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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May 20. 2023

이제, 얼굴 하나 남았다.

이 글은 [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 2]에 참여하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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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부장님’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띠동갑 나이 차이가 나는 신입 사원이 나에게 ‘부장님’ 하며 다가올 때, 나이가 지긋한 고객사 임원이 ‘ 김 부장’ 하며 부를 때,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부장님’ 하며 손짓할 때 슈퍼맨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부장님’일 때 이 세상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없고, 어떤 문제든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미국으로 이사를 오면서 직함과 함께 이름도 잃어버렸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학교 친구 양육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이름보다 아이들 이름에 ‘엄마’를 더해서 나를 기억한다. 심지어 한글 이름은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려워 굳이 내 이름을 누군가 불러주리라 기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길을 걷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면 다가가 ‘하이’ 하고 인사하면 그만인 셈이다. 그런데도 애써 발음하기 어려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고마운 사람들은 꼭 있다.


직함도 없고 이름도 잃어버린 나는 나의 존재를 뭐로 증명하며 살아야 하나. 무심히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날 이 고민이 날아들었다. 굳이 존재를 증명하며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불리던 이름들이 사라지고 난 후 불어 닥친 공허함은 내가 입으로 불 수 있는 풍선보다 컸다.


일찌감치 김춘수 시인은 인간의 이런 마음을 간파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굳이’ 불러주기 전, 내가 가진 것과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늙고, 젊고, 하얗고, 까무잡잡하고, 무표정의, 고른 이를 드러내고 웃는,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간, 희미한 웃음을 따라 입가가 주름진, 부드럽게 쳐진 눈매를 가진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나에게 내 얼굴 하나 남았구나.


누군가 ‘부장님’하고 나를 부르면 슈퍼맨처럼 한달음에 달려간 열정과 누군가 ‘보민아’ 하고 나를 부르면 호기심이 가득한 동그란 눈으로 바라본 내 얼굴, 직함과 이름으로 불리기 전부터 내가 가진 그 얼굴, 직함과 이름에 모두 담을 수 없는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담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어떤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갈지 마음먹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직함과 이름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상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일상을 만들어 가는 순간마다 큰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경력이 단절되면 안 된다는 불안과, 뭐라도 해야 한다며 발을 동동거리는 조바심을 누그러뜨려 준다. 그리고 집중할 것과 기다림이 필요한 것, 심지어 버려야 하는 마음까지도 정리가 된다.


어쩌면 스스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는 과정이 내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닐까 싶은 정도이다. 살고 싶은 여정을 상상하고, 거기에 있음 직한 얼굴을 떠올리고, 나의 마음과 태도를 돌아보다 보면 지금 내가 가진 얼굴에 대해 책임지고 살고 싶다는 다짐도 하게 되니 말이다.  


지난달 보스턴에서 있었던 한국 정부 관련 행사에 현장 스태프로 이틀 동안 일할 때였다. 상체를 반듯하게 세우고, 생기 넘치는 눈빛으로 현장을 뛰어다녔다. 행사장에서 자주 마주쳤던 관계자들이 다가와 나의 소속과 직함을 물어봤다. 현장 스태프로 이틀 일하는 것이라고 하자 정부 기관에서 나온 사람인 줄 알았다며 예전에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으로 넘어간다. 목에 건 네임 카드에는 ‘스태프’라 쓰여 있었지만, 마음은 행사를 기획한 ‘부장님’이었으니까 그 마음이 내 얼굴에 모두 묻어났구나 싶었다.


아이의 학교 행사를 따라가 동네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호기심 가득한 내 얼굴이 내 이름을 앞선다. 새로운 것과 다른 것에 한없이 열려 있다는 내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나면 언어의 벽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누군가는 나에게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인사를 건넨다. 의심하지 않고 넘겨짚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누고 싶다는 내 마음이 읽히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싶다.


얼굴을 가꾸는 것이 내 마음을 둘러보고 살아가는 방향을 정돈하는 일이 되었다. 혼자 있을 때 글자 ‘은’ 소리를 만들어 길게 내뱉어 본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볼에 힘이 들어가고 눈은 자연스레 처지며 웃는 표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파아란 하늘에 고요히 떠가는 구름을 바라본다.


세상을 마주하는 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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