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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Jan 12. 2023

어른이 되기 싫어서 학교에 가기 싫은 아이

해피보이, 둘째가 드디어 유치원에 갔다. 미국에 온 지 꼭 두 달만이다.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모든 풍경이 슬로모션으로 흘러갔다. 차창 밖 햇살은 별이 쏟아지듯 반짝거렸고, 도로 양쪽 에버그린 나무들은 마치 겨울이 끝났다는 듯 부드럽게 한들거리며 손짓했다. 구불구불 도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도 괜찮지 않냐는 듯 차 속도를 줄여주며 순간을 즐기도록 이끌었다.


집에 돌아와 빨래를 세탁기에 욱여넣고 카모마일 한 잔을 따뜻하게 우려내어 거실 창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쇼팽 왈츠 2번을 틀어 넣고 하루 두세 쪽을 겨우 읽은 책을 펼쳤다. 뒤꿈치로 콩콩거리며 뛰어다니고 옆에 앉아 공룡과 자동차와 기차를 그려달라 하고 백희나 작가 책을 잔뜩 가져와 읽으라고 요구하는 녀석이 없다. 우리 집이 이렇게 고요한 곳이었구나, 처음 알았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전학은 공립학교에 들어가는 거라 수월했다. 둘째는 사설 유치원을 등록해야 했는데 작년 9월 입학 후 중간에 들어가는 거라 자리가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우리 집 바로 앞에 영어와 프랑스어로 운영된다는 몬테소리 유치원에 자리가 있어서 등록을 할까 고민을 했는데 학비를 보고 크게 놀랐고, 학기 중에 입학하지만 1년 학비를 모두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한번 더 크게 놀라고 마음을 접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의 연간 학비가 무료 22,000달러, 한화로 약 2천800만 원, 방학 2개월을 제외하면 매월 280만 원가량을 유치원비로 내야 한다. 갈 곳을 잃은 어린이는 늘 나와 함께 하루 온종일 생활했다. 비가 올 때와 비가 오지 않을 때 일정을 달리 하여 나름 하루를 알차게 보내려 애썼다. (한숨도 동시에 늘었지만 말이다.)


한국도 병설 유치원 자리는 하늘에서 별따기여서 일반 유치원이나 영어 유치원은 학비가 꽤 비싸다고 들었다. 싱가포르도 유치원 학비가 만만치 않았다. 물론 성당이나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 있긴 하지만 꼼꼼하게 체크하는 엄마들은 커리큘럼과 유치원 시설, 선생님 수준 등을 모두 따져 고가의 브랜드 유치원을 선호했다. 나는 그에 비하면 좀 게으른 엄마였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유치원 중 저렴한 곳을 선택했다. 유치원 졸업 후 한국처럼 공립학교를 들어간다면 또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국제학교를 보낸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좋은 것은 언제나 비쌌기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미국 유치원 상황도 마찬가지, 저렴하고 규모가 있는 유치원은 언제나 인기가 많고, 자연 친화적이거나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고급진(?) 유치원들은 학비가 어마어마했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우리에게 몬테소리 가정형 유치원이 하나 눈에 띄었고, 당장 등록할 수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본인 집 1층을 유치원으로 꾸몄고, 혼자 아이 여덟 명까지 돌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토요일 아침, 유치원을 둘러보러 가겠다고 했고,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선생님은 유치원을 둘러보게 도와줬다. 나를 만나자마자 몬테소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냐고 했고, 몬테소리는 들어봤지만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몬테소리는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제안할 뿐 선택하고 참여하는 것은 모두 아이들의 몫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수와 언어, 세상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고 했고, 놀이를 변형하고 더 깊이 있는 놀이를 하는 것 모두 아이의 몫이고 교사는 답을 주기보다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교를 보낼 때 뭘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막 보낸 건 아닌가 싶다. 집에서 가깝고 저렴한 것이 교육 철학과는 동떨어진 너무 현실적인 부분만 고려한 것 같고…… (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면 무엇하리, 지금부터 또 잘 알아보면 되겠지.)


러시아 악센트가 느껴지는 선생님의 말투와 태도에서 정갈함이 느껴졌다. 둘째 아이와의 거리를 지키고 무릎 한쪽을 세우고 앉아 아이 눈높이에서 말을 건넸다. 놀잇감을 꺼내 보여줄 때에나 다른 공간을 소개해줄 때 선생님의 몸짓은 단정함 그 자체였다. (내가 이런 단정함을 좋아하는데 나에게 늘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더 흠뻑 빠졌을 수도 있다.) 우선 유치원이 가정형이라 규모는 작았지만 정원에 야외 놀이터도 있고, 놀이터 너머에는 작은 호수도 있어서 이 정도면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 내부와 집 주변을 정리 관리한 모습에서 선생님의 깔끔한 성격이 보여 더없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학교가 이쁘지 않더냐며 참 좋은 곳 같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시큰둥했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다닌 TPBC에 갈 거야."

