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콜드플레이!
아직도 기억난다. 2017년 1월 4일 오전 11시, 후배에게 콜드플레이와 사랑에 빠졌다는 카톡을 보냈다. 콜드플레이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아침이었다. 후배는 작년 글래스톤베리를 다녀온, 음악과 페스티벌과 사람을 사랑하는 친구다. 작년 12월엔 친히 우리집에 놀러와 글래스톤베리의 감동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한 때 페스티벌 프로젝트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함께 한 경험이 있었기에 페스티벌 마케팅과 현장 운영, 아티스트들의 무대와 관객들의 태도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눴다. 누가 보면 이 나라 각종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사람들로 착각이 들 정도의 대화 수준이었다. 가끔 연락해 어떤 음악을 듣는 지, 요즘 뜨는 아티스트는 누구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노래를 추천 받기도 했다.
나에게 음악은 큰 의미가 없었다. 책 읽을 때 BGM 정도로 깔아두는 장치가 음악이었고, 애써 찾아 듣는 음악 장르도 딱히 없었고, 앨범 출시를 손꼽아 기다리며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장범준이 유일했다. 2013년 음악 페스티벌 프로젝트를 하면서 일을 통해 음악을 접했는데 음악의 세계란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황홀했다. EDM을 처음 알게 되고, 스크릴렉스의 무대를 봤을 때 문화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었었다. 혼이 빠져도 좋다는 생각을 하며 페스티벌 무대 3시간 동안 방방 뛰었다. 무릎이 아픈 것을 느낄 사이도 없었다. 그 후 이름도 성도 이름도 모르는, 가끔 발음도 어려운 아티스트를 추천받으며 이어폰을 장착하고 다니는 뮤직팬이 되었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미국, 영국, 한국 등 출신 국가도 달랐고 언어도 달랐지만 감동은 한결 같았다.
작년 12월, 음악 사이트에서 큐레이션 해주는 노래를 듣다가 귀가 멍해지고 머리가 하얘지는 노래 하나를 듣게 되었다. 아티스트 이름을 봤다. 제목을 보고 가사를 훑어보았다.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
제목부터 멜로디까지 모든 게 매력적이었다. 가사 내용은 심금을 울리기에 딱 좋았다. 가히 신세계였다.
Maybe I'm in the black, maybe I'm on my knees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둠일 수도 있고, 바닥일 수도 있겠지만
Maybe I'm in the gap between the two trapezes
공중그내 상이의 허공에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But my heart is beating and my pulses start
내 심장은 뛰고 맥박도 뛰기 시작했어
Cathedrals in my heart
마음 속엔 대성당을 품고 있거든
As we saw oh this light I swear you'll
이 빛을 함께 봤으니
Emerge blinking into to tell me it's alright
분명 네가 내게 다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 눈을 깜박이며 일어서겠지
As we soar walls, every siren is a symphony
벽을 박차고 날아오를 때면 사이렌 소리들도 모두 교황곡이 돼
and every tear's a waterfull
그리고 눈물은 모두 폭포수가 되는거야
So you can hurt, hurt me bad
상처 줘도 괜찮아
But still I'll raise the flag 그
래도 난 깃발을 들고 일어설테니
It was a waterfull
그건 폭포수였어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
눈물은 모두 폭포수가 되는거야
뫼비우스의 띠처럼 집과 회사를 오가는 지리멸렬한 시간에 콜드플레이는 나를 거대한 평야로, 하늘로, 우주로 데려가주었다. 피터팬에 나오는 웬디가 내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 앉아서는 "세상을 다시 봐, 네 생각보다 넓고 깊어. 우린 먼지 같은 존재일 수 있지만 어쨌든 우린 우주에 포함되어 있어. 멀리 날아가보자. 훨훨." 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출퇴근 덜컹이는 지하철에서 헤드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콜드플레이의 노래 모두가 위로와 탄식, 에너지와 열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희노애락과 세상의 누추함과 밝음이 노래에 모두 담겨 있었다. 가사도 멜로디도 뭐 하나 빠질 게 없다는 생각에 천재적인 아티스트가 아닌가 생각하고 감탄했다.
어느날, 주말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콜드플레이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고 청소를 하고 책을 읽는 나를 보던 함께 사는 남자가 심드렁한 눈으로 콜드플레이를 이제 알았냐고 물어봤다. 누구나 아는, 아주 유명한 그룹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콘서트 티켓팅 사이트가 마비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아티스트가 콜드플레이였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땐 몰랐고 지금 알게된 주인공이 콜드플레이였다.
