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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Feb 27. 2023

미국에서 만난 우리 엄마

지금까지 만나본 중년 여성 중 가장 예쁜 사람은 우리 엄마다. 엄마는 십 년 전 할머니가 되었고 본인 스스로를 ‘할머니’랑 칭하는데 여태껏 본 할머니들 중에서도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다.


내가 첫 아이를 낳고 두 달 후 잠깐 엄마집에 들러 일주일 머무른다는 게 한 달 반 넘게 엄마집에 얹혀(?) 살았던 적이 있었다. 대구 엄마집에 도착한 날 밤, 아빠 운동 기구에 부딪혀 발가락 뼈가 부러졌고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급하게 뼈를 맞추는 수술을 받았다. 대구에서 접지 수술을 가장 잘한다는 병원을 찾아가 수술을 받았는데 난 수술실로 들어가고 엄마는 어느 빈 병실에서 태어난 지 두 달 된 신생아의 똥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모유수유중이었터라 아이를 집에 두고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발가락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마치고 휠체어에 실려 나왔고, 의사는 나의 이름을 외치며 보호자를 찾았다. 엄마가 유모차를 밀며 나를 향해 다가왔는데 의사가 아주 놀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보호자님, 어쩜 이렇게 미인이세요?”


나의 발가락 수술에 대한 것도, 앞으로 있을 진료나 조치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환자의 발가락뼈보다 수술 경과보다 의사가 어쩌다 마주친 엄마의 미모는 대단했던 것이었다.


엄마는 예쁘고 씩씩하다.


엄마는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열세 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 멀리까지 왔다. 입국 심사할 때 받는 질문을 외워서 영어로 대답도 하고, 공항에서 무료 와이파이 연결을 해서 카톡으로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호기심도 많아서 어디든 즐거운 마음으로 씩씩하게 걸어 다니며 둘러본다. 새로운 음식도 꼭 맛보고, 예쁘고 멋진 것을 보면 연신 좋다고 표현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본다.


엄마의 아들이 장애인이 되지 않았다면 엄마는 덜 늙고 덜 메말랐을까.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누다가 ‘죄책감’이라는 말이 등장할 때마다 목이 메어 왔다. 자신이 자식을 제대로 못 키워서 장애인이 되었다는 죄책감, 등산을 하다가 엄마도 모르게 ‘좋다’는 표현을 했을 때 자식은 행복하지 않은데 나만 좋아해서 되겠냐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엄마의 대답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고, 이마저도 엄마 인생의 단면이고, 업보처럼 생각한다고. 여태껏 잘 몰랐던 엄마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모닝 커피를 하며 짧게 쓴 편지를 건넸다.


-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오늘에 집중해서 살자, 먼저 웃고 돌아오는 웃음에 또 웃자, 몸과 마음과 의식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더 자주 움직이고 명상하듯 호흡하고 읽자. -


엄마는 나에게 지금만큼 읽고 쓰고 공부해서 뭐든지 되어 보라고 했다. 대기만성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공항에서 해어질 때 꼭 안아주며 ‘잘살아’ 하며 눈물이 묻은 인사를 나눴다.


2월 한 달 동안 글도 안 쓰고 책도 안 읽고 식구들과 웃고 울고 떠들고 지냈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가 모두 소설이 되고 시가 되고 연극이 되었다. 모두 아침 비행기로 떠났다. 내일 아침에는 빨래를 돌리며 고요해진 집과 친해지려 애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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