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이 움직인다. 태어난 지 세 달 된 둘째 아이 젖먹이는 시간을 제외하면 소파에 앉아있을 틈이 없다. 한밤중 수유까지 하고 있으니 불철주야 매진한다는 건 백 퍼센트 내 이야기이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밥을 짓는 행위에 고단할 때도 있다. 특히 애는 태어났으나 사라지지 않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는 뱃살을 내려볼 때 느낌이란. 이 뱃살을 얻기 위해 아이를 낳았나 하는 자괴감이 먹구름처럼 밀려와 일상을 어두커컴하게 만든다.
여기에 반전은 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밥을 짓는 행위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나 혼자 주사위를 던지며 부르마불 게임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해가 좋아. 오늘은 마드리드에 호텔을 지어야겠어.” 이 말은 오늘은 애들 옷과 어른 옷을 차례로 빨아서 널어여겠다는 말이다.
“서울에는 호텔보다 빌딩을 지어야 해.” 이 말은 브로콜리를 데치고 콩나물 무침과 호박볶음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의미한다.
집안일이 혼자 하는 게임이 되었다. 게임판을 그려놓고 아침부터 밤까지 해야 할 미션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다음 하나씩 수행하는 게임 말이다. 끝판 대왕은 바로 ‘애들 재우기’. 끝판 대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방문을 닫고 거실로 걸어 나올 때 의기양양함은 펼쳐진 양쪽 어깨로 표현한다. 이건 애 둘을 동시에 재우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의 영역이다.
같이 밥을 먹는 이들 중 그 누구도 나보다 먼저 일어나지 않아 청초한 아침이었다. 아침마다 아주 진한 커피를 한잔 만들어 베란다에서 홀짝거리며 마시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한 모금씩 아껴가며 마실 때였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밥을 짓는 행위를 짧게 표현하면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살. 림. 살. 이
그래, 내가 여태껏 하고 있었던 업무는 살림살이였다. 이 단어를 시작으로 온갖 생각이 대웅전 부처님 앞에 놓여있는 향불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질문. 살림살이의 업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두 번째 질문. 살림 말고 또 사는 일은 뭐가 있을까?
세 번째 질문. 왜 산다는 표현을 썼을까?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봤다. 제일 좋아하는 업무 ‘Best 3’는 바로 잠자리 정돈과 화장실 청소, 설거지&부엌 정리이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일은 잠자리 정돈! 방이 좁아 침대 생활을 포기한 관계로 아침저녁으로 이불을 개고 깔아야 한다. 처음엔 좀 귀찮았는데 막상 저녁마다 이불을 깔며 이 업무에 묘하게 중독되었다. 특히 오후 내내 햇볕에 말린 이불을 깔 때에는 하늘을 나는 기분까지 든다. 햇볕을 한껏 머금은 이불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면 오후 내내 햇볕이 흩뿌려댄 온기를 품고 있는 이불이 새 깃털만큼 따뜻하다. 하루 온종일 직립보행을 하느라 고생했을 식구들의 척추가 하나하나 닿을 곳이라 생각하면(아, 한 명은 빼야 하는구나) 등이 배기는 곳이 없도록 이불을 정리하는 행위에 저절로 애정이 깃들며 손 끝이 분주해진다. 사랑한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 행위만으로 식구들을 향한 나의 모든 사랑을 쏟아붓고 있다는 뿌듯함이 하늘을 찌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끔은 에어비엔비 호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정성이면 게스트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모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샘솟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을 생각해본다. 살림 말고 또 사는 게 뭐가 있을까. 감방 살이, 처가살이, 시집살이, 타향살이, 셋방살이, 더부살이, 하루살이(?)...(이틀 동안 생각한 결과다.) 생각보다 다양한 영역의 '살이'들이 존재했다. 나열하고 보니 이 단어들에서 뭔지 모를 비슷한 느낌이 감돈다. 어깨를 웅크리고 다닐 만큼 팍팍하고 고단한 일상이 떠오른다. 소주 한 잔 들어가면 눈물이 주르륵 흐를만한 사연이 하나씩 있을 것 같다. 오늘보다 내일은 더 환해지기를 바라는 기대감을 한쪽 가슴에 품고 살 것 같다.
여기서 세 번째 질문으로 연결된다. 왜 '살림'을 '산다'라고 할까? 다양한 '살이'들을 같이 살펴보니 '산다'는 의미가 '견디다'로 다가온다. '살이'에는 끝을 바라는 마음도 섞여 있지 않을까? 잘 버티고, 견디고 바라면 언젠가는 지금의 현실이 끝이 나고 새로운 무대가 펼쳐질 거라는 희망 말이다. 살림살이에는 바랄만한 끝이 보이지 않는 건 나만 느끼는 것일까. 내가 자취를 시작하며 시작한 살림살이가 벌써 십 년이 넘었고, 환갑이 넘은 엄마와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아직도 당신들의 살림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끝이 없는 이 길 위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았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회사에서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이라면 퇴사하면 그만이다. 당분간 살림을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퇴가는 허락되지 않으니 말이다. 오늘 주요 미션은 '오후 시간 동안 큰 코딱지와 아주 즐겁게 놀아주기'이다. 인근 쇼핑몰에 갔다가 근사한 야외 놀이터를 하나 봐 뒀다. 갓난쟁이 유모차 끌고 큰 코딱지 간식 쥐어주고 힘차게 가봐야겠다.
살림살이의 노하우까지 얻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평정심을 유지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가는 여정 정도면 딱 좋다. 오늘 살림살이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