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당신의 결심과 나의 작은 응원

외국에서 일하는 당신의 첫걸음을 응원하며.

by 아멜리 Amelie

오빠,

싱가폴에 오기 전에 이 곳이 이렇게 더운 곳인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인지, 우리집에서 이렇게 떨어져 있는 곳인지 잘 몰랐어. 그저 우리가 지낸 여름의 한 조각만큼 무덥겠거니 상상했고,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영어로 말하며 지내는 곳이라 생각했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잠깐 눈감았다뜨면 도착하는 곳이라 여겼어. 생각보다 햇살이 강렬하고, 잘 모르는 곳에서 온 듯 보이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고, 영화를 세개나 봐야 도착하는 곳에 오빠를 두고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고 이 곳까지 와서 가족과 당분간 떨어져 살기까지 해야하냐며 혼자 읊조린 오빠 말이 내 귓가에 자꾸만 맴도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오빠,

나는 ‘싱가폴에 가볼까’하며 대화를 시작한 올해 봄부터 이 곳에 와서 3분 미역국을 끓여 먹는 지금까지 우리 세식구의 결단과 실행력이 너무 자랑스러워. 누군가는 자신감이 없어서, 누군가는 안정적인 현실을 벗어나기 싫어서, 누군가는 귀찮아서 새로운 결심과 도전을 하기 힘든 게 우리 나이라고 생각해. 두렵고, 조금 겁나고, 번거로운 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너무나 멋지게 잘 헤쳐나왔어. 굳이 더 잘하려 애쓰거나 욕심내지 않아도 지금 이 모습만으로도 우리가 맞이할 미래를 잘 만들어나갈거라는 확신이 들고 그만큼 큰 믿음이 샘솟아. 오빠의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두려움을 조금씩 떨쳐버리고 도전하고 성취하는 일상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나도 오빠처럼 씩씩하게 잘 해낼거라는 용기도 얻어.

오빠,

우리가 새로운 곳에서 보내게 될 하루하루는 예전에 비해 조금 애달프고 녹록치 않을 수 있어. 하지만 세월을 먹고 자란 나무의 나이테가 촘촘해지고 선명해지듯 우리도 시간이 흘러 오늘을 돌아봤을 때 비로소 지금보다 깊고 넓은 사람으로 자란 우리를 볼 수 있을 거라 확신해. 우리 아이들 역시 우리를 닮아 도전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 없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거라 믿어.

오빠,

당분간 아침마다 오빠의 비타민을 챙겨줄 수 없고, 어설픈 저녁도 해 줄 수 없고, 자기 전에 잘자라는 인사를 건넬 수 없어서 아쉽고 애잔해. 행당동에 돌아가서 우리 하늘이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준비해서 다음에 우리 네식구 즐거운 표정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자. 나도 다시 오빠 곁에 돌아오는 날까지 건강하게 생활하고 준비잘할게. 오빠도 물 자주 마시고, 운동도 하고, 밥 잘 챙겨먹고 생활해야해.

오빠가 내 남편이어서 행복하고 자랑스럽고 고마워.
사랑해.

2017.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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