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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Jan 17. 2023

눈을 좋아하는 아이가 태어난 날 새하얀 눈이 내렸다

맑고 밝은 태오에게,


아침에 눈을 뜨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다.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눈이 밤새 내렸고 아침 내내 쉬지 않고 흩날린다.


“엄마, 눈이 눈이랑 만나서 춤추면서 내려와.”


아침을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던 네가 말했다.


어쩌면 눈은 그저 가는 길을 가고 있을 뿐인데 눈이 와서 즐거운 네 눈에 춤을 추며 즐겁게 날아다니는 눈이 보였을지도.


그러고 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하는지에 달렸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태어나고 예순 번 달이 차오르고 기울었다. 네 눈길이 닿은 곳을 나도 좇으려 했고, 네 입꼬리가 올라가면 나도 함박웃음이 터졌고, 네가 두려워하면 네 무서움을 느껴보려 했고, 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 속상한 네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다.


그 사이 너는 한여름 옥수수처럼 쑥쑥 자랐고, 내 마음은 조약돌처럼 보드라워졌다.


나는 아이를 한번 낳아 키워봤다는 자신감과 오만함으로 너를 만났고 너는 나에게 예전에 걸어온 그 길은 모두 잊으라는 듯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 너는 네 형제와는 다른 우주를 가지고 있는 생명이고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경험하지 못했을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덜 오만해지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너를 통해 배웠다.


언젠가부터 너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고, 자라기 싫다고 했다. 어른이 되기 싫고 영원히 지금에 머무르고 싶다고 했다. 단 둘이 있을 때 내가 물었다. 왜 아기로 계속 살고 싶냐고.


“내가 어른이 되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엄마가 죽어서 영원히 안녕해야 하니까. 내가 계속 아기이면 엄마도 지금처럼 엄마로 있고 죽지 않을 테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테니까.”


너는 작년에 세상을 떠난 내 친구의 소식을 듣고 며칠 내내 울던 내 모습과 수원 어느 납골당에서 친구를 만나며 울었던 내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는 그렇게 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수시로 하고 있는 듯했다.


또 어느 날은 화장실에 날아들어온 무당벌레를 발견하고는 어서 밖에 내보내주자고 했다. 왜 밖에 보내줘야 하냐고 너에게 물었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엄마가 걱정할 거야.”


네 인생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엄마인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책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마음이 벅차오르는 감동도 있었다. 사랑은 내가 너에게 주는 게 아니라 마치 깊은 산속 옹달샘이 너인 양 네가 나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네 키가 나를 훌쩍 뛰어넘으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나에게 못 다 하는 날도 올 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인데도 말쑥한 얼굴을 하고 괜찮다고 말하고 이내 뒤돌아 설 때도 있을 것이다.


네 세상이 모두 무너졌다고 느껴질 때, 괜찮은 척할 수도 없을 때, 응석이라도 부리면 마음이 나아질 것 같을 때가 오면 밖에서 힘세고 강한 척하지 말고 엄마한테 와. 그때도 지금처럼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살포시 손 잡으며 온기도 나누고, 웃고 울면서 앞으로 걸어가자.


엄마는 네 우주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너의 다섯 살 생일을 축하하며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엄마가

2022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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