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진통

출산의 시작

by 아멜리 Amelie

김광민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를 들으며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플 진통이 시작되었다. 멀리 있는 엄마를 한달음에 달려오게 했고 큰 코딱지에게 뱃속 동생을 낳아 올터이니 할머니 옆에서 씩씩하게 기다려달라고 일러두었다. 둘째는 쏜살같이, 빛의 속도로 세상에 나온다던데 작은 코딱지는 날 닮아 굼뜨고 느린가 보다. 연신 배만 싸르르 아프고 세상에 나오겠다는 신호를 아직까지 보내고 있지 않다.(라고 쓰는데 엄청난 소용돌이가 뱃속에서 일어나며 아프다.)

신은 왜 인간에게 그것도 여자에게 40주 동안 아이를 뱃속에 품게 하고 몸 밖으로 나올 때 크나큰 고통을 느끼게 했을까. 이 험한 세상 애 낳을 때 힘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몸으로 배우게 하려고 그랬을까. 이렇게 온몸이 부서져라 아파가며 품에 얻은 자식 한없이 껴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살라는 가르침을 주시려 그랬을까.

옆에 앉아 있던 신랑이 묻는다. 진통은 어떤 식으로 아픈 거냐고. 뱃속에서 굵고 힘센 뱀 한 마리가 날쌘 동작으로 헤엄을 치고, 엉덩이뼈가 조각조각 분해되듯 으스러지고,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입을 앙 다물고 눈을 질끈 감고 또 감아도 헤어알 수 없는 악몽 같은 고통이라고 설명하려다 말았다.

우린 모두 한 여자의 자궁 속에서 그 여인의 온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세상에 나올 준비를 했다. 한 여자의 생살을 찢는 고통을 지켜보며 세상에 등장했다. 세상을 만날 때 BGM은 제 스스로 목청껏 지른 울음소리였다. 그 여자는 우리 입에 젖을 물려 배를 채우게 했고, 되려 우리에게 고생 많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여자의 몸을 통해 세상에 나와 또 다른 인간을 세상에 등장시키고 있는 셈이다.

아이와 나는 가까이 있는 듯 멀리 있어 얼굴을 마주할 수도 없고 눈을 보고 웃을 수도 없다. 그저 뱃가죽 아래에서 노니는 아이의 손짓과 발짓에 살아있음을 느낄 뿐이다. 이어폰을 따라 흐르는 김광민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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