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4
2018년 7월 2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라는 인사를 건네며 남편이 출근길을 나선다. 무거운 대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앙다문 입처럼 닫힌다. 그 소리를 비지엠(BGM) 삼아 거실로 돌아 들어온다. 나의 출근길이다. 마치 엘리스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향한 듯, 난 아이들 꽁지를 따라 집안일의 세계로 들어온다.
매. 일. 매. 일.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아주 예전에 읽었음에도 꼭 하나 기억하는 글귀가 있다.
“더 많이 알면 더 잘 보인다”
더 많이 알면 더 많아지는 게 집안일이다. 작년까지 회사를 다닐 때에는 집을 자세히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남편과 내가 손발 착착 맞춰 한다 하더라도 일하고, 애 키우고, 집안 살림을 챙기는 건 늘 시간과 체력 부족으로 허덕이기 일쑤였다. 아이를 낳고 집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살림살이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갓난아이를 포함한 네 식구 살림은 업무량이 상당한 편이다. 식사준비, 빨래, 청소와 같은 일일 업무와 화장실 청소, 침구 빨래, 베란다 청소, 냉장고 정리와 같은 주간 단위 업무, 똥오줌 묻은 이불 빨래, 큰아이가 저지르는 크고 작은 소란 해결 등의 비정기적 업무까지 가세하면 야근과 잔업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곧 시작하는 둘째의 이유식은 야근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그 철학자도 집안일을 즐기지 못했으리라.
작은 아이 젖 먹이려 소파에 앉으면 제일 먼저 베란다에 있는 빨래 건조대가 눈에 들어온다. 요즘처럼 비가 자주, 많이 오면 집안일 총책임자로서 속상하다. 줄줄이 빨아야 하는 빨래도 많은데 젖은 빨래는 빨리 마르지 않아 세탁 업무가 밀린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빠알간 고추를 널어 말려도 될 만큼 진한 햇살이 내리쬐면 마음이 급하다.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 말리면서 세탁기에 새로운 업무 지시를 내린다. 시간이 딱딱 잘 맞으면 그날 햇볕을 모두 잘 얻어 쓸 수가 있다. 어느 날 큰 아이가 묻는다.
“엄마, 또 빨래해?”
“응, 햇볕이 아까워서.”
저 멀리 태양이 내뿜은 기운이 먼 여행을 떠난다. 어두컴컴한 우주를 뚫고 날아,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길을 지나, 삼베모시만큼 얇은 구름 곁을 배회하다 우리 식구 옷가지 위에 내려 앉는 상상을 한다. 식구들의 티셔츠, 바지, 원피스의 날실과 씨실이 만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 햇살이 옹송그리며 앉는다. 시골 이모가 가을 볕에 말려서 탈탈 터는 참깨처럼 잘 마른 빨래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어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그때까지 햇살은 옷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곱게 갠 옷을 따라 옷장에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온 식구가 새 옷을 꺼내 입고 새 날을 시작한다. 어제 우주를 날아 우리 집에 찾아온 그 햇살을 머금은 포근한 옷 말이다.
잘 마른 새 옷에 햇살만 묻어 있는 건 아니다. 젖은 빨래 탈탈 털어 반듯하게 널면서 아이와 남편을 생각하며 웃음지은 내 마음도 같이 묻어 있다. 마른 빨래 걷으며 또 한번 탈탈 털고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매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며 입술로 읊조린 나의 기도도 담겨있다. 식구들의 몸을 휘감고 감싸는 옷을 정돈하는 일을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장 첫 번째 포옹이라 여겼다. 빨래는 널고 개는 시간이 식구들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기도의 시간이 되었다. 시작하는 날을 잘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하루 잘 견딘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달라는 나 만의 기도 말이다.
마음이 꽁꽁 얼었던 순간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주었던 사람도 떠오르고, 그저 따뜻한 온기 품고 같이 살아주기를 바라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도 떠오른다.
보로딘의 현악 4중주 2번(String Quartet No.2 in D major)는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은 우리 식구 옷가지에 내려 앉는 햇살을 닮았다. 가슴에 와 닿을 때 밀어내고 싶을 정도의 뜨거운 열기는 아니다. 손바닥을 나란히 모아 고이 담고선 두고두고 보고픈 따스함 정도의 온기이다. 쌀쌀한 어느 밤 잘 마른 이불을 목까지 끌어 당겨 덮을 때나, 좋아하는 카페에서 적당하게 따뜻하고 풍미 있는 커피를 마시거나, 엄마가 멀리서 보내준 깻잎 반찬이나 무말랭이를 따끈한 흰 밥 위에 얹어 먹을 때 느낌과 비슷하다. 선율을 따라 가다 보면 따스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마구 떠오른다. 따뜻했던 기억 속에서 만나는 물건과 경험은 사람으로 연결된다. 마음이 꽁꽁 얼었던 순간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주었던 사람도 떠오르고, 그저 따뜻한 온기 품고 같이 살아주기를 바라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도 떠오른다.
음악이 주는 느낌이 온화하다고 해서 속절없이 따뜻하지 만은 않다. 온화함에는 일종의 ‘밀당’이 필요하다. 온화함이 긴장감 없이 길어지면 뜨거운 물이 식어버리듯 감정도 관계도 느슨해진다. 온화함의 두께가 얇아지고 가늘어지면 한 순간에 '툭’ 소리와 함께 감정도 관계도 끊어진다. 보로딘의 현악 4중주는 마음을 밀고 당기기에 능수능란해 온화함이 한결같다. 어제 만난 햇살과 오늘 만난 햇살은 서로 다른 질감과 풍미이지만 햇살이라는 본질은 동일하듯 말이다. 마음이 조금 식거나 지쳐버린 날, 마음을 어루만져줄 손길이 필요한 날 귓가에 맴돌게 놔두고 싶은 곡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둘째 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젖을 먹인다. 빨래 건조대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간다. 어젯밤에 아이들 옷가지부터 빨아서 널어뒀다. 아이가 매일 입고 다니는 유치원 교복과 체육복, 둘째 아이가 물고 빨며 내 어깨를 주저 앉게 만들었던 아기띠, 열심히 뛰어다니느라 발가락 부분이 새까매진 아이의 양말, 큰 아이가 잠결에 세계지도를 그린 이불이 빨래 건조대에 옹기종기 널려 있다. 마치 우리가 모두 잠든 밤에 빨래들이 모여 앉아 우리 식구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것만 같다. 내일 아침엔 도톰한 질감을 가진 햇살이 꼭 찾아오면 좋겠다. 아껴서 잘 쓸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