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춤추고 사랑하라,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8

by 아멜리 Amelie

2018년 8월 7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에 위 순서 그대로 해봤다. 그 결과, 두 명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췄고, 한 명은 입으로 비트박스를 했으며, 한 명은 아직 움직이는 방법을 잘 몰라 반짝이는 눈빛으로 대신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의 메시지에서 ‘덥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안 더웠던 여름이 있었던가 싶다가, 얼마나 더우면 다들 저렇게 힘들어하나 싶다가, 그래도 거긴 곧 가을이 찾아오지 않냐며 내심 부러워하기도 한다. 내가 사는 싱가포르는 아침부터 밤까지, 1월부터 12월까지 덥고 또 덥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은 한국이나 싱가포르나 똑같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사이인데, 난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태양 아래에서 분주하다. 큰 아이 유치원 등하교 시간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아이 등 하원을 같이 하면서 피부색이 점점 짙어졌다. 이곳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정도로 피부색이 변했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놀라는 현지인도 가끔 만난다. 유치원을 다녀온 아이는 밖에 나가 놀자는데 해가 무서워 나갈 수가 없는 때가 있다. 놀이터에 가고 싶은데 그늘이 없거나, 산책을 하고 싶은데 바람 한 점 불지 않거나, 야외 수영장에서 놀고 싶은데 이제 막 6개월 된 둘째 아이를 데려갈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날은 집에서 온종일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린다. 조만간 우리가 화가가 될 것처럼. 책을 보고 또 본다. 조만간 우리가 독서 대회라도 나갈 것처럼. 그러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집에서 놀기의 피날레는 단연코 노래와 춤이다.


우리 집에 사는 네 사람은 대체로 흥이 많다. 아,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두 사람은 흥이 차고 넘치고(나와 큰 아이), 한 사람은 기본적인 흥을 탑재하고 있고(남편), 한 사람은 이제 흥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6개월 된 둘째 아이) 인간에게 흥과 신명이 어느 정도 탑재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은쉽다.


흥&신명 유무 확인 방법


1. 정성스레 차려놓은 밥상 앞에 정갈한 자세로 앉는다.

2. 기쁜 마음으로 젓가락, 숟가락질을 하며 살짝 허한 뱃속을 채운다.

3. 조심스레 싸이의 ‘예술이야’ 또는 아비치의 ‘waiting for love’ 또는 모모랜드의 ‘뿜뿜’을 틀어본다.

4. 식탁 밑에서 누구 발가락이 까닥이고 있는지 찾아본다.

5. 식탁 위에서 누구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빠지는지, 누가 머리를 까닥이는지 둘러본다.

6. 의자 위에서 누구 엉덩이가 들썩이는지 돌아본다.


어느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에 위 순서 그대로 해봤다. 그 결과, 두 명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췄고, 한 명은 입으로 비트박스를 했으며, 한 명은 아직 움직이는 방법을 잘 몰라 반짝이는 눈빛으로 대신했다.


그리하여, 네 식구가 모여서 밥을 먹거나 과일을 먹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놀이를 할 때 맨 처음에 하는 게 있다.


삐쥐엠(BGM)은 뭐로 할까

앞으로 진행되는 모든 행위에 어울리는 노래를 먼저 고르는 것은 흥을 돋워 몸 구석구석에 즐거움에 가득 찬 혈액을 보내고 에너지로 충만한 몸과 마음으로 전환시켜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게끔 하는 첫 단추를 꾀는 것과 같은 셈이다.


오후 2시,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둘째 아이 유모차를 밀면서 태양 아래를 걷는다. 온몸을 휘감는 열기가 마치 몇 천리 떨어진 사막에서 불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본 적은 없지만 이미지는 선명한 사막의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떠올랐고, 연이어 이글스(Eagles)가 부르는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가 떠올랐다. 라스베이거스와 캘리포니아 사이에는 그 어떤 연결 고리도 없다. 그저 싱가포르의 불타는 여름에서 시작된 상상은 외로운 사막 바람을 따라 라스베이거스로 갔다가 쓸쓸한 기타 선율의 이미지가 뒤섞이면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유모차를 밀면서 걸어가는 발걸음인데 발바닥 한구석이 마치 록 페스티벌에 있는 듯했다. 유모차 대신 맥주캔을 쥐고,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 도로 옆 인도가 아닌 드넓게 펼쳐진 풀밭 위에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을 줄줄 흘리면서 음악에 맞춰 방방 뛰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기타 소리를 따라 미간에 힘이 들어가고 눈썹이 춤을 춘다. 제아무리 태양이 뜨거운 열을 발산한다고 해도 내 심장과 몸에서 뿜어져 나가는 열기를 따라갈 수는 없으리라 장담하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허공에 그렸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발가락과 손가락을 움직여본다. 신호가 바뀌고 이어폰을 빼면서 서둘러 엄마 모드로 전환한다. 이내 유치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호텔 캘리포니아의 기타 소리를 닮은 태양은 그냥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하늘을 장식하는 일상적인 햇살이 되었다.


IMG_9191.jpg 일주일에 한번 동네에서 발레를 배운다. 발레를 배운다기 보다는 핑크로 몸을 휘감고 움직이러 간다고 해야 맞을 듯. 춤추러가는 그녀의 얼굴은 늘 밝고 경쾌하다.


음악이 나오면 자동으로 춤을 추는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콕 집어 틀어달라고 한다. 춤을 좀 춰야겠다고 다짐한 날이면 이것저것 요청하다가 마지막엔 꼭 이 음악이다.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D.Shostakovich Waltz No.2).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발레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온다. 바닥에 깔린 매트 맨 끝에 한 마리 학처럼 서 있다가 음악이 시작되면 조금씩 움직이며 매트 가운데로 이동한다.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작고 여린 몸을 움직인다. 어디서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제멋대로인 움직임이지만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진짜 춤이 된다. 음악에 등장하는 악기가 많아지고 적어질 때마다 아이는 소리의 두꺼움과 강약과 속도를 몸으로 표현한다. 가장 신기한 건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을 처음 들었던 저녁이었다. 어김없이 어떤 음악을 삐쥐엠으로 하고 놀까 고민하다가 이 음악을 틀었다. 음악을 듣자마자 아이는 환한 웃음과 함께 움직였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마술을 가진 음악, 그래서 토끼 손에 이끌려 이상한 나라로 향하는 엘리스가 되고 싶은 날 찾게 되는 음악, 선율이 시작되면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몸이 먼저 춤을 추고 있는 음악이 바로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을 사랑해서이다.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희로애락의 서사를 음악은 품고 있다. 음악을 듣다 보면 희로애락에 맞는 몸의 움직임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음악에 이끌려 춤을 추고 있노라면 나와 아이는 시종일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고, 서로의 심장 소리와 호흡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고, 부둥켜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는 환상적인 게임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듣고, 춤추고, 사랑하며 살고프다. 온몸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면서 말이다.


오늘 하루 뭘 들으며 즐거이 놀았는지 플레이리스트를 휙휙 넘겨본다. 아바(ABBA)의 노래로 만든 영화 맘마미아의 OST를 오후 내내 들었다. 그리고 춤을 췄다. 우리의 오늘은 듣고 춤추며 사랑하는 시간으로 가득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내일 아침엔 어떤 몸과 마음의 상태로 뭘 듣고 싶어 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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