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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Jul 01. 2023

5. 프랑스 중부 어딘가 Le Puy en Velay

아멜리 인 르퓌앙블레 (Le Puy en Velay)

숙소는 말헤베(Malrevers)라는 동네에 잡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화를 신고 동네에 나갔다. 목초지, 말, 공동묘지, 구시가지 등을 둘러보며 6km 정도를 가볍게 뛰었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를 달리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그걸 해냈다.


동네 어린이 공원에서 그네도 실컷 타고, 작은 빵집에 들러 바게트를 사서 프랑스 사람처럼 한 손에 기다란 바게트를 쥐고 숙소에 돌아왔다. 산책길에 동네 할머니가 인사를 건네 오늘 날씨가 참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네 아침 산책의 정겨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숙소에서 15분가량 떨어진 곳에 르 쀠이 엉 블레(Le Puy en Velay)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이 곳은 프랑스 중앙 산지에 있는 순례길에 있는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를 떠올려 보면, 유명 관광 도시가 아닌 곳,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곳, 역사가 있는 잗은 도시들이었다. 어디를 가나 산과 들이 펼쳐진 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기억에 이번 여행에서 프랑스의 산지가 주는 매력을 느껴보고 싶었다. 지중해 바다를 가기 전에 프랑스 산과 작은 도시 탐방을 먼저 해보기로 했고, 그 첫 번째가 르 쀠이 엉 블레(Le Puy en Velay)였다.


르퓌엉블레(Le Puy en Velay)의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 하나를 받아 동네 가장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프랑스 성모 마리아 상(Statue Notre Dame de France)를 향해 올라 갔다. 1860년대 러시아와 싸운 크리메 전쟁에서 획득한 포탄을 녹여 만든 조형물이라 붉은 철의 색을 띠고 있다. 계단과 오르막길이 내내 이어졌고, 주요 건물들에 표시된 나이를 들여다보니 12세기였다. 약 천 년 전 사람들 손으로 만들어진 길을 걷고 있었다.


오래된 도시와 공간에 들어서면 숙연해지고 몸가짐도 단정해진다. 그 오랜 세월 살아냈을 사람들의 삶이 계단과 건물 위에 켜켜이 쌓여 있을 것 같아서이다. 오래된 도시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후손이 열 번 가까이 바뀐 세월 동안 도시의 계단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이들이 가진 생각과 생활 양식은 지금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혹은 대대로 물려 받은 이 곳의 정서는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길 한가운데 있는 대성당(까데드할, Cathedral)에 들어가 미사를 보는 곳을 둘러보았다. 공기마저 무거운 듯 고요한 곳에 들어서니 아이들도 나누던 대화를 멈추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아이들도 느끼나 보다. 나일롱 천주교인이지만 성당에 들어온 기념으로 초 하나를 켜고, 성호를 긋고 온 세상 사람들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렇게 Statue Notre Dame de France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봤다. 반대쪽에 있는 천 년 된 성당도, 더 멀리 돌산 위에 자리잡은 성도 보였다. 그 옛날 사람들이 커다란 바위 위에 성당도 짓고 성도 쌓아 올렸던 게 그저 신기하고, 돌 위에 성당을 세운 절대적인 종교의 힘이 느껴졌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도 중요했지만 아이들도 우리와 함께하는 도보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 먼 거리는 차로 이동을 하지만 도시를 방문하면 무조건 걸어야 하기에 걸을 수 있다는 아이들의 의지와 열정이 절실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거나 힘들다고 떼쓰지 않고 어른들보다 씩씩하게 풍광을 즐겨서 오늘 하루도 잘 다녔다.


광장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염소 치즈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먹었다. 난 염소 치즈를 아주 좋아하는데 아침에는 염소 우유로 만든 요거트를 떠먹고, 염소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나 크레프를 먹고, 제철 과일인 복숭아와 살구를 먹을 수 있어 먹는 게 즐겁다. 에어비엔비에서 지내보니 저녁엔 간단하게 장을 봐서 식사를 준비해 먹을 수 있어 여행보다 어딘가에 머무는 느낌이 들어 더 좋다.


참! 결혼 십 주년을 하루 앞두고 큰 어린이가 축하 메시지를 잔뜩 써서 거실을 장식했다. 결혼하고 십 년이 흘러 아이의 축하를 받으니 더 멋진 어른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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