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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Mar 01. 2023

어른보다 나은 아이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다녀오다

해외에서 코비드 시국을 겪으면서 한 가지 얻은 교훈이 있다. 그리운 이들이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을 때 꼭 만나는 것. 국경이 닫히고, 사람이 아닌 물건들만 국경을 넘나드는 날들 동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남을 기약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주는 막막함은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엄마와 긴긴 겨울방학을 맞이한 조카와 특별히 할 일은 없고 새로운 세상을 보는 건 좋아하는 남동생이 2월 1일 미국 동부로 날아왔다. 기차를 타고 보스턴에 가서 시내를 걷고 각종 박물관과 갤러리를 돌아보고, 미국 본토 햄버거를 맛보고, 동네 호숫가를 걸으며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저녁이면 엄마가 한국에서 가져온 시래기로 시래기된장국을 보글보글 끓여 먹고, 미국산 소고기를 구워 와인을 한잔 마시고, 칼칼한 맛을 낸 닭볶음탕을 가운데 두고 돌림노래 하듯 맛있다는 말을 연신 해댔다. 


아이들의 일주일 학교 방학을 맞이해 온 식구가 뉴욕을 다녀왔다. 노래 가사에 ‘뉴욕’이 자주 등장해 제목이 ‘뉴욕’이라 착각했던 노래, 제이지(Jay-Z)와 앨리시아 키스(Alicia Keys)가 부른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는 우리 여행의 비지엠으로 적격이었다.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본 것 같은 맨해튼 거리를 걷고, 허드슨 강을 따라다니는 유람선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사진에 담고, 911 기념관에서 티브이로 봤던 그날의 충격을 잠시 떠올렸다. 뉴욕의 증권거래소 건물은 현실적인데, 밤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유로운 세상이 지구상에 있단다’ 큰 소리로 외치는 듯 보였다. 


뉴욕에는 미술관이 참 많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현대 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등 가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일정상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 곳만 가보기로 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규모도 어마어마해서 모든 작품을 둘러보려면 3박 4일도 모자랄 정도라고 한다. 한국인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할까 말까 고민했다. 아홉 살, 열 살 아이들이 설명을 들으면 이해는 할까, 프로그램이 한 시간 삼십 분이나 걸리는데 아이들이 잘 따라올까, 그 시간에 우리끼리 미술관을 더 많이 둘러볼 수 있지 않을까 등등. 미술관에 간다고 소장품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한 것도 아니니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 더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기울었고 큰아이와 조카, 나, 엄마는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과 1층에 있는 이집트관, 그리스관을 시작으로 중세 미술, 르네상스를 거쳐 인상파, 야수파까지 설명을 들으며 미술관을 이동했다. 현대미술이 궁금한 사람들은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 가는 걸 추천하는 도슨트의 설명으로 프로그램이 마무리되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마주하며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니 작품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였고, 한 시간 반이 짧게 느껴졌다. 


관람하지 못한 작품을 둘러보려니 아이들은 배가 고프고 다리가 아프다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도슨트 프로그램이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밥 먹으러 언제 갈거냐며, 쉑쉑 버거 먹으러 가자며, 다리가 아파서 밖으로 나가는 것도 너무 힘들다며 동문서답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품의 오분의 일도 채 못 보고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떠나야만 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우리의 뉴욕 여행 마지막 일정이었고, 쉑쉑 버거를 찾으러 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뉴욕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타임스퀘어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큰아이와 조카는 미리 짜기라도 한 듯 같은 대답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도슨트의 설명을 복기하듯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보낸 한 시간 삼십 분 코스를 모두 읊조렸다. 자신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들여다보고 도슨트의 설명을 자신들의 입말로 풀어냈다. 그리곤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지 소개하기도 했다. 도슨트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배고프다는 소리만 해대어 도망치듯 미술관을 빠져나온 아이들이었는데 이렇게 즐겼다니!!! 


“다음에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다른 작품도 보고 싶어.
프랑스 남부에 있다는 피카소 미술관도 가보고 싶고.”


그림에 관심이 있는 아이는 다른 미술관도 가보겠다는 계획까지 세웠고, 아이들은 어서 집에 돌아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집에 도착했고, 대충 저녁을 먹고 나니 아이들은 프로젝트를 한다며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집구석구석을 다니며 벽에 종이를 붙이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티켓을 한 장씩 줬다. H&J의 뮤지엄에 와서 도슨트 설명을 들으라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거실에 데려가 A존에 대해 설명을 하고 2층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B존, 각각의 방에서 C, D, E존 설명이 이어졌다. 화장실은 특별 전시가 열리는 F존이었는데 둘째 아이가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본 뉴욕,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과 상황, 단어를 작품마다 담았다. 그림에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마음과 꿈이 있었다. A4 용지에 연필과 사인펜, 볼펜으로 단번에 그린 그림들인데 몇 날 며칠 고민하며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작가들의 작품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메트포롤리탄 미술관을 고작 한 시간 반 만에 나올 때 나는 아이들이 메트로폴리탄을 기억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감상했던 작품을 기억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로 창작하면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경험을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쌓고 있는 중이었다. 미술관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며 얼마나 많은 작품을 봤냐는 건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 작품 몇 개 더 아는 나보다 아이들이 예술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백배는 나으니까. 


엊그제 공항에서 눈물로 인사를 하며 엄마와 동생, 조카는 한국으로 떠났다. 방학은 끝이 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텅 빈 집을 청소하다 벽에 붙어 있는 아이들 작품을 바라본다. 우리 집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되었다. 한 동안 그림들을 정리하지 못할 것 같다. 

A부터 H까지 다양한 주제로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생각과 표정은 연결되어 있다고 작가님은 설명했다.
작가들은 스마일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집 신예 작가의 작품은 화장실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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