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아이의 마음

by 아멜리 Amelie

우리집 코딱지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3주째 데모를 하고 있다. 코딱지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나를 따라 회사에 가겠다고 했을 때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학교에 무슨 일이 있나'였다. 등교 거부 이유가 외부에 있다고 생각했고, 학교가 싫으냐는 질문에 코딱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질문도 질문 안에 나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으니 그리 객관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잠들기 전에 학교에서의 즐거운 생활을 포장하고 또 포장해서 설명해주었지만 코딱지의 표정은 늘 우울하고 참담했다.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미안하면서 불안했고, 힘들면서 괴로웠다. (워킹맘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가장 견딜 수 없었다.)


일정 기간 동안 '학교'는 금기어가 되었다. 학교를 언급하면 코딱지의 표정이 변하면서 서른이 훌쩍 넘은 어른들은 만4년 유아의 눈치를 봐야했다. 훈육이랍시고 '넌 학교를 가고 난 회사를 가야해'를 외쳤지만 '안가!' 한 마디로 코딱지는 전쟁의 승자가 되었다. 그동안 학교가 코딱지에게 제공한 기쁨과 즐거움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고 상상했지만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작은 단서 조차 얻질 못했다.


이번 주에는 저녁마다 코딱지를 관찰했다. 코딱지와 이모 할머니와의 대화, 코딱지와 아빠와의 대화를 전해 들으며 분석했다. 코딱지의 말 속에 감정 변화의 지점들이 보였다.


코딱지는 지금 나의 몸이 변하고, 새로운 인간이 곧 지구에 등장할 거라며 어른들이 내놓는 이야기들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만의 공간이라 느낀 집에서 아이는 새로운 인간이 찾아온다는 긴장감과 기대감이 가득찬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며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인상을 받았나보다. 이불 끄트머리를 줄줄 빨고(굳이 학교에도 가져간다), 나의 잠옷을 줄줄 빨고(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잠옷을 입은 날엔 다시 갈아입어야 했다), 코딱지가 일어날 때 내가 곁에 없거나 껴안아주지 않으면 울기부터 하고(아침에 십분씩 함께 누워있어야 했다), 밥을 먹다가, 머리를 빗다가, 놀이를 하다가 마음에 엇박자가 나면 소리를 질렀다.(돌고래를 한마리 키우는 줄 알았다)

며칠 전, 저녁을 먹다가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인간의 형태로 나의 몸뚱아리를 그리고, 상체에 하트를 수십개 그리며 설명했다.


"엄마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 넘쳐. 너에 대한 사랑은 이거고, 아빠에 대한 사랑은 이거고, 이건 할머니에 대한 사랑, 이건 할아버지, 이건 엄마 친구, 이건 엄마 회사 친구,,, 그리고 아직 완전하지는 않은데 곧 태어나는 하늘이한테도 사랑이 갈거야. 하지만 엄마는 이 모든 사랑을 다 몸 속에 가지고 있어. 여기에 늘 너에 대한 사랑도 있어. 그러니 걱정마."

이 이야기가 통했을까. 코딱지는 다음날 아빠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빠 나 학교에 씩씩하게 갈거예요."


엊그제부터 코딱지는 아침에 참 씩씩하다. 비록 식탁 앞에서는 늘 분주하고, 정신 없지만 이불이나 손수건 없이도 학교에 간다. 혼자 옷을 입고, 혼자 신발을 골라 짝짝이로 신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태초에 인간은 사랑을 원한다. 사랑을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받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감사할 줄 안다. 아이와 나의 연결고리는 탯줄이 끊기는 그 날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연결고리는 한결같이 끈끈할 수 있도록 잘 가꿔야겠다. 내가 코딱지에게 사랑을 주는 것 같지만 난 코딱지의 더 큰 사랑을 받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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