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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Jul 06. 2023

10. 인생은 유한하고 예술은 무한하다. 레보드프로방스

아멜리 인 레보드프로방스(Les Baux-de- Provence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기로 하고 정보를 찾던 중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 Lumiéres)이란 곳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 사는 친구가 여기는 꼭 가보아야 한다고 해서 더 알아보기도 전에 여행일정에 추가했다. ‘채석장’인데 ‘빛’으로 뭔가를 한다는 정도만 알고 간 것이다.

 

숙소에서 한 시간가량 달려 산 중턱에 주차하고 ‘빛의 채석장’까지 걸어갔다. 요즘 프랑스 남부의 햇볕은 한국의 가을볕처럼 따갑다. 피부가 따끔거린다 싶을 만큼 걸어 올라가면 빛의 채석장이 나온다. 들어가자마자 깜깜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와 바닥과 벽에 시시각각 펼쳐지는 명화들의 향연에 마음을 빼앗겼다. 우리가 관람한 시리즈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베르메르와 반고흐 작품이었고, 두 번째는 몬드리안의 작품이었다.

 

처음엔 채석장 곳곳을 걸어 다녔다. 바닥이나 벽을 만져보니 차갑고 단단한 돌 자체와 보드라운 돌가루가 느껴졌다. 채석이 끝나고 동굴처럼 비어 있었을 공간을 상상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5층 건물은 족히 되어 보인다. 넓은 공간 곳곳에 여러 개의 기둥이 있고, 반듯한 직선으로만 구획된 공간이 아닌데도 여러 각도로 빛을 쏘아 빈틈없이 빈 벽을 캔버스처럼 활용하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명화의 주요 장면을 모티브로 영상을 기획, 제작한 것도 놀라웠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작품 속 색깔을 뽑아내어 작품의 색으로 채석장 전체를 수놓기도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작품에 몰입했다. 음악과 빛이 만들어 내는 장면들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눈으로 그림을 보고 귀로 음악을 듣고 채석장의 서늘한 기운을 피부로 느낀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릴 겨를 없이 그림을 쫓아다니다 어느 순간 뭉클해졌다.

 

이렇게 수많은 그림과 음악은 세대를 이어 전달되고 변주가 되고 감동을 주며 끝없이 이어지는데 인간의 삶은 찰나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허투루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세상 아름다움을 늘 마주하고 살고 싶다는 욕심도 들었다. 어쩌면 아주 오랜만에 먼 길을 떠난 여행이기에 느닷없이 혹은 계획하지 않은 감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나의 감각기관 곳곳에 흡수해 저장해둔 감동이 세포 곳곳에서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다.



빛의 채석장에서 조금 내려와 언덕을 다시 오르면 성이 하나 나온다. 샤또 데 보 드 프로방스(Château des Baux-de-Provence)라는 곳이다. 성과 궁의 차이를 알고 보니 이번 성은 다르게 보인다. 거기다 12세기 무렵 먼 거리에 대포를 쏘거나 성문을 부술 때 쓰는 무기 등이 군데군데 놓여 있어 이해가 쉬웠다. 어릴 때 잠깐 해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라는 게임 속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성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남프랑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란히 줄 서 있는 포도밭,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들, 더 멀리 하늘과 맞닿은 곳에 바다가 있을 것 같았다. (실제 바다일 수도 있는데 내 눈으로 분간을 어려웠다.)


성벽에 마치 바닷속 산호를 연상케 하는 돌들이 눈에 띈다. 올록볼록한 산호가 그대로 굳어 벽이 된 것 같다. 어쩌면 이곳이 태곳적에는 바다 한 가운데에 있었던 곳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여행했던 프랑스 중부 산지 어느 마을에서 그곳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조개를 활용하고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해변도 아닌 산지에 있는 마을에 조개 모양이라니. 프랑스의 지리적 변화를 찾아봐야겠다.


 

성에서 내려와 까시(Cassis)라는 작은 해변 도시로 향했다. 까시는 20년 전 엄마와 남동생과 여행할 때 간 곳이고, 내가 좋아하는 곳이고, 프랑스 사람들도 격찬하는 곳이다. 만이 많은 곳이라 해변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움푹 파인 곳에 있어 고요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즐긴 해변이 싱가포르의 센토사인 점을 떠올려 보면 아주 오랜만에 자연 친화적인 바다를 만나러 온 셈이다. 우리가 가져온 비치타월을 깔아놓고 놀다가 몸을 적신 물을 조금 털어 말리면 그것으로 해변 놀이가 끝이다. 바닷물을 씻어내는 샤워실도 세면대도 없다. 아주 오랜만에 이런 곳에서 바다를 즐긴 것 같다.


물이 생각보다 너무 차가워서 당황했지만, 아이들은 겁도 없이 몸을 적시고 논다. 아이들은 철썩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헤엄을 치다, 게와 조개를 발견하고, 동그란 돌멩이를 주우며 논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고 웃는다. 이렇게 우리의 하루가 주황색으로 변하는 해와 함께 저문다.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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