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글을 쓰다

by 아멜리 Amelie

아이가 잔다.


늦은 밤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내린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노트북을 꺼내 들고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유튜브에 들어가 최근에 나온 월간 윤종신 3월호 <마지막 순간>을 플레이한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커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흘려 보내니 뱃속에서 반갑고 뿌듯하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달력을 보니 4월 2일이다. 어느덧 한 해의 4분의 1을 달려왔다. 너무 열심히만 살아서 뭘 하고 사는 지는 잊어버리고 산다. 그래서 얼마전 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정성껏 써내려간 글을 조금씩 포스팅했다. 글이라고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나의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분도 있고, 기다리게 된다는 분도 있다. 그래서 한꼬집의 용기를 내어 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생각의 흐름대로, 바라보고 느낀대로 애쓰며 써내려간다.


작년 2월 글을 쓰겠다며 제일 먼저 한 건 노트북 구입이었다. 장비가 있어야 뭘 제대로 할 것 같은 느낌, 뭐가 제대로 안되면 장비 탓인 것만 같은 느낌은 누구나 한 번 씩 느끼게 되지 않나. 복직한 첫 해의 첫번째 목표로 글을 쓰겠다는 욕심 아니, 욕망과 같은 말을 내뱉었었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것이 일상 유지를 위한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는, 최고 레벨의 인내력을 요하는, 절정에 달하는 감정 균형 잡기를 요하는 일인지 몰랐던 초보여서 가능한 꿈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폭풍우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따뜻한 공기에 차가운 기운이 조금 더해지면 아이는 아팠고, 병원에 갔고, 입원을 했고, 일상은 흔들렸다. 아이 입에 들어갔다 나오는 밥 숟가락과 시계를 번갈아 보며 아침 시간을 꾹꾹 눌러담았다. 해가 지고 사위가 깜깜해질 무렵부터 거실과 방을 오가며 널부러진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어 들고 세탁기에 던져 넣을 때, 팔다리가 쑥 빠져버린 아이의 장난감을 요리조리 끼워맞춰 책꽂이에 나란히 줄 세울 때 울컥 하며 뱃속에서 목구멍으로 올라오던 감정들을 입다 벗은 옷마냥 주섬주섬 추스려야했다.


미안함. 모든 감정의 끝자락에 수놓인 한 덩어리의 글자였다. 퇴근이 늦어져 엄마 젖 한 번 만지지 못하고 잠든 아이, 대충 사느라 온전한 대화나 맑은 눈빛 교환은 사치가 되버린 남편, 아픈 아이와 덩달아 병원 생활을 해야해 회사에 두고온 후배들, 사느라 정신 없어 소홀해진 가족들.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은 언제나 미안함이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알게 된 미안함은 묘한 원망도 섞여 있었다. 난 아이를 낳고 일을 할 뿐인데 세상 모든 관계의 기본 감정이 미안함으로 세팅되는 것일까. 난 잘못한 게 아니라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미안해야한다면 태어난 아이가 잘못한 것일까 아이를 낳은 내가 잘못한 것일까. 미안한 감정에 끝이 있어 언젠가 훌훌 털고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긴 한걸까.


가족과의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연애하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올 때마다, 오롯이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고작 지하철 출퇴근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일상에서 도망가고 싶은데 뱃속에서 나온 아이를 두고 떠나는 일탈에 자신이 없을 때마다 이야기거리를 찾았고 글을 썼다.


글을 쓸 때면 지난 날 나와 꼭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할말이 떠오르지도 않는 상황 속에서도 마트에서 3개에 만원하는 반찬 고르는 눈빛으로 이야깃거리를 찾았고, 주인공을 찾았고, 머릿속 단어와 단어를 글자로 옮기며 살을 붙였다. 사람들의 걸음걸이, 손짓, 입가 미소를 관찰하고, 전화기 넘어 오가는 말들,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들을 엿들으며 사람들 이야기를 찾아 다녔다. 자꾸 찾고 생각하고 글로 적어 내려가다보니 우리네 일상이 생각보다 어여쁘게 보였다. 봄날 개나리꽃처럼 약간은 촌스럽지만 그 때 꼭 피어줘야 마음에 위안을 주는 그런 꽃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일상에서 전하고픈 이야기를 찾아 남기며 나이가 들수록 글의 힘이 늘어가길 기대한다. 조금씩 나아지는 글의 힘으로 누군가의 아픈 마음도 어루만져 주고 싶고,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힘도 되고 싶고, 일상의 힘이 작지만 강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다.


아이가 잔다.

나만의 상상의 시간이 조금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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