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새까맣게 염색한 파마 머리를 가진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곧바로 아부지가 떠오른다. 몇 해전까지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머리를 내 코앞에 들이밀던 그는 어느날부터 동네 미용실에서 흑개미처럼 까만 색으로 염색을 한다. 미용실 사장님의 설득에 넘어갔는지 어쨌는 지 가끔은 빠마도 한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은 백퍼센터 탄성을 자랑하고 있는데 중력을 거부할 수 없었던 얼굴의 주름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표정은 늙음의 민낯을 보여준다.
가끔 이 어르신이 나에게 전화를 먼저 한다. 아직도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그는 세상 속도를 빛처럼 느끼며 적응하느라 애먹는다. 모두 내려놓고 싶지만 내려놓을 수 없는 짐 한짝이 어깨에 축 처진 채 걸려있다.
이 남자는 나의 첫번째 남자다.
단 한번도 깎지 않은 손톱과 머리털을 만져본 남자다.
이 남자는 까슬하게 올라온 턱수염을 내 볼에 부비며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 못한채 그저 좋아했던 남자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내 역사를 눈을 감고도 읊을 수 있는 남자다.
늙음을 실은 인간이란 기차는 소리 없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늚음으로 무너지는 육신은 황망히 떠난다.
나고 가는 세상에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