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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힘

[혼자 읽는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by 아멜리 Amelie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책을 다 읽고 나서 알았다. 유시민 작가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책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책을 알아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하하하) 십수 년 전에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읽고는 왜 이런 책을 사람들은 많이 읽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어느 드라마인지 영화에 나온 후 광화문 교보문고 핫한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반짝반짝하는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글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원서로 한번 더 읽고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다른 책을 찾아 읽고, 그의 아내인 니콜 클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를 읽고, 그녀의 글에도 흠뻑 빠졌었다.


작년 10월, 한국에 잠깐 갔을 때 교보문고를 둘러보다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만났다. 첫인상은 특별하지 않았다. 넷플릭스의 <해방일지> 드라마와 제목이 비슷하구나 (드라마를 보지 않아 내용은 모르지만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어 제목은 기억한다), 책 표지가 젊구나 에세이인가 정도. 책을 뒤적이다 ‘빨치산’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2022년에 빨치산이 등장하는 소설이라고? 궁금했다.


고등학교2학년으로 올라가는 음력설이었다. 돈은 없는데 식구는 많았던 친가 어른들과 팔촌 할아버지댁에 가서 세배를 하고 칠촌 아재들과 노닥거리고 놀았다. 아재들은 나보다 열 두세 살 많았고, 그중 나는 서울에 사는 아재를 좋아했다. 대구 사투리 쓰는 아재보다 서울말 쓰는 아재가 더 다정해 보였다. 고등학생이지만 공부는 소홀히 하고 독서에 힘을 쓰던 때였다. 다정다감한 서울 아재보다 조금 더 똑똑해 보인 대구 아재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아재는 책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좋아한다고 했더니 호흡이 긴 글을 한번 읽어보라면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추천했다. 지리 시간에 들어본 태백산맥이었다. 몇 권이냐고 물어보니 10권이라 했고, 그 정도면 여름방학 때 읽겠다고 했다. 주제와 내용도 물어보지 않고.


그때 내 손에 쥐어진 태백산맥은 까만색에 양각으로 새긴 듯한 산봉우리 무늬가 도드라진 겉표지를 가지고 있었다. 동네 서점에 가서 1권을 사 와서 하루 만에 읽어버리고 다음날 2권을 사러 갔다. 그렇게 서점을 열 번 오가며 단숨에 읽었다. 그때 알게 된 단어가 빨치산이었다. 역사책에서 본 적 없던 현대사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충격을 받으며 정신없이 읽었다. 거기다 정하섭이 무당의 딸인 소화를 찾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더 큰 충격이었다. (이십 대에 다시 한번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굳이 이렇게까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고, 남자 작가의 욕망이 투영되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했다.)


대학에 입학해 전공과목으로 현대 소설의 이해를 듣는데 교수님이 <태백산맥> 읽어본 사람 있냐고 물어봤고, 손을 들고 보니 나만 들고 있었다. 이 책이 대단한 책인가 싶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알았다. 조정래는 한국 문단에서 엄청난 작가였고, 육촌 아재는 전대협 출신이었고, 내가 다니는 학교 총학생회는 한총련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학교 선배들은 모두 NL 활동을 한다고 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네 학교 선배들은 모두 PD 활동을 한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와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다른 노선을 달리고 있었지만 5월 광주에서 만났고, 민노당을 통해 다시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보성 벌교로 굳이 여행을 갔고, 지리산 종주를 꿈꿨고, 한국현대사를 닥치는 대로 읽고 잊고 그 시절을 이야기로 만든 소설을 찾아 읽고 잊었다.


스무 해가 지나 만난 빨치산 이야기는 많이 달랐다. 이념과 사상으로 똘똘 뭉친 염상진, 하대치도 없고, 얼굴이 뽀얗고 손가락이 가늘 것 같은 김범우도 없고, 이론으로 중무장한 정하섭, 이지숙도 없다. 세상을 떠난 빨치산과 죽음을 앞둔 빨치산과 빨치산으로 인해 사는 내내 고통스러웠던 식구들과 빨치산과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인간인 이들의 이야기, 이데올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렴풋이 형체가 그려지고, 손 끝에 터실터실한 거죽이 느껴지고, 어디선가 콤콤한 냄새가 밀려올 것 같은 사람들 이야기였다.


비전향장기수도 사람이고, 노동은 고역이다.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외치고 유물론 외에 답이 없다고 외쳤지만 논에 모를 심고 밭에서 피를 뽑는 일은 소주가 한잔 들어가지 않는 한 하기 싫은 일인 것이다. 짠해 보이는 사람한테 간이고 쓸개고 내어주고, 뒤통수 한 대 돌려받는 일이 있어도 ’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할 수 있는 건 산에서 보고 또 본 죽음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불씨조차 꺼져버린, 진작에 맛본 패배에서 온 체념이었을까. 아니면 이러나저러나 살아가고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그라들지 않는 애정에서였을까.


책을 덮고 생각했다. 제 아무리 밋밋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들여다보면 어느 한 구석 3D 프린터로 출력한 듯 입체적인 인생을 제각각 살고 있고, 돌부리에 턱턱 걸려 넘어지고 무르팍에 피를 철철 흘리며 살더라도 제마음을 보여주면 마음을 포개줄 사람이 하나 정도는 주변에 있고, 모든 것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생긴 비극인 것 같지만 그 사람이 처한 현실이 지옥이어서 그곳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어 하나로 사람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고, 한 길 사람 속은 열길 물속보다 당연히 깊어 알 수가 없고, 한 인간이 가진 조각조각을 모두 모아 천 조각 만 조각 퍼즐을 모두 맞춰야 사람 하나를 어렴풋이 만져볼 수 있다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사상은 죽었고, 사람은 살아있는 이야기였다.


지난해 다른 육촌 아재와 술을 먹다가 전대협 출신 아재한테 전화를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었을까 아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재의 사상도 죽었고, 아재라는 사람은 살아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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