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나에게 30대 후반은 흰머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늙음과 젊음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고 그저 늙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키와 몸집이 나보다 훨씬 컸고, 신문에 오르내리는 단어로 어른들의 세상을 이야기했고, 나와 다른 세상의 한 영역을 먼저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20년 전 나에게 30대 후반은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이었다. 굴러가는 낙엽을 보면서도 웃는 나에게 그들은 무심하고, 재미없고, 낙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 역시 늙어가는 여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주어진 숙제를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었다.(그러다 IMF가 터졌고, 예상치 않은 숙제에 다들 고통스러워했고, 주저 앉았고, 세상을 원망했다.)
10년 전 나에게 30대 후반은 열심히 돈을 벌며, 가르쳐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돈벌어서 차사고, 집사고, 옷사입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해외여행도 다니고, 정말 많이 버는 사람은 외제차 타고, 집도 여러채 사는 사람들이었다. 배운 게 많거나 가진 게 많거나 경험이 많은 이들은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배운 것고, 가진 것고, 경험도 그저그런 사람이었고, 뭐라도 배워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30대 후반이 되었다. 나이라는 속도를 가진 기차가 30대 후반의 간이역에 잠깐 정차했다. 과거 나에게 30대 후반이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줬던 면면을 떠올려 보니 그들의 무심한 표정이 그럴만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 오지의 음식이 아닌 이상 웬만한 음식은 다 먹어봤고, 꽃피고지고 초록이 성장하고 마지막 이파리가 떨어지고 세상이 죽은 듯 웅크린 사계절을 수십번 보내보니 계절에 기대하는 바가 분명해진다. 수시로 터지는 각종 사건사고, 지도를 봐도 어딘지 모르는 외국 어느 도시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전쟁들에 너무 자주 노출된 탓에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 후반이 주는 긍정의 안락함은 도처에 존재한다. 예전에 시를 배울 때 들었던 '공감각적 심상', '시각의 청각화'와 같은 말이 떠오를 정도로 공감이 확장될 때가 있다. 작년의 봄바람과 올해의 봄바람은 부피감이 다르고,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는 어디서 쉽게 먹을 수 있는 흔해빠진 음식들이 아니며, 해가 갈수록 보고싶은 사람을 향한 절절한 마음은 바닥이 어딘지 모르게 깊어지고 아련해지는 것을 느낄 때면 나이가 들어서 이런 건지 사람다워져서 이런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일상에서 색감, 무게감, 부피, 소리, 촉감이 세밀하게 다른 감정들을 왜, 어떻게 느끼게 되었을까? 여기엔 아이를 키우는 행위가 큰 몫을 차지했으리라. 아이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언저리를 자꾸만 오가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입술을 떼고 단어는 내뱉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지, 밥솥이 해낸 밥알을 씹어 삼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지, 발걸음 하나와 하나 사이는 100m 트랙만큼이나 멀고도 먼 거리였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라는 인간과 당신이라는 인간, 우리라는 인간이 그렇게 쓸모 없고 하찮은 존재는 아니라는 것도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세상 보는 눈의 상하좌우가 조금 넓어지니 감동받을 일도 그만큼 많아지고, 감동의 범위도 깊어지기만 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영상을 하나 봤다. 코딱지들과 놀이터에서 놀다 집에 가자고 할 때 아이들의 답은 한결같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채근하다말고 물끄러미 더 노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원하는 바를 얻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헤아려본 적이 있었다. 내 마음을 그대로 담은 영상이었다. 놀이터 놀이를 마무리할 때 쯤 새롭게 얻은 5분이란 시간이 아이에게 영원보다 긴 호흡일 거라는 나의 상상이 담겨 있었다.
이 영상을 몇 번이나 되돌려 봤는 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노래 테이프였다면 아마 테이프 줄이 늘어졌을거다. 한참 영상을 들여다보다 BGM이 궁금해졌다.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음악 스타일과 영어도 불어도 아닌, 태어나 처음듣는 말들이 절묘하게 어울려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데려가는 상상을 하게 하는 노래.
시규어로스(Sigur Rós)의 Starálfur
과연 이 노래를 몇 년 전에 들었어도 이렇게 감동할 수 있었을까. 그간 후배들에게 알음알음 추천받은 노래들을 곱씹어 들으며 음악 세상의 문을 몇 차례 두드려 본 경험만으로 몰입할 수 있었을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품이 넓어졌기에 귓가를 맴도는 소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 건 아닐까.
태어나 처음 만난 뮤지션이 한국을 찾아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티켓을 샀다. 떼창을 할 수도 없는 가사였기에 무슨 노래인지는 알고 가자는 마음으로 앨범을 찾아 듣고, 과거 공연 영상을 찾아 봤다. 뮤지션 얼굴도 익혔고, 좋아하는 노래 몇가지 제목도 외웠다. 공연 내내 우주를 향해 발사하는 우주선에 내 마음이 실린 듯 격앙했고, 위로 받았고, 흥분했다. 한마디로 엄지 척 내세울 수 있을 정도로 멋지게 즐겼다. 즐길 수 있었고, 즐기기를 해냈다.
30대 후반이 제 속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꽤 새로운 모습의 것들을 누리며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 모르는 게 나오면 무식하다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기있게 찾아본다. 점수를 꼬리표로 성적을 받을 나이는 지났으니 모르는게 부끄럽지 않다. 아는 게 재미있어 보이면 조금씩 더 찾아본다. 안다고 다른 것을 꼭 알아야할 필요가 없으니 더 깊이 있게 알아가는 것에 부담이 없다. 하루에 하나를 눈여겨 보는 일이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 대륙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보물찾기보다 재미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게 내 마음과 계절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는 자체가 황홀하다.
손등 피부가 가끔 늙어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핸드크림을 왕창 쏟아 바르며 쓰다듬어 준다.
"괜찮아, 내 마음은 이십대 한 구석보다 더 감동으로 채워갈 수 있어서 지금이 좋아." 라며 혼자 중얼거린다.
이래서 누군가는 나이가 드는 게 좋다고 했나보다.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