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너의 생일

by 아멜리 Amelie

어제는 뱃속에 체류 중인 둘째 아이의 정기 검진날이라 병원에 갔다. 초음파 검사를 하는 내내 검은 바탕에 하얀 선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새로운 생명을 보면서 감탄사만 연신 읊조렸다. 마치 마른 땅에 물을 주면 쑥쑥 자라는 옥수수 같았다. 뭐 하나 제대로 해주는 것도 없는데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들이켜 마신 양수를 위장에 담고 있었고, 소화가 된 그 양수를 콩팥에 품고 있었고, 쉬지 않고 움직이는 메트로놈처럼 제 할일을 하는 심장은 앙증맞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요즘 들어 새생명은 뱃속에 잘 지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가끔 미끄럼틀을 타고 놀듯, 송사리처럼 헤엄을 치듯 연신 꼬물거린다.


둘째를 만나러 가는 병원은 큰 코딱지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삼년전 어제는 큰 코딱지를 낳으러 병원에 뚜벅뚜벅 걸어들어간 날이었다. 첫번째 임신과 출산은 모든 게 낯설고 어설펐다. 진통보다 빨리 양수가 살짝 보인 그날 아침,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마음부터 '쿵' 하고 내려앉아 병원으로 달려갔다. 양수가 조금이라도 새어나오면 아이가 금방 태어나는 줄 알았다. 병원 수속을 밟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원 침대에 앉아 아프지도 않은 배를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책을 읽고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을 무한반복해 들었다. 아이는 그냥 하늘에서 씨앗 하나 똑 떨어지듯 낳는 줄 알았다. 진통이 시작되고, 의사 선생님은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쏘듯 유도분만제를 내 몸에 넣었고, 열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1초도 쉼없는 아픔이 계속되었고, 아이는 나올 준비가 다 되었는데 내 몸은 아무런 준비를 해주지 못했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렸다가 그때도 나의 몸이 준비를 못하면 수술을 하자고 의사선생님이 말하고 병실 문을 닫았다. 열시간이 넘게 내 몸을 휘감은 진통보다 그 한시간이 더 무서웠다. 분만의 과정을 글로 배우면서 제왕절개에 대해서는 한번도 애써 살펴본 적이 없었다. 마치 공부하지 않은 범위에 대해 시험을 치겠다고 교탁을 탁탁 치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학생의 심정이었다. 병실 벽에 엄청 크고 동그란 벽걸이 시계가 있었는데 초침, 분침, 시침이 움직이는 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바라봤다. 초침, 분침, 시침이 제 할일을 다하고 나면 내가 모르는 시험 범위가 아닌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시험을 치르길 바랐다.


바라던 대로, 원하던 대로 다 되면 그게 인생인가.


2015년 9월 1일 5시 18분(태어난 시간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일과 같아 외우기 쉽다), 의사 선생님이 날렵하게 휘두른 메스 솜씩 덕분에 큰 코딱지는 세상에 나와 폐로 호흡했다. 나와 코딱지의 연결고리였던 탯줄이 끊어졌다. 아이는 태아에서 신생아라는 타이틀을 달고 제 갈길을 갈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십자가 위 하느님처럼 수술대에 누워 카랑카랑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데 덩달아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흘린 뜨거운 눈물 탓에 안경알은 습기로 꽉 차 희뿌옇게 변했고 난 아이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이는 젖을 빨다가 제 손가락을 핥다가 어설픈 숟가락질을 하다가 젓가락에 도전하는 네살이 되었다. 아이는 발레리나, 택배아저씨, 주스 만드는 사람이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는 아침에 헤어지고 저녁에 만나는 우리의 일상에 적응했다. 아이는 대구로 떠나는 외할머니를 보면서 헤어짐을 배웠고, 헤어짐이 주는 허전함과 슬픔을 익혔다. 아이는 하늘을 날으는 새를 보며 자신도 새처럼 날고 싶다며 두 팔을 양 쪽으로 뻗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캄캄한 밤을 무서워하며 나의 옷깃을 잡고 종종 걸음으로 쫒아다니게 되었다. 아이는 강아지는 강아지풀을 좋아하는 지 물어보며 눈을 반짝이게 되었다.


아이가 아침 햇살에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눈에는 눈꼽이 조금 끼어 있고, 입가에는 밤새 흐른 침이 버석거리며 말라있다.


엄마, 안녕


아이가 태어나며 새로 얻은 내 이름을 아이가 불러준다.

누가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소리를 들을 때라고 말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름이지만 그 이름을 꼭꼭 눌러 쓴 명찰을 달기까지 지내온 시간들, 명찰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한 순간들이 모두 떠오르는 그 이름. 그 어여쁜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너와 살아가고 싶다.


아가, 너의 세번째 생일을 축하해. 엄마가.

2017년 9월 1일 오후 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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