"거기는 비행기 타고 가야 해서 이제는 못 가."

"그럼 나는 아침마다 비행기 타고 TPBC에 갔다가 다시 비행기 타고 올 거야."


아이는 아직 변화를 할 준비가 안 된 모양인지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고,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은 나는 그저 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왜 여기서 유치원을 가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다.


"나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어른이 되기 싫어. 유치원을 가고 학교에 가면 나도 어른이 되는 거잖아. 나는 계속 이렇게 작은 사람이면 좋겠어. 큰 사람이 되기 싫어."


아이는 왜 어른이 되기 싫어할까? 이유를 물어봤지만 그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모르겠다고만 했다. 아이가 생각하는 어른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지만 우리의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월요일에 나 혼자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어떻게 교감하는지 살펴보고, 화요일에 드디어 둘째를 유치원에 데리고 갔다. 아이가 신발을 벗기까지 20분이 걸렸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앉은 나에게 어찌나 오래 기대어 있는지 다시 일어서려는데 다리가 저려왔다.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이 모두 종종거리며 다가와 이야기를 하고 말을 거는데 아이는 화가 난 사람처럼 눈길을 멀리 엉뚱한 곳에 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했다. 선생님이 같이 가서 놀이하자는 소리도 듣는 둥 마는 둥, 아주 큰 소리로 자기는 싱가포르에 있는 유치원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하질 않나 여기는 유치원이 너무 작다는 소리를 하질 않나 과연 유치원을 다닐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에 등에서 땀이 났다. 


그러고 보면 첫째는 어딜 가나 혼자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고, 뒤로 힐끔 쳐다보고는 '안녕'하며 외쳤다. 영어를 하나도 모를 때 갔던 동네 성당 유치원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방학 캠프도, 프랑스어가 뭔지도 모르고 갔던 프랑스 학교도 아이는 잘도 갔다. 이런 아이와 너무 다른 생명체를 데리고 학교에 가려니 내가 다니는 게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둘째는 싱가포르에서 유치원을 두 군데 다녔는데 둘 다 처음에 가는 게 쉽지 않았다. 축구 클럽을 한번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긴 축구장에 발도 못 담가보고 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선생님 근처에도 가지 않은 채 적응 시간이 끝이 났고, 친구들이 간식을 먹는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 타자 마자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재미있었어."

"뭐라고? 지금 재미있었다고?" 

"응, 재미있었어."

"그럼 내일은 혼자서도 갈 수 있겠네?"

"응, 내일은 혼자 갈 수 있어."


뭐라고라고라고라고? 난 아이가 유치원에 있는 내내 화가 난 줄 알았다. 왜 자신을 데리고 여기에 왔나요 하며 엄마인 나를 원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유치원을 다닌다고 해도 아침마다 이 아이와 실랑이를 벌일 것만 같은데 그 아침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어깨에 힘이 죽 빠지던 찰나였다. 그런데 재미가 있었다니! 아이 마음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기 전에 유치원에 싸갈 간식 통과 가방과 수저통을 미리 고르고, 간식으로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봤다.


"브로콜리랑 파스타."


아침에 일어나 간식인지 점심인지도 모를 데친 브로콜리와 삶은 파스타를 간식통에 넣어 보여주며 간식통을 여는 방법도 알려줬다. 유치원에 도착해 선생님과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아이는 누나가 가는 큰 학교에 자기는 언제 가냐며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을 크게 한마디 내질렀다. 내가 헤어지며 'I love you, 태오'라고 하자 선생님이 I love you를 한국말로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다. '사랑해'를 알려주고 또다시  아이를 보며 '사랑해 태오'라고 인사하니 선생님도 '사랑해, 사랑해'를 읊조렸다. 


안녕달 작가의 '당근 유치원'도 생각나고,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도 생각나고 오드리 펜의 '엄마의 손뽀뽀'도 생각나고 윤여림 작가의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도 생각나는 아침이다. 해피보이는 매일매일 무사히 유치원에 갈 수 있을까? 

두달 동안 해피보이와 24시간 꼭 붙어 해피하게 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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