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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Mar 22. 2023

욕망을 가진 엄마, 나에게

아침밥을 먹는 둘째에게 버럭 화를 냈다. 8시 15분에서 30분 사이에 출근하는 남편을 따라 유치원에 가야하는 아이가 8시 30분이 다 되도록 밥을 먹고 있는 아이를 보고 ‘참을 인’자를 세 번 쓰다 말고 어서 먹으라며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가 유치원을 늦게 가서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늦잠을 잤거나 아침밥을 너무 오래 먹어서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내가 계획한 일과가 생각했던 시간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해지면서 내 마음이 조급해졌고 그 표현이 바로 ‘화’였다. 


나의 계획상 화요일은 언제나 분주하다.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고, 집안 쓰레기를 모은 쓰레기통을 길가에 내놔야 한다. 으레 하는 청소기도 돌려야 하고, 이틀에 한 번 하는 빨래하는 날이 오늘이다. 이런 소소한 집안일은 밥 먹고 나면 양치하듯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이고 더 중요한 것은 읽던 책을 계속 읽어야하고, 쓰다 만 글을 마무리해야 하고, 복습하기로 마음먹은 코칭 수업 내용도 살펴봐야 하고, 가장 중요한 달리기도 해야 한다. 


나 혼자 영위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 8시 30분부터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3시 40분까지 7시간 남짓이다. 아이가 아침 시간에 오 분, 십분 뭉그적거리기 시작하면 그 여파는 나비효과처럼 태풍으로 몰아친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나 해야만 했던 일을 못 하거나 미뤄야 하는 일이 생겨 아이들이 모두 잠은 후에 만끽하는 고요한 밤 혹은 내일 일정 조정이 불가피해진다. 


밥을 먹는 아이에게 서둘러 밥을 먹고 학교에 가야 한다고 채근하며 이런 말을 했다.


엄마도 너희가 학교에 가고 나면 공부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해. 너희가 시간 맞춰서 준비하지 않으면 엄마는 하고 싶은 것을 못 한단 말이야. 나도 너처럼 하고 싶은 게 있고, 계획이 있는데 내 계획도 생각해 줘야지. 부탁할게.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땅에는 꽃이 피고 바람은 부드러워지고 하늘에 뭉게구름이 소리도 내지 않고 사뿐히 날아가는데 나도 등 펴고 하늘 한번 볼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냐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내가 매일 고정적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현재 내 업은 다양하다. 아마추어 코치, 프리랜서 마케터, 아마추어 엄마(?!), 아마추어 작가. 게다가 매일 하고 싶은 취미도 있다. 열혈 독서, 동네 달리기와 덤벨 근력 운동. 이 중에 돈이 되는 일은 지극히 적지만 대부분 인생을 살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들이다.   


가정은 식구 수대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유기체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톱니바퀴의 크기와 회전 횟수는 각기 다르지만, 굴러가는 속도는 일정해야 한다. 톱니바퀴의 회전 속도에 문제가 생기거나 이물질이 낄 경우 톱니바퀴들은 삐걱거리며 멈춘다.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과 훈육을 한쪽으로만 제공하는 듯하지만, 부모와 아이는 상호적이다. 우리는 각자 인생의 주체이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최초의 인간관계를 잘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책임을 어느 정도 나눠 가진다.  서로의 안위와 안녕을 위해.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정의한 장 자크 루소의 말이 생각났다. 최초의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 관계와 같고, 아이가 성장하며 아이가 엄마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것도 알아야 하고 엄마도 나와 똑같은 욕망을 가진 인격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고등학교 때 일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아빠가 더 큰 티브이를 사신다는 이야기를 뒷좌석에서 듣고는 자식들 교육에 돈을 더 쓰지 않고 멀쩡한 티브이를 왜 바꾸냐며 한마디 했다. 갑자기 아빠가 격앙된 목소리로 한마디 하셨다.


나도 갖고 싶은 거 하나 가져보자. 너희가 갖고 싶은 게 있듯이 나도 갖고 싶은 게 있다.


그때 처음으로 아빠도, 엄마도 나와 똑같은 욕망을 가진 인격체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이후 여성으로서의 엄마, 남성으로서의 아빠를 또렷이 인식했다. 


나는 왜 밥을 조금 천천히 먹고 있을 뿐인 아이에게 나의 욕망을 인정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을까? 


어쩌면 철들고 이제껏 일을 통해 나의 존재감을 증명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일도, 월급도 모두 사라진 지금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욕망을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나만 끙끙거리며 이고 지고 살다가 몸져누워 버리기라도 할까 봐 조바심이 난 나머지 천천히 밥을 먹고 있을 뿐인 아이에게 ‘나 지금 이렇게 몸부림치듯 버둥거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민낯을 보여줘 버린 것은 아닐까.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이는 나에게 의존하는 대신 독립을 선택할 것이다. 아이가 홀로서기를 연습할 때 나는 선명한 색깔을 한 나의 욕망을 아이에게 보여줄 것이다. 너처럼 꿈을 꾸고 좌절하고 도전하고 실패하며 나아가고 있는 존재라고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꿈을 위해 오늘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응원할 것이다.


기어이 찾아온 봄처럼 나의 방황은 잔잔해지고 마음은 푸근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연료 삼아 호숫가를 온 마음으로 뛰었다.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었다.   


봄마중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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