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30분, 집에 나만 있다. 큰아이는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고, 남편은 둘째를 유치원에 보내주고 출근을 했다. 아침 먹고 나온 그릇을 달그락 씻어 엎어놓고, 빨래를 세탁기에 던져 넣고,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왔다. 52분 동안 7.6킬로를 달리고 집에 돌아왔다.
어젯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면 뭐 할까 생각했고, 다른 건 모르겠고 달리고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지난해 10월까지 1년 가까이 매일 아침 달렸다. 스쿨버스를 타지 못하게 된 아이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게 되었고, 처음 며칠은 아이와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에도 버스를 탔다. 걸어서 돌아와 볼까 하는 생각에 걸어봤고, 그다음 날은 뛰어도 될까 하는 생각에 달려봤다. 생각보다 잘 달렸고, 힘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3km, 그다음엔 5km, 어떨 땐 10km를 달렸다. 싱가포르의 날씨는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고 무척 덥거나 이 둘 중 하나였다. 33도 아침 해를 맞으며 달렸고, 보슬비는 당연히 맞으며 달렸고, 폭우가 쏟아진 날도 달려본 적이 있는데 마치 어린애가 된 듯 신나게 뛰었다. 그렇게 1년을 달렸다. 가끔 마라토너들의 훈련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운동화 브랜드에서 진행하는 러닝 프로그램에 나가보기도 했다. 그렇게 훈련을 조금이라도 하고 달리면 예전과 다른 새로운 자극이 느껴지기도 했다.
정착할 집을 구한 후 언젠가 달릴 거라는 기대감으로 동네를 달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겨울에 달리는 건 처음이라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추위에 반바지와 티셔츠 하나 달랑 거치고 달리는 사람, 잠옷 같은 느낌의 추리닝(이건 트레이닝복이라고 쓰면 그 느낌이 살지 않는다)을 걸치고 달리는 사람, 재킷, 장갑, 모자까지 알뜰하게 챙기고 달리는 사람들, 비가 오는 날 유모차를 끌고 달리는 사람까지 모두 제각각이었다. 아직 추위가 무서운 나는 러닝용 바지와 재킷을 사두고 달릴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이 왔다. 300미터가량 걷다가 뛰기 시작했다. 1킬로까지 달리니 땀이 났다. 이래서 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달릴 수 있구나 싶었다. 3킬로까지는 몸이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허벅지와 코어, 등에는 힘이 잘 들어오는 것 같았는데 발목이 덜 풀린 느낌이었다. 대신 어깨에 힘이 빠지면서 겨드랑이 아래로 날개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상체가 가벼워지고 발란스가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집 앞에 있는 호수를 크게 돌면서 6킬로 정도 달렸을 때, 다음에는 다른 길로 달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속도가 줄어들고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신기한 게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나의 호흡과 몸의 움직임에 집중을 하면 속도가 더 빨라지고,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래서 늘 생각하지만 달리기는 움직이면서 하는 명상 같다.
달리기는 내가 여기 이렇게 살아있고, 움직이고 있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가장 먼저, 나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거울 같다. 엄지발가락, 발바닥, 발목,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코어, 등, 어깨, 팔, 코, 폐, 심장, 무엇하나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다. 몸의 구석구석이 다 느껴지면 내 몸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집에 도착해 쿨다운 스트레칭을 하고 재킷을 벗으니 티셔츠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겨울에 달려도 이 정도 땀을 흘리면 내가 싱가포르에서 흘린 땀은 햇볕 때문만은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따뜻한 물도 너무 뜨거울 정도로 온몸에 열이 나서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애플 시나몬 차를 한잔 마시는데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다.
내일 달리기를 위해 발목 스트레칭을 부지런히 하고 또 새로운 몸의 감각을 느껴봐야지.
벌써 내일 아침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