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9
2018년 8월 14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가끔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이 있다. 선생님들의 학습 준비를 위해 아이들이 쉬는 날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시간이다. 하루 종일 애들이랑 집에서만 놀기 아쉬워 나갈 궁리를 한다. 지난번에 다녀온 미술관을 갈지, 아직 가보지 않은 박물관을 갈지 고민한다. 아이는 늘 가던 미술관에 가고 싶어 한다. 법원 옆에 있는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Singapore)인데 1층에 아이들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판화 체험장에서 도장 수십 번 찍고, 도자기 체험장에서 컴퓨터로 도자기 수백 개 만들고, 작품 참여 코너에서 인물 그림 수천 개를 그린다. 반나절 거뜬히 놀 수 있는 곳인데 무료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야 한다. 한 손에 큰아이 손을 잡고 한 손에 작은 아이를 실은 유모차 손잡이를 쥐고 서있다. 유리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보름달 두둥실 떠올라 하늘을 채우듯 머릿속에 한 문장이 꽉 차오른다.
내가 여기 왜 있을까?
십오 년 전이었다. 엄마에게 프랑스어를 배우러 프랑스에 가야 한다고 했다. 왜 프랑스어를 배워야 하냐는 엄마의 질문이 날아온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데 알아보니 영어 다음으로 많이 쓰는 공식 언어가 프랑스어여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때 이미 국제기구에 갈 능력도 안 되었고, 국제기구 같은 큰 꿈은 너무 막연해 꾸지도 않을 때였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것도 프랑스에서 말이다.
스물세 살 2월,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엄마 아빠와 대구공항에서 헤어지며 펑펑 울고, 김포공항을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펑펑 울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까지 가는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은 읽지도 못한 채 울면서 일기를 썼다. 비행이 5시간을 넘기 전에는 비행기가 회항해 집에 가길 바랐고, 5시간 넘어가니 이제 그냥 가던 길 서둘러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학연수 지역으로 선택한 도시는 표준 프랑스어를 구사한다는 앙제(Anger)였다. 파리에서 이곳까지는 테제베를 타고 한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학교에서 교양 프랑스어 한 학기 배운 게 전부인 프랑스어 실력으로 테제베를 타는 곳까지 잘 갔다. 학생 신분으로 철도 회원이 되면 할인이 가능하다기에 회원 등록까지 알차게 하고 티켓을 사서 플랫폼으로 갔다. 플랫폼에 기차 2대가 서 있었는데 2대 기차의 번호와 내 티켓에 쓰인 기차 번호가 모두 달랐다. 이미 불법체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뜬눈으로 지샌 지 열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밤은 깊어가고, 짐가방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정신이 또렸해졌다. 기차를 놓치면 노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차에 올라타 ‘앙제’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고, 두 번째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 중 한 아주머니가 뭐라고 하는 걸 보고 의심도 하지 않고 짐가방을 모두 싣고 자리에 앉았다. 기차 할인권 사느라 현금을 많이 써버려서 여행 가방 하나를 열어 현금을 꺼내려고 보니 여행 가방 지퍼가 꼼짝을 하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어보려 애쓰다가 포기한 채 도착지를 알려주는 안내방송에 귀 기울였다. 피곤했지만 잠을 잘 수 없었고, 들으려 애썼으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귓가에 ‘앙제’가 꽂혔고 또다시 짐가방을 모두 둘러업고 내렸다. 기차역을 빠져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11시가 넘어 도시는 잠들어 있었다. 택시를 타고 메모지에 적어둔 홈스테이 집에 가자고 했다. 기사 아저씨가 홈스테이 집 근처에 가서는 집을 못 찾고 한참을 헤매었다. 결국 집은 찾지 못했고, 기차역으로 돌아가자고 했고, 아저씨는 택시 값을 다 받아 갔다. 기차역 바로 앞 호텔에 갔다. 지역 와인 행사가 있어서 방이 꽉 찼다고 했다. 조금 걸어 두 번째 호텔에 갔다. 마지막 방 하나가 있다고 했다. 점잖아 보이는 지배인 아저씨에게 현금이 여행 가방에 있는데 가방이 고장 났다며 부서져도 좋으니 가방을 열어달라고 했다. 친절한 지배인 아저씨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가방과 사투를 벌였고 부수지 않고 열어주었다. 현금으로 숙박비를 계산하고 터벅터벅 걸어 방에 들어왔다. 빗물에 젖은 두꺼운 외투를 벗지도 않고 침대에 털썩 주저 않아 유리창을 세차게 때리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눈물을 찔찔 흘리며 생각했다.
내가 여기 왜 있을까?
