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마음을 담고 싶을 때, 윤동주 '바람이 불어'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6

by 아멜리 Amelie
바람이 불어(윤동주 시 | 신승민 곡) Ten.정의근


2018년 7월 17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싱가포르에 온 지 네 달이 흘렀다. 그 사이 가족끼리 왕래하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도 생겼다. 그중 한 가족은 인도에서 왔다. 남편의 회사 친구인데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15년을 살다가 싱가포르에서 3년 동안 근무하게 되어 왔다고 했다. 아쉽게도 아이들 교육 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만나자 이별인 셈이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 집에서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송별회까지 총 세 번을 만났는데 처음부터 아주 쉽게 친해졌다. 심지어 우리 아이도 이집 식구들을 좋아한다. 영어가 안돼 그간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한 아이가 친구 부부를 좋아하는 게 의아할 정도이다. 우린 문화적 배경도 다르고, 사는 동네도 다르고, 키우는 아이들 또래도 다르다. 남편과 그 친구가 같은 회사를 다닌다는 것 외에 비슷한 점이 없는데 나 역시나 이들 부부에게는 그냥 마음이 간다. 웃는 얼굴이 편안하고, 이야기하는 내용이 담백하다. 선한 사람들이라는 게 그저 느껴진다. 강렬한 맛은 아니지만 음식에 손이 가게 만드는 들기름 같은 사람들이다.

송별회 저녁 식사는 한국식으로 차렸다. 애써 만든 비빔밥과 잡채를 맛나게 먹고 후식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람부탄을 까먹었다. 타향살이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소리로 웃을만한 육아 에피소드도 빼놓지 않고 나눴다. 까맣게 늦은 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남편과 큰아이가 지하철역까지 친구 부부를 배웅했다. 이들과 헤어지기 직전 큰아이가 손을 흔들며 아주 큰 목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땡큐(Thank you)!”

아이는 뭐가 고마웠을까.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친구 부부가 자신을 이뻐해 주어 고마웠을까. 한국에 있을 때보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이가 뜸한 탓에 우리 집에 와준 것만으로 고마웠을까.

아이에게 뭐가 그리 고마웠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을 듣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고마웠어.”

친구 부부를 딱 세 번 만나면서 두 번은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시간이었음에도 아이는 마음으로 뭔가를 나눈듯했다. 꼭 말이 통해야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를 나에게 던진 셈이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을 나누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문이 막혀 마음이 향하는 길을 향하지 못하기도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도마뱀을 발견했던 날이었다.

나: 친구들한테도 도마뱀 있다고 말해줬어?
아이: 아니. 난 영어를 못하고 친구들은 한국말을 몰라서 아무 말도 안 했어. 나 혼자 봤어.

아무리 재미있고 신기한 걸 봐도 그 사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는 현실이 서글퍼 보였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기에 조바심 내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대신 아이가 너무 외로워하거나 예전 일상을 그리워하거나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보듬어주기로 했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좋아하는 책 다섯 권을 읽는다. (다섯 살이어서 다섯 권이다.) 늘 보는 책도 있고 오랜만에 꺼낸 책도 있다. 책을 보다 보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우리 집에 살던 달팽이가 ‘영원히 안녕’하며 하늘나라로 간 이야기, 할머니 집에서 사촌 오빠랑 공연 놀이했던 이야기, 양평 주말농장에서 다슬기를 줍고 옥수수를 땄던 이야기, 감기가 심해져 병원에 입원했던 이야기, 이모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로 회오리바람 놀이한 이야기, 엄마 회사에 놀러 가서 회사 이모들을 만난 이야기까지. 동화책은 끝났는데 우리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한참을 웃고 떠들면 아이가 유치원에 가자고 한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말을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온 셈이다. 유치원을 가는 내내 또 말이 많다. 하늘에 떠있는 먹구름과 머리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발밑에 채이는 돌멩이와 나뭇잎, 지팡이를 짚고 가는 할머니,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광고판을 달고 달리는 버스까지 아이의 이야기 소재가 된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유치원에 도착해서 아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바이(Bye)!”

새로운 언어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 같은 말이다. 씩씩하고 재밌게 생활하길 기대하며 눈 찡긋하고 돌아선다.

사람과 사람이 말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영역보다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의 영역이 훨씬 크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이왕이면 말과 글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싶다. 공감이 가능한 표현 방법으로 마음을 구체화할 때 감동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표현 방법이 다양해지면 더 좋다. 말과 글부터 음악과 몸짓, 그림과 빚어내는 작품들까지 가슴속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아이가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 커서 좋은 학교를 가고, 연봉이 높은 회사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에 흠뻑 빠져들기를 바란다. AI 시대가 도래하기에 굳이 애써 다른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언어를 통해 만나는 세상이 넓어지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과 세계를 통한 감동 또한 넓어지고 깊어진다. 아이가 그 기쁨을 맛보면 좋겠다. 그리고 영어를 잘하기 전에 우리말을 더 잘하면 좋겠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자라면 주옥같은 소설과 시를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말과 글 뒤에 숨은 생각을 같이 찾아가는 것, 이것만큼 재미난 놀이가 또 없으니 말이다. 나란히 앉아 필사도 하고, 좋은 시구를 외우면 좋겠다. 글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들으며 더 큰 감동을 만들면 얼마나 행복할까. 거기다 풍경 좋은 곳에서 강하면서 부드러운 커피까지 한잔한다면 천국이 따로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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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영어 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들 즈음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인 ‘바람이 불어’를 만났다.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우아한 악기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거기다 윤동주의 시가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피아노 건반 짚듯 가사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듣는다. 가사에 깊이 빠져서 윤동주도 되어본다. 테너 목소리가 잠시 쉬는 순간에는 악기들의 선율을 따라 정처 없이 배회한다. 가곡 하나를 듣고 있을 뿐인데 가사를 따라 시를 읊으며 차분해지기도 했다가, 마음을 후벼파는 악기 소리와 선율 덕분에 격한 감정에 취하기도 한다. 한국 가곡의 묘미가 여기에 있나 싶기도 하다. 말과 음악이 공존하기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 말이다.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러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엊그제 아침, 아이가 가요를 듣다가 ‘심장이 터질 것 같은’이란 가사를 들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다. 가만히 서서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고 했다. 심장이 뛰고 있단다. 제자리 달리기를 하고 나서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고 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뛴단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물건을 보면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릴 때가 있다고 설명해줬다. 뭔가 진심으로 이해했다는 듯 환하게 웃는다. 아마 그런 경험이 벌써 있었던 것 같다. (추측건대 앞 동네에 사는 유치원 같은 반 남자아이의 얼굴을 떠올린 듯하다.) 언젠가 노랫말에 관심이 많은 이 아이와 나란히 앉아 시를 쓰고 시를 읊고, 가곡을 들으며 감동하는 날도 오겠지? 이 생각을 하니 나이 드는 것도 꽤 멋진 일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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