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이유와 설명 사이의 멀고먼 거리

by 아멜리 Amelie

아이가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샤워하러 갔다.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무서운 꿈을 꾼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서럽게 울어댄다. 샤워를 하는건지 그냥 물을 뒤집어 쓰는 건지 분간이 안되게 샤워대 앞에서 허우적대다가 대충 물기 닦고 나와 아이를 안았다. 왜 그러냐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며 연신 아이 얼굴을 쓰다듬는다. 아이는 눈도 뜨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고 시종일관 엉엉 운다. 왜 우냐고 또 한번 묻다말고 그냥 이불 위에 같이 누웠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온 물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지만 굳이 닦지 않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 와상처럼 누워있었다. 아이가 가슴팍을 파고 들어 앞섭이 젖은 티셔츠를 줄줄 빤다. 울음 소리가 잦아든다. 줄곧 닫혀있던 아이의 눈이 아주 얇게 열리며 나를 슬쩍 바라보고 꾹 닫힌다. 이불을 덮어주니 더운듯 걷어내려 발길질을 해댄다. 뱃속에 있는 녀석도 이 상황을 따라하는 지 발길질을 한다. 배 밖에 있는 아이와 뱃속에 있는 아이가 동시에 발길질을 해대느라 분주하다. 아이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하고 작은 가슴이 고요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린다. 드디어 아이가 꿈나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나보다.

아이 얼굴의 눈물 자국을 닦으며’ 왜 울었을까’ 생각하다가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았다. 눈물의 이유는 분명하지만 이를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진 않았을까. 왜 좋아하는지, 왜 싫어하게 되었는지, 왜 힘들고, 왜 지치고, 왜 기분이 좋은지... 이유는 있겠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든 몸과 마음의 상태는 어른들에게도 있으니까. 말로 형언하기 힘든 감정과 상태는 사소한 행동과 대화 속 단어와 문장에서 그 단초들만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연인 사이에 문제가 생겨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싸우려 덤비면 엉뚱한 곳으로 불씨가 튀어서 싸움만 커지는 꼴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 말이다. 가끔은 그저 상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짓과 몸짓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를 짚어보는 자세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길고 길었던 하루가 저물었다. 또 하루를 살아내었다. 이유는 있겠으나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기 버거워 거실에 굴러다니는 고무공을 발로 휙 차본다. 아이들의 발길질을 따라하듯.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결혼식 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