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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Jul 09. 2023

1 1. 있는 그대로 예술인 도시, 액상프로방스

아멜리 인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

프로방스 지역에는 예술가들과 인연이 있는 도시가 많다.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도 그중 하나인데, 이곳은 분수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릴 때 여행을 할 때에는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가는 것을 즐기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그림을 보는 게 좋아졌다. 글을 읽으면 머릿속으로 그림이 저절로 떠오르고, 그림을 보면 그림 속 정지된 순간 이전과 이후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였다.  예술이란 결국 각자 다른 방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난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그림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부지런히 움직여 액상프로방스 인근에 있는 라벤더 꽃밭으로 향했다.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라벤더가 피는 시기라 해서 그 시기를 맞춰 왔으니 꽃밭 구경을 해보지 싶었다. 이곳은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인데 꽃밭 한편에서 라벤더 향이 더해진 비누를 만들 수 있어 아이들이 체험하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여행지에서 비누를 몇 개 사서 집에 돌아가면 손을 씻을 때마다 여행지가 생각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직접 만든 비누여서 더없이 좋은 기념품이 되었다.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어여쁜 직원의 질문으로 우리의 대화가 시작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분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오는 9월에 교환학생으로 충북대학교에 간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인스타그램 친구를 맺었다. 내가 비록 한국에 살지는 않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점심을 먹으러 가다 길을 잘못 들었는데 거기서 한국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는 김밥과 떡볶이를 사다 점심으로 먹었다. 주인 언니가 김밥을 싸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20년 전 같은 시기에 앙제(Angers)에서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을 수가! 20년 전으로 추억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먹은 김밥은 이번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세잔의 아뜰리에는 30분 간격으로 약 15명 정도의 인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밖에서 보면 2층 규모로 집이 꽤 커 보였기에 왜 이렇게 운영할까 싶었는데 올라가 보니 2층 화방 하나가 전부인 곳이었다. 우리는 영어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해 입장했다.


세잔의 아뜰리에는 액상 프로방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데 세잔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시에서 떨어진 지역을 원했다고 한다. 지금은 주변에 건물이 많이 생겼지만, 아뜰리에가 지어질 때만 해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벽 한 면이 커다란 창문으로 되어 있어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빛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했던 세잔에게 이 커다란 창문은 더없이 중요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창문 옆에 문을 열면 바로 외부로 연결되는 좁은 공간이었다. 태양 아래에서 실제 어떤 색으로 보이는지 확인이 필요할 때마다 이 문을 열고 캔버스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확인했다고 한다. 매번 문을 통해 건물을 내려가 외부로 나갈 수 없는 노릇인 것을 생각해 보면 아주 괜찮은 발상이 아니었나 싶다. (많은 화가가 이렇게 실제 사용한 색을 자연광 아래에서 확인하는지는 모르겠다)


이곳은 세잔이 생활했던 곳은 아니고 그림 그릴 때만 사용한 곳이다. 그림을 그리러 출근하며 가지고 다닌 도시락 가방도, 세잔이 남긴 그림에 있는 화병도 그대로 전시 되어있다. 이번에 프랑스 여행을 하며 느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의미 있는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걸 잘하는 것 같고,  물건 하나를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도 잘한다. 잘 간수하는 힘으로 현재를 변주하는 힘을 가진 느낌이랄까.



세잔 아뜰리에를 떠나 그하네 박물관(Musée Granet) 로 향했다. 언젠가부터 방문하는 도시에 있는 크고 작은 박물관이나 갤러리 방문이 재밌다. 그 지역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혹은 가장 의미 있는 예술을 쉽게 만날 방법이 박물관과 갤러리 방문인 만큼 어디를 가나 전시 공간부터 찾게 된다.


이곳에서 가장 감동한 작품은 자코메티의 조각이었다. 자코메티의 그림은 처음 봤는데 조각을 많이 닮았고, 자코메티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감동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방문한 박물관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만나다니! 이런 뜻밖의, 예상을 빗나가는 즐거움을 여행에서 만나면 더없이 행복하다.


정물화를 프랑스어로 nature morte (죽은 자연)이라 하고, 영어로는 still life(정지한, 고요한 삶)라 한다. 언어마다 정물화를 다르게 표현하는 게 재미있었다. 참고로 한국어 정물화는 영어(still life)와 독일어(Stilleben)의 뜻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호통드 분수(Fontaine de  la Rotonde) 를 보고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를 떠났다. 도시를 옮길 때마다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


내일은 동쪽으로 이동한다!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20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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