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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May 02. 2023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남양군도에서 온 것 같다고 주인공이 생각하는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베를린에서 끝이 나는 걸 기억하지 못했다.


빽빽하게 뭔가 적어 내려 간 책날개를 보니 2008년 4월 14일,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KTX 안이다. 달력을 찾아보니 이 날은 금요일, 엄마가 느닷없이 대구에 한번 내려오라고 한 날이었다. 설에 다녀왔으니 두 달이 채 안된 때여서 의아했고 이유를 물으니 그냥 보고 싶다고 했다.


동대구역에서 내리니 동생이 마중을 나왔고, 직진해서 집으로 행해야 하는데 범어네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어디에 가냐고 물으니 상우가 병원에 있다고 했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이 경대병원에 도착했다. 병실로 올라가니 낙엽처럼 얇아진 엄마가 복도에 있었다. 엄마의 첫마디는 보통 때처럼 잘 내려왔냐는 질문이 아니었고, 상우를 보면 울지 말고 웃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상우를 만났고 힘이 다 빠진 상우의 손을 쓰다듬으며 큰누나가 서울에서 왔다고 웃었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덩달아 웃는 상우를 울음을 참고 바라봤다. 그날은 사고 후 스무 일 넘게 사경을 헤매던 상우가 잠에서 깬 지 이틀 후였고, 엄마는 나를 내려오라고 하고 사고와 수술 후 처음으로 상우의 머리를 깎이고 샤워를 시켰다.


나는 엄마 아빠 여동생 상우의 그 스무 일을 죽을 때까지도 모를 거다. 우리의 스무 일은 각자의 우주에서 각자의 희망과 절망을 버무려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날 대구를 다녀온 후 아마 나는 이 이야기를 끝까지 못 읽었었던 것 같다. 일제 강점기, 광주 5월 항쟁, 87 6월 항쟁, 1990년 소련 붕괴 등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가 쏟아지고 시대에 결박당한 사람들의 삶이 씨실과 날실로 엮여 펼쳐진다.


세상이 그어 놓은 선 안에서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채 그곳을 벗어나려 몸부림치면 칠수록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절망과 인간의 삶은 처음부터 얽히고설켜있어 우주 어딘가에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글 전체에 묻어있다.


책을 덮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과 정민은 계속해서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2008년의 4월에 시작한 책을 2023년의 5월이 되어 다 읽었다. 여전히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시간을 살고 있다. 살고 있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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