그때부터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했다. 라디오를 켜면 콜드플레이의 노래가 나오고,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면 콜드플레이 노래가 흘렀다. 모든 앨범을 매일 매일 들었기에 왠만한 노래는 다 아는 정도가 되었다. 마치 수능 단기 속성반에서 3개월 빡세개 공부하는 학생처럼 콜드플레이의 노래에 집중했다. 유명한 곡은 제목 매칭도 가능했고, 유명하진 않지만 혼자 좋아하는 노래도 두어개 생겼다.
그 때쯤 카톡을 주고 받던 후배를 만나 저녁을 먹는데 콜드플레이 콘서트 이야기가 나왔다. 콜드플레이를 좋아했지만 이미 콘서트 티켓 판매는 끝난 상황이었기에 콘서트를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때였다. 후배의 친구는 콜드플레이 티켓을 그냥 샀고, 지금은 팔려고 한다는 말에 동공이 확장되며 콜드플레이와 나의 만남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스탠딩으로 자리도 아주 좋다고 했다.) 공연은 4월 16일이었고, 세월호 3주기이기에 콜드플레이가 세월호와 관련된 뭔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눴다. 그리고 그 티켓은 내가 가지기로 했다.
그렇게 4월이 왔다. 4개월 정도의 짧지만 강렬한 연애를 한 남자와 결혼식장 버진 로드를 걷는 느낌으로 콘서트를 갔다. 함께 사는 남자와 나란히 워커를 신고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라도 가는 마음으로 향했다. 맥주 한 잔 마시고 들어갔으면 좋았을텐데 우리에게 콘서트는 연례행사와 같아서 소소하게 즐기는 방법까지는 익숙하지 않았다. 촌스럽고 어색한 모습이어도 열정 하나만큼은 20년짜리 묵은지 같은 팬들 못지않다고 자부했다.
콜드플레이가 무대에 등장했다. 눈물만 흘리지 않았지 내 심장곽 맥박은 최고치를 갱신했고, 무릎 관절의 미래 따위는 걱정도 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오르듯 뛰고 또 뛰었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부르고 하늘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콘서트가 끝나고 우리나라 떼창 문화가 불편하다는 기사를 보고 사라들이 다 나처럼 노는 건 아닌가보다 생각했다.)
가끔 누가 뭘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 어떤 음식, 어떤 사람, 어떤 취미처럼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사물이나 대상을 묻는 게 아니라 두루뭉실하게 좋아하는 게 뭔지 묻는 질문. 늘 나의 답은 정해져있다.
하늘 나비 새 우주 자유
콜드플레이 노래를 듣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모두 들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을 보면서도 비록 스탠딩으로 사람들 사이에 마른 가지마냥 끼여서 반경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땅뙈기에서 방방 뛰고는 있지만 마음만은 하늘을 통과해 우주를 향해 날아간다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이토록 좋았던 이유는 막연히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가사와 멜로디로 풀어내고 현장에서도 그런 요소들을 보여주는 영상과 장치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콜드플레이의 보컬은 아주 유명한 배우와 결혼했고 이혼도 했단다. 그녀의 이름이 기네스 펠트로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녀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힘들어할 때 만든 노래가 Fix you 였고, 콜드플레이는 세월호 3주기를 기억하자며 이 노래를 불렀다. 이 이야기를 기사로 접했는데 문득 노래 하나마다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 지 궁금해졌다.
콘서트를 다녀온 후에도 우리집에선 여전히 콜드플레이를 아침 저녁으로 듣는다. 아이에게 아침밥을 줄 때에도, 저녁에 샤워를 할 때에도, 주말에 놀러를 갈 때에도 우린 콜드플레이를 듣는다. 어느 날 아이가 함께 사는 남자의 핸드폰에서 흘러 나오는 콜드플레이 노래를 듣고 '엄마 노래'라고 했단다.
콜드플레이는 '엄마 노래'가 되어 밥상 위에 떨어진 밥풀 마냥, 옷에 묻은 먼지 마냥, 책상 위에 덩그러이 놓인 책 마냥 집안 구석을 굴러다닌다. 언제 다시 이들의 무대를 볼 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못 보더라도, 지금의 감동과 즐거움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한참동안 즐거울 것 같다.
고마워! 콜드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