이 있지만 가는데만 1시간 걸린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배울 기관이 없기에 온라인 프로그램도 찾아봤다. 온라인으로 스피킹 연습은 해볼 수 있겠지만 이왕이면 커리큘럼이 있는 수업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프랑스 교육부에서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만든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학년별로 수업을 신청할 수 있고,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인 아이는 프랑스어(국어), 수학, 사회&도덕과 비슷한 수업을 듣고 있다. 8개의 모듈이 한 해 프로그램이고 모듈이 끝나면 자체적으로 시험을 치고 시험지를 교육부로 보내야 하고, 우리나라의 고3에 해당하는 수업까지 들으면 대입 시험을 칠 수 있다. (굳이 고3까지 이 수업을 듣게 할 생각도 없고, 프랑스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치게 할 생각도 자신도 없지만 사람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 어떻게 끝날지는 해봐야 한다.) 


사실 아이는 프랑스어 수업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또 안 하는 거지만 하기 싫진 않다고 한다.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수업과는 별개로 그저 프랑스 파리에 한 번 가보는 게 아이의 꿈이다. (그 나라에 가 본 적도 없는 아이가 그 나라 커리큘럼을 가진 학교를 다녔다.)   


이 수업을 옆에서 봐준 지 한 달이 넘었다. (나는 소싯적 프랑스어를 조금 배웠고, 아이의 교과서를 조금 읽고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정도이고, 나의 한계는 여기가 아닌가 싶다.) 새 학년은 9월 시작인데 우리가 12월에 프로그램을 신청한 바람에 7개월 만에 1년 프로그램을 모두 끝내야 하는 엄청난 숙제를 껴안았다. 


마치 수주한 대형 프로젝트 스케줄 짜듯 수업 일정을 정리한 결과 주말을 포함해 매일 수업을 들어야 6월 중순에 끝낼 수 있다. 매일 하루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앉아서 공부해야 한다. 매일 삼시 세끼 밥 먹듯 말이다.  매일 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이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고,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하기 싫다거나 하지 말자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주말 아침이 되면 아이에게 물어본다. (하기 싫다고 할까봐 나름 조심스레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은 몇 시에 프랑스어 공부할까?”

“산책 다녀와서 4시에 시작하자, 엄마.” 


그럼 그날은 4시부터 한 시간 반 정도 공부를 한다. 한 달 정도 지난 지금 아이는 하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공부하다 말고 화장실도 가고 물도 마시러 가고 소파에 가서 스트레칭도 하지만 하기 싫다며 징징대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어제는 나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수업을 봐주다 말고 왜 이렇게 못 알아듣냐고 한마디 했다. 글을 잘 읽으면 뭘 해야 하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을 텐데, 제대로 안 읽는 태도가 문제라고 했다. 사실 이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이제 그만. 본질을 왜곡하는 말은 하면 안 돼. 여기서 끝내야 해’라는 알람이 머릿속에 막 울리는데 그러질 못했다. 문제를 다시 읽고 답을 찾은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도와줘서 고마워. 엄마 덕분에 문제를 풀었어. 제대로 안 읽어서 미안해’”

“아, 엄마가 너한테 화내서 미안해. 네가 문제 제대로 안 읽은 거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아이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 어른인 내가 참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던 것 같고, 그런 것도 늘 뒤늦게 깨닫고 멈추질 못해서 미안하다.  아이가 뭘 모를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을 늘 한 템포 깨닫는 부족한 엄마라서 부끄럽다.   


오늘 새벽, 토끼처럼 눈 비비고 일어나 아이의 도시락 쌀 준비를 하며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면서 르포 작가 은유 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신 글을 봤다. 카페에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윽박지르듯 가르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정도도 아동학대에 포함되는데 부모들이 잘 모른다고 했다.  이 글을 읽는데 아이에게 더 미안해지고 내가 잘못을 한 정도가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먹는 아이에게 어제 공부하면서 화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내는 건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았을 때 내가 아이에게 화내는 방법을 엄마가 가르쳐주고 있는 거야.


커피를 한 모금 들이마시다 사레가 들려 컥컥거렸다.


아이에게 뭐 하나 더 가르쳐주겠답시고 시작한 공부였는데 나는 먼 훗날 아이가 제 자식을 혼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셈이었다. (학원강사 유튜버가 아이들 공부시킨다며 앉혀 두고는 화내는 부모가 있다면 그 즉시 그 공부 그만하라고 했는데 그게 내 이야기였다.) 


우리 사이에 중요한 건 프랑스어 수업을 매일 한 시간씩 해서 올해 6월에 끝내는 게 아니고, 아이의 학습 태도가 나쁜 것이 아니고, 공부하는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 변화이다. 아이가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원한 것도 아니고, 내가 어쩌면 일방적으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아이에게 전달했고, 아이는 100프로 긍정은 아니지만 부정할 일도 아니어서 순순히 따르고 있었는데 수업을 도와주는 나의 태도가 우리의 가정 학습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한없이 미안해지고 부끄러워졌다.  


오늘도 하교하고 돌아온 아이는 학교와 스쿨버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종달새처럼 이야기를 하고, 책을 한 권 들고 소파에 털썩 앉아 읽다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동생과 이런저런 놀이를 한다. 난 오후 5시가 되면 저 멀리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리듯(이렇게 이쁘게 아이에게 들리면 좋으련만) 


“자 식탁에 모이자, 프랑스책 펼쳐야지.”


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수업을 시작했다. (작은 아이는 늘 곁다리로 모여 앉아 그림을 그리고 오리는 통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 


수업을 하기 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읊조렸다. 


‘아이에게 화내지 말아야지, 이 공부는 아이 것, 내 것이 아니야. 이 아이는 내 것이 아니고. 아이 인생은 아이의 것. 나는 아이가 영원히 믿고 기댈 수 있는 엄마로 남아야 해.” 


우리는 과연 6월까지 이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우리의 관계도 무사해야 할 텐데. 

이제 오늘의 공부를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 되기 싫어서 학교에 가기 싫은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