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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Jan 29. 2023

너와 나의 맘마미아

매주 금요일 아이들은 ‘무비 나이트’를 한다. 무비 나이트라 하여 새하얀 벽에 빔을 쏘고 편안한 소파에 드러누워 팝콘을 먹으며 최신 영화를 보는 거창한 시간은 아니다. 일주일 내내 보고 싶었으나 볼 수 없었던 유튜브 영상에 대한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약 한 시간 삼십 분 분량의 어린이 영화를 보는 시간이다. 우리 침실에 있는 구식 티브이로 보기에 침대 위에서 팝콘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샤워와 양치 후 영화 관람을 시작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멈추지 않는 감동을 마음에 담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자신들의 방으로 향한다. 


두어해 동안 금요일마다 무비 나이트를 해보니 나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뭔가 보여달라며 조르는 일이 줄었고, 금요일에 볼 영화에 대해 월요일부터 대화가 가능하며, 네 살 터울의 아이들이 함께 볼 영화를 고르면서 열정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협의한다. 때론 격렬한 의견 충돌이 있지만 대체로 큰 아이의 논리에 작은 아이가 동의를 하며 협의가 진행된다. (말이 이렇지 매번 큰아이가 고르는 영화를 둘이 보는 날이 대부분이라는 뜻인데 이걸 협의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난주에는 수요일쯤 큰아이가 맘마미아 2편을 보고 싶다고 했다. 왜 보고 싶냐고 했더니 짧게 ’그냥‘이라고 하지만 설명을 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듯했다. 


맘마미아는 우리 집에서 아주 인기가 있는, 가족 모두 애정하는 영화이다. 싱가포르에 간 첫해, 큰아이는 다섯 살, 둘째는 돌 전이었다. 우기여서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외출도 힘든 날이 이어지던 때였다. 가족 모두 즐거워할만한 콘텐츠가 있으면 좋을 텐데 생각하다 영화 맘마미아를 떠올렸다. 우리가 모두 좋아하는 노래와 춤이 있고, 엄마와 딸이 주인공이니 괜찮을 것 같았다. 영화를 본 아이는 금세 영화에 빠졌고, 아침저녁으로,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비가 와도, 날이 무더워도 맘마미아 OST를 들었다. 


그 해 마리나베이샌즈 공연장에서 맘마미아 뮤지컬 공연이 있었는데 큰아이와 둘이 관람하고 크나큰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싱가포르를 떠나기 전에는 스웨덴에서 온 가수가 ABBA의 전곡을 부르는 공연이 있었고 온 식구가 함께 관람했다. 공연은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즐기는 7080 콘서트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연세가 지긋한 서양인들이 모드 ABBA 복장을 하고 입장해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흥 하면 빠질 수 없는 우리 가족도 온몸의 지방을 털듯 당연히 흔들다 왔다. 


아이는 올해 초부터 I have a dream을 아침마다 들었다. 제목부터가 연초에 어울려 아침 기상곡으로 자주 애용했다. ABBA의 노래와 가사에는 희로애락이 들어있다. 하염없이 슬프거나 매번 즐겁지만은 않다. 즐겁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사랑이 넘치기도 한다. 우리 삶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아마 그런 이유로 아이도 ABBA의 노래를 골라 듣고 마음이 멜랑꼴릭해지면 영화 맘마미아를 보고 싶어 한 것 같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 영화가 끝나갈 무렵 아이는 살짝 눈물을 흘렸다. 어떤 느낌이 들어서 울었냐고 물으니 이유를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그냥 눈물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맘마미아를 다시 보며 처음에는 소피의 엄마 이야기를 따라갔다. 몇 번을 더 보고는 소피의 이야기를 뒤쫓아갔다. 그 사이사이 소피의 외할머니도 보이고, 소피 엄마 친구들도, 소피의 아빠들도 눈에 들어왔다. 딸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어여쁜 소피의 이야기를 좇아가다 어느 순간 소피 엄마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소피를 둘러싼 이들의 모든 이야기가 지금보다 더 진하게 다가오는 날이 아이에게 곧 올 것처럼 아이의 세상도 넓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음악과 이야기에는 시공간을 초월해 이동시키는 힘이 있다. 몸은 2023년 1월 28일에 머무르지만 과거 어딘가로 마음을 데리고 갈 수도 있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마주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도 해주고,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또는 누군가의 자리에 한번 앉아 보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 그 자리 주인의 마음을 느끼거나 그 사람이 바라보는 나를 볼 수도 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나의 신체를 살펴보듯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내가 아닌 존재의 마음과 상황을 들여다보고 희미하게나마 느끼는 것 아닐까. 공감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음악과 이야기, 예술일지도 모르겠다. 


예술을 기술적으로 이론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분석하고 말로 표현하고 글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림을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인간의 몸짓을 보다가 숨이 멎을 듯 강렬하게 다가오는 무언가를 느낄 수는 있으니까. 느끼고 감동하고 기억하며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우리는 자신 만의 세계를 충분히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주가 흐르고 아이는 맘마미아 1편을 보고 싶다고 했다. 영화를 다 본 아이를 재우려고 보니 울었는지 코끝이 발그스름했다. 어느 부분에서 울었냐고 물어보니 결혼식이 있는 아침에 엄마가 소피의 머리를 빗겨 주고 웨딩드레스를 입혀주는 장면에서 울었다고 했다. 


사실 나도 이 장면에서 늘 코끝이 찡해져서 혼자 훌쩍이곤 했다. 아이가 열여덟이 되면 내 곁에서 멀리 떠나 독립해서 살기를 원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이가 씩씩하게 떠나고 그 빈자리가 너무 크면 어쩌나 하는 마음을 꾹꾹 누르는 나를 미리 보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돈다. 어쩌면 아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고 살고 싶어 어른이 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가족과 떠나는 일도 생길 수 있고 또 그런 다짐을 하는 순간도 온다는 것을 미리 상상하며 눈물을 흘린 건 아닐까. 


굳이 왜 울었냐고 물어보진 않고, 허밍으로 이 노래를 자장가처럼 불러줬다.

잘 자,  훌쩍 자라도 그저 아기 같을 아가.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항상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네

I try to capture every minute 나는 모든 순간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The feeling in it 그 안의 느낌들은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항상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네

Do I really see what's in her mind 내가 정말 그녀의 마음을 다 아는 걸까

Each time I think I'm close to knowing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간 것 같다고 생각할 때마다

She keeps on growing 그녀는 계속 자라네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항상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네


공간이 너무 아름다워 입장하자마자 숨이 멎을 뻔했던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아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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