“내가 여기 왜 있을까?”라는 질문은 살면서 흔히 하는 질문의 변형된 모습이다. 내가 왜 이 일을 할까, 내가 왜 마음 불편하게 살고 있나,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내가 왜 이 사람을 만났을까 등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하는 질문들과 닮았다. ‘왜’라는 의문사가 있어서 답을 구하는 질문 같아 보이지만 여기서 ‘왜’는 속앓이가 섞여 있는 한숨을 문자로 표시해둔 것뿐이다. 이 질문은 백 퍼센트 우울, 부정, 고통만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2% 정도의 기대감이 있을 수 있고, 가끔은 10% 정도의 행복과 즐거움이 섞여 있기도 한다. 100% 부정의 감정이 아님에도 이 질문이 머릿속에 둥둥 떠돌아다니는 날이면 마음이가라앉고 얼굴색이 어두워진다. 이 질문이 왜 떠올랐는지 냉정하게 돌아보며 실마리를 찾아본다. 현실을 직시해야만 저 질문이 등장한 배경이 뚜렷해진다. 100% 나의 의지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제스스로 만든 확신이 부족해진 상황이 되었거나,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이 생각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순간이 되었을 수 있다. 그냥 하는 푸념 정도로 치부해도 되는 상황도 있고, 극복하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인생 과제이거나 너무 꼬여버려 풀 수 없는 인생 숙제일 수도 있다. 후자인 경우엔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같은 위로도 들리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 애쓰지 말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미간과 입꼬리와 어깨와 손가락에 힘을 빼자. 머리는 한쪽으로 조금 기울여도 좋고, 눈을 지그시 감아도 좋다. 강원도 어느 양떼목장에 있는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손끝과 귓불을 휘감는 선선한 바람을 느껴보자.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이 고요히 흘러가고, 눈 빛 닿는 모든 곳이 초록이다. 음악이 끝나고 나면 다리에 힘주고 일어나 엉덩이 한번 털고 왔던 길 돌아서 ‘왜 내가 있는지’ 궁금했던 그 자리로 가자.
이렇게 '내가 여기 왜 있을까?'와 같은 질문의 이유와 배경을 찾기 위해 생각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들어 내가 찾은 해법은 이러하다. “내가 여기 왜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시점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답, 즉 정답과 같은 이유를 찾으려 굳이 애쓰지 않는다. 그것을 선택하던 그 순간의 직관과 선택을 뒷받침했던 데이터는 어딘가에 존재할테니 애써 더 찾으려들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은 희미해지고 기억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어찌어찌 살아 나가다 보면 답변의 근간이 되는 요소가 지금보다 명확하게 떠오르고,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해하고 행하는 경우도 오리라 생각할 뿐이다.
그래,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나가는 것이다. 고꾸라져 넘어지고 엎어지고 난리가 나도 툴툴 털어내고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가 보는 거다. 머리 싸매고 백날 생각해도 안 떠오르는 생각은 돌덩이이를 하나 껴안고 물 속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과 같다. 이럴 때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는 건 플라스틱 쓰레기처럼 눈에 보여도 있어도 소용없는 것들일 수 있다. 질문에 답할 논리를 찾다가 그 논리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가 여기 왜 있을까?”가 떠오르는 날에 바그너의 지크프리트의 목가(Wagner, Siegfried idyll)를 들어보자. 이왕이면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로 말이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 애쓰지 말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미간과 입꼬리와 어깨와 손가락에 힘을 빼자. 머리는 한쪽으로 조금 기울여도 좋고, 눈을 지그시 감아도 좋다. 강원도 어느 양떼목장에 있는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손끝과 귓불을 휘감는 선선한 바람을 느껴보자.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이 고요히 흘러가고, 눈 빛 닿는 모든 곳이 초록이다. 음악이 끝나고 나면 다리에 힘주고 일어나 엉덩이 한번 털고 왔던 길 돌아서 ‘왜 내가 있는지’ 궁금했던 그 자리로 가자. 하던 일을 하고, 가던 길을 가보자. 하기 싫고, 힘들고, 어려운 그 일에 다시 손을 얹어 보자. 하다 보면, 가다 보면 또 다른 방향으로 난 길로 들어서고 있겠지. 그 길 역시 평지일 수도 있고, 언덕일 수도 있고, 심지어 내리막길일 수도 있다.
가끔 사람들이 “왜 프랑스에 갔어요?”라고 물어본다. 얼핏 들으면 ‘불문과’라 들리는 ‘국문과’를 나왔는데 거길 갔다니 의아한거다. 아주 당당하게 “그냥 거기 살아보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에 또 어떤 사람들은 머리를 갸우뚱한다.(내가 금수저라 생각할 수도 있고, 정신이 나간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바게트 뜯어 먹으며 살면서 프랑스어 배워서 인생에 유용했냐고? 일하면서 프랑스어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길에서 프랑스 사람들 만나서 수다 떨거나, 좋아하는 만화 볼 때 가끔 쓴다. 투자 대비 효용이 떨어져 보이기에 굳이 멀리까지 왜 갔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인생에서 효용만 필요하지는 않다. 기대와 행복과 목표를 위해 불속으로 몸을 던지는 불나방이 될 수도 있다.
혹시 지금 “내가 여기 왜 있을까?”와 유사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 내밀며 말해주고 싶다. 그냥 한번 가보시죠. 오늘 같은 시간이 쌓여서 십 년 후에 어떤 길을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힘들면 쉬면서 한숨 돌리고 또 가요! 가다 보면 뭐라도 되겠죠! (라고 나에게 속삭여준다. 어찌하다보니 애 둘의 엄마가 되었고 사시사철 무더운 나라에서 고군분투하는 나를 위한 말이다. 셀프 위로도 가끔 힘이 큰 힘이 된다.)
우린 지금 뭐라도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