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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Mar 15. 2023

우리의 베드 타임 스토리

띠링-


페이스북에 친구의 새로운 게시물이 떴다는 알람이었다. 여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는 남편의 게시물이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 그림을 찍어 올린 듯 보였고, 그 책은 딸아이가 좋아하는 그래픽 노블이었다.  


All's Faire in Middle School Novel by Victoria Jamieson ©아멜리


며칠 후 저녁을 먹으며 물어봤다. 

“갑자기 페이스북에 책 사진은 왜 올린 거야?”

“책 다 읽어주고 마지막 페이지를 보는데 주인공 뒷모습이 우리 애들 같아서 울컥했어.”

 “울컥했다고? 그 정도로 감동적인 이야기인 거야?”

“책 내용도 의미가 있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내 생각이 뻗어나간 거지. 우리는 어쩌다 미국에 왔을까,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여기 잘 왔다고 할까, 뭐 이런 생각들이 쏟아진 거지.” 


저녁 8시, 잠들 준비를 마친 아이들이 자기 전에 읽을 책을 서너 권 챙겨 침대로 올라간다. 크지 않은 침대에 온 식구가 정해진 자리에 눕는다. 아이가 하나일 때 나와 남편은 번갈아 가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큰아이의 책은 남편이, 작은 아이의 책은 내가 읽어준다. 작은 아이가 읽는 책들은 이미 큰아이와 함께 읽은 책이 대부분이기에 나에게는 복습과 다름없다. 가끔 추가되는 책이 있기는 하나 그림 위주의 그림책이 대부분이다.  


나와 달리 큰아이의 책을 전담하는 남편의 독서 범위는 몇 년 사이 꽤 넓어졌다. 내가 작은 아이와 ‘팥죽할멈과 호랑이’, ‘장수탕 선녀님’, ‘그 녀석 맛있겠다’ 등을 무한 반복해 읽고 있지만 남편은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 미래와 꿈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읽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아이가 미국 작가들의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학교생활, 친구들과의 관계, 아이들의 사춘기 감정 기복과 가족과의 갈등과 화해 등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남편은 아이의 책을 읽어주며 자신의 사춘기를 돌아보고, 이야기 속 캐릭터에 대해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과거 자기 경험과 마음을 아이에게 전해주고,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지 헤아리려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여전히 공룡의 포효, 할머니 목소리, 아기 울음소리 등을 성대모사하고 있는데 남편은 아이와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책 읽기를 하고 있으니 베드 타임 스토리에 크나큰 변화가 있는 셈이다. 가끔 저녁 시간에 그들은 그날 밤에 읽을 책을 고르는 대화도 나눈다. 어제 읽은 책이 끝난 모양인지 오늘은 어느 작가의 어떤 책을 읽고 싶다며 아이가 먼저 제안하고 그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해 둘이 대화도 나눈다.   


큰아이 하나만 키울 때 우리는 서울에 있었다. 둘이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와 조금 놀아주다 밥해 먹고 집 정리하고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책 읽기는 덜 피곤한 사람의 몫이었다. 조금이라도 체력이 남은 이가 아이의 책을 서너 권 읽어주고 재웠다. 열정적으로 성대모사를 한 날이면 목에서 피가 나는 느낌이 들었고, 꾸벅꾸벅 졸면서 책을 읽은 날도 수두룩했다. 그때 당시 나는 동네 도서관에서 ‘동화책 전도사’로 활동 중이었고, 남편은 아이들 책이 이렇게도 다양하고 재미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자주 훌쩍였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가 먼저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부모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큰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다 읽은 책인데 아빠가 또 읽어줘도 재밌어?”

“응, 재밌어.”

“왜 재밌어?”

“그냥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게 좋아.” 


남편은 책을 읽으며 자신이 의도적으로 만드는 효과음이 있는데 그걸 듣고 아이가 깔깔거리며 웃거나 입가에 띤 미소를 곁눈질로 볼 때 즐겁다고 했다. 별것 아닌 표현에 마치 코미디 쇼라도 본 듯 반응하는 아이가 그저 사랑스럽다고 했다.   


어른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아이들 침대에 네 명이 다닥다닥 붙어 누워 이야기를 들려주며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살아있음에 감사해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정을 하고 이 먼 곳까지 왔지만, 적응은 녹록지 않고, 온종일 정신은 곤두서 있기에 침대 위에 옹기종기 모여 이 세상에 우리 넷만 이렇게 있으면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다며 되뇌는 시간이 우리의 베드 타임 스토리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남편이 나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애들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줘야 하는 거야?”

“정해진 건 없는데, 애들이 자러 간다며 굿나잇 인사를 하고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갈 때까지?” 


남의 나라에 자리 잡으려 애쓰며 산 지 어느덧 4개월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수월하게, 별문제 없이 정착하는 듯 보이지만 나와 남편은 가끔 울먹인다. 외로움이나 그리움은 이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정이 아니다. 우리 둘은 조타수가 된 듯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매일 살핀다. 밤이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행여나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없기를 마음으로 빈다. 오랜만에 겪는 긴긴 겨울이 끝이 나면 우리도 이곳에 꽤 적응해 있을 거라 믿으며 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 마음으로 저녁마다 아이들의 책장을 넘기며 책장 너머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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