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산등성이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
라고 2022년 5월 7일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출장을 갔던 나는 남편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했고, 남편은 산등성이가 보일만한 국가에 있는 본인의 회사 다른 사업부를 찾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보스턴 인근 동네에 위치한 이곳 사업부에 채용 공고가 있었고, 온 우주가 도왔는지 미국인도 아니고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인을 회사는 뽑았고, 그리하여 우리는 계획에도 없던 미국에 와서 2022년을 마무리한다.
계획대로 살아지는 게 삶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가 언젠가 싱가포르를 떠날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살았기에 계획대로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끔 엄마와 영상 통화를 하면 내가 여기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한다. (엄마는 미국에 와본 적도 없고, 엄마가 아는 나를 전화기 너머로 느낄 뿐이다.) 남편도 내가 여기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한 달 반 정도 지냈지만 나도 여기 분위기가 점점 좋아진다. 내가 이곳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내 속도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줘서 그런 것 같다. (난 진짜 느리고, 아니지 느려터졌고, 사람들이 흔히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많고, 희한한 걸 좋아하기도 한다.)
오늘은 한해 마지막날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동네 데판야끼 식당에 갔다. 바로 옆에 엄마, 아빠, 아들 둘, 할머니 가족이 앉아 있었다. 우리가 한국말을 쓰니 할머니가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우리가 여기 온 지 두 달이 채 안되었다고 하니 할머니와 아이들 엄마가 동네 산책로, 보스턴 가는 기차, 동네 분위기 등에 대해 소소한 이야기를 해줬다.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는데 여기 사람들과도 친해질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네 식구 모두 각자 2023년에 하고 싶은 일 세 가지씩 적고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 계획, 소망이 모두 이뤄져도 좋고, 다른 엉뚱한 일이 생겨도 좋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해 나갈 거니까!
새해에도 인간과 세상에
다정하고 다정하게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지.
온 마음으로 부둥켜안고 쓰다듬고 같이 웃고 우는 사람이 되어야지.
세상 사람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사진: 새해 계획 세우며 즐거운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