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집, 일상의 베이스캠프

by 아멜리 Amelie

작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어느 날, 집주인한테 연락이 왔다. 이미 훨씬 전에 재계약은 했고 특별히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와서 의아했다. 자신들이 집에 들어와 살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며 나가라고 했다. 육아 휴직 마치고 회사 복귀한 지 3개월 된 시점이었다. 일과 육아, 살림살이를 챙기는 워킹맘 3개월 차에 적응하느라 허덕이고 있었다. 혼자 힘으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고 혼자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한 때였다. 어린이집 아동 학대 문제가 끊이지 않고 기사를 장식하던 때여서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려고 애쓰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막 우리집 식구들과 케미를 맞춰가는 이모님을 놓칠 수도 없었다. 그 일상을 가장 묵직하게 뒷받침한다고 생각했던 집을 떠나야한다고 생각하니 티끌같은 일상들도 마구 흔들렸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나, 집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사의 가장 중심에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적응한 환경을 바꾸면 우리가 받아야할 고민이 더 커질 것 같아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집을 알아봤다. 이모님도 출퇴근이 수월한 거리여야만 했다. 만 3년 동안 신경도 안 쓰던 집값을 살펴보니 재앙 수준이었다. 우리가 모은 돈은 값어치가 있긴 한가 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했다. 집이 두통 유발자가 되었다.


동네를 떠날 고민을 차츰 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벗어나자 이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졌고, 그만큼 아이의 환경은 변할 수 밖에 없었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한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전세살이를 하면 2년에 한번씩 아이와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아요.
심지어 집을 산 엄마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 친구들이 하나 둘 전학을 가니까
친한 친구와 헤어지는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 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이야기였다. 그게 내 이야기가 된 셈었다. 결혼을 하고 살림집을 꾸릴 때 이 동네에서 천년만년 살 생각은 없었다. 다음 집과 동네가 어디가 되면 좋을 지 고민도 하지 않았다. 살면 살게 되는 게 집이라 생각했다. '감당할 만 한 집값'과 '예측 가능한 범위의 양육'이 함께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 경악을 하며 막연하게 생각했던 게 내 잘못이라면 모든 상황이 다 나의 잘못이었다. 이 곳 저 곳 전세 나온 집들을 구경했다. 어떤 집은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싫었고, 어떤 집은 가격이 너무 높아 부담스러웠고, 어떤 집은 출퇴근 교통이 좋지 않아 막막했다.


집주인이 우리에게 제공한 시간은 한달이었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집을 둘러보고 다녔다. 주말 내내 집을 보러 다니며 온갖 생각을 하다가 남편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했다.


집을 사자


어차피 일은 계속 할테고, 대출을 받아 발생하는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갈 자신이 있었다. 대신 2년에 한 번씩 변화를 감당하며 겪어야 할 스트레스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2년에 한 번씩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아이를 돌봐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찾고, 아이가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을 기다려주고, 이모님의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고, 남편과 나의 출퇴근 거리와 시간까지 고민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대출금 갚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일상 유지에 긍정적일 거라 생각했다. 수고로운 일련의 행위를 해야만 하는 시간을 '은행 빚'으로 대체하고, 그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가꿔나가고 가족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에 이르렀다.


이성적인 남편은 당황했고,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의 의식 흐름을 모두 듣고선 빚을 내어 일상을 유지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햇볕이 들어오는 집을 결정하고 그 순간부터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대여섯군데 연락을 하고 매일매일 자리가 있는 지 확인 전화를 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졸업하고 입학하는 시즌이었던터라 이사하기 일주일 전에 연락이 왔다. 이사를 하면서 이모님은 우리와의 인연을 정리했고, 또다시 불행 중 다행으로 이모님이 소개해준 또다른 이모님을 만났다. 그저 집을 옮겼을 뿐인데, 아이의 어린이집과 이모님은 바뀌었고, 변화를 적응하는 아이의 3월은 무서울 정도로 버거워보였다. 덩달아 나의 회사 생활도 하루 하루가 피곤했다.


그리고 일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은행은 알아서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가져간다. 다행히 월급도 꼬박꼬박 받고 있다. 새로 오신 이모님은 3개월의 적응 기간을 거치고 가족처럼 함께 해 주신다. 3살이던 아이는 4살이 되어 무탈하게 어린이집을 아침 오후로 오간다. 동네 관리소 아저씨랑 눈인사를 나눌만큼 가까워졌다. 비록 동네 친구는 없지만 익숙한 놀이터도 있고, 슈퍼 카운터에 계신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면 누군 지는 알아볼 만큼 익익숙해졌다.


집을 사고 마음의 베이스캠프를 얻었다

집을 살 때 중 '집값이 떨어진다는데 괜찮겠느냐, 집값은 계속 오르니 걱정마라' 라며 집값의 등락에 대한 조언을 주신 분들이 있다. 내가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그렇겠지만 집값이 오르고 내려 기쁘거나 아쉬운 건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적어도 십년 또는 이십년 가까이 일상이 지진해일처럼 흔들릴 일은 없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편안함이 훨씬 크다.


집은 피부에 직접 닿는 속옷 같은 존재이다. 작은 보푸라기 하나에 불편함이 느껴지고, 땀흡수 가능성에 따라 편안함의 경중이 다르고, 패션이 계속 바뀌어도 기능에 충실해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


우리의 일상을 격정적으로 뒤흔들 일이 생기지 않는 한 힘들게 구한 베이스캠프를 바꿀 생각은 없다. 물리적인 환경은 변하지 않지만 집이라는 공간 내부를 만드는 일상과 분위기는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연필을 쥐고 뭔가 끼적이기 시작하면서 거실에 있는 테이블의 활용도가 높아졌다. 대신 온 집안 구석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나와 남편의 각종 애장품들은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피신을 했다. 언젠가 우리가 나란히 앉아 각자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또다시 우리 집을 채우는 요소는 달라질 것이다. 우리 가족이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마음의 베이스캠프'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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