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비가 내릴 때, 위로가 되는 음악 하나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7

by 아멜리 Amelie
Manuel Obregon - Danza con Toledos

'La Danza De Los Toledos'

2018년 7월 31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왔다 갔다.


엄마는 경남 산청 이모집에서 캐어 온 취나물과 고구마 줄기, 고사리를 할머니가 짜놓은 참기름과 외숙모가 털어 말린 참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만든 나물 반찬을 이고 지고 왔다. 엄마는 젖먹이 똥기저귀를 수십 번 갈아주고, 아이들과 수백 번 눈 마주치고, 우리와 수천 번 웃었다. 엄마는 텅 빈 여행가방에 늙은 엄마의 몸을 감싸는 옷가지 몇 개 담아 싱가포르보다 더 더운 한국으로 날아갔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고 더 많이 엄마 생각을 했다. 나에겐 두 명의 엄마가 있다. 내가 28살 이전에 만난 엄마와 이후의 엄마가 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엄마와 내 앞에 앉아 있는 엄마가 있다. 성도 이름도, DNA 배열도 똑같은 한 인간인데 10년 전 그 봄날을 기점으로 엄마는 참으로 많이 다르다.


내가 28살이 되던 봄날 - 내 생일이 있는 춘삼월 - 엄마가 배 아파 낳은 아들 녀석이 깊은 잠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한 날들이 있었다. 꿈속에서 파랑새를 따라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서는 보름 동안 꿈을 꾸었던 아이는 처음 보여주는 낯선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하여 우리 식구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돌려받았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무더웠던 그해 여름, 병원 식당에서 엄마와 김밥을 먹던 날이었다. 허기져 뭐라도 먹지 않으면 무릎이 꺾일 것 같아 한 줄에 천 원하는 김밥을 샀다. 여름이라 그런지 김밥을 감싼 검은 김은 고무줄마냥 질기디 질겼고 제대로 씹히지도 않았다. 엄마는 마르다 못해 금이 간 입술을 간신히 열어 김밥 하나를 욱여넣었다. 엄마가 김밥 하나를 입에 넣으려 젓가락을 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1그램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젓가락인데 내 눈에는 수십 킬로짜리 아령만큼 무거워 보였다. 엄마 얼굴은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서 무말랭이처럼 변해 있었고, 죽은 생선 눈알만큼 부옇고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만 응시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었다.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가까스로 씹어 삼킨 엄마가 수십 킬로짜리 젓가락을 식탁에 올려두며 한숨을 쉬었다. 그날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를 따라갈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참 두렵고 막막했다. 우리가 물 한 모금이나 콩나물국은 제대로 마시면서 김밥을 씹어 삼켰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이후 나는 김밥을 싫어하게 되었다.


엄마가 오기 며칠 전이었다. 남편이 베란다에서 빨래를 털어 건조대에 널고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우리가 사춘기 때 듣던 멜로디가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편이 물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으면 언제로 가고 싶냐고.


“막둥이 사고 나기 바로 전날로 돌아가고 싶어.”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아차 하는 모습으로 질문을 수습하느라 애를 썼다. 그 모습이 되려 미안해 무슨 말인지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며 대화 주제를 서둘러 바꿨다. 이렇게 10년 전 그날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날이 있다. 누군가의 과거 회상에서,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예전 모습들에서, 내가 끼적이고 남겼던 글들에서 내가 28살이고 엄마가 52살이었던 때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날이 오면 하루 종일 나 혼자 회색 도시에 갇혀 있다. 아무도 내 등을 떠밀어 가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날로 돌아간다. 퇴근길 지하철 2호선에서 실연 당한 여자마냥 엉엉 울다가 부끄러운 나머지 어딘지도 모를 역에서 내려 벤치에 혼자 앉아 울었던 날, 회사에서 공짜로 보여준 뮤지컬을 보다가 수십 년 전에 죽은 아들의 혼을 보고 엉엉 우는 엄마의 독백을 들으며 세상 떠나가라 흐느낀 날, 청량리역에 있는 백화점에 갔다가 전방에서 휴가 받아 나온 군인들의 군화를 보다가 울음을 참느라 목구멍이 아파와 일부러 물을 벌컥벌컥 마신 날……


나의 십 년이 이랬는데 엄마의 십 년은 오죽했을까.


몇 달 만에 만난 엄마와 동네 쇼핑몰 국숫집에서 마주 보고 앉아 국수를 먹었던 그날도 국수 국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을 들이마셨다. 강산이 한번 변할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엄마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공유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기억 속에 맴도는 어느 날의 풍경과 사건과 마음을 나누다 이내 눈물을 흘리고 마는 사이가 되었다. 어찌 되어도 산 사람은 살게 된다며 힘주어 말하던 엄마가 여름 열기 앞에서 녹아져 사라지는 상추 이파리처럼 시들어 보이면 온갖 장난을 치며 엄마를 웃게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울고 웃고 떠들어서 잊을 수 있는 현실이기를 바라는 코미디언이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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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해가 내리쬐더니 오랜만에 비가 왔다. 폭우가 쏟아졌다. 더운 공기를 단번에 보내버리는 비를 보고 있으니 마뉴엘 오브레곤의 <La Danza De Los Toledos>가 떠올랐다. 이 음악에 비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듯 느껴진다. 비가 쏟아져 내리기 전 무겁고 어두운 하늘, 폭우가 쏟아지는 모습, 비가 그친 후에 느낄 수 있는 초록색을 닮은 공기의 냄새, 손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청량감을 모두 이 곡에서 느낄 수 있다.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이 음악을 듣고 있자니 비를 좋아하는 엄마가 더 생각났다. 엄마는 비 내리는 모습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해서 비를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까. 비가 오는 날 만이라도 엄마가 속 시원하게 울면 좋겠다. 눈물 콧물이 빗물에 섞여서 줄줄 흘러도 아무도 우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다.


수영장에서 물장구치며 노는 엄마와 딸아이를 쳐다본 날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딸아이가 가지고 노는 튜브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마음에 수심이 가득 찼을 때 살짝 몸을 기대기만 해도 물 위에 둥둥 떠다닐 수 있는 튜브 같은 존재가 나였으면 좋겠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젖은 몸과 마음 달래려 기댈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도 나는 늘 엄마에게 코미디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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