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즈음에, Non ti scordar di me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13

by 아멜리 Amelie
Dmitri Hvorostovsky: Non ti scordar di me

2018년 9월 11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중학생 무렵 어른들을 볼 때마다 ‘저 사람들은 무슨 낙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했다. 어린 눈에 그들은 인생을 다 산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만큼 마음 설레는 꿈도 없어 보이고, 돈 버는 일 외에는 이루기 위해 애쓰는 일도 없어 보이고, 히히하하호호 신나게 웃을 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어 보이고, 그저 현상 유지나 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어린 시절 내 눈에 ‘어른’으로 비친 사람들의 나이를 헤아려보니 마흔 언저리였다. 어른. 내가 어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른으로 보일 때에 이르렀다. 나이가 들어가는 내 모습을 주관적인 기준과 객관적인 기준으로 바라보고 평가할 때 결과는 다르다. 주관적인 기준으로 보면 나의 신체적 나이는 30대 초반과 별반 다르지 않고 정신 나이는 마냥 20대 초반이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바라보면, 그냥 내 나이 그대로 보인다. 여유와 연륜이 조금 묻어나는 말과 행동을 할 때도 있을 테고, 요즘 말로 꼰대 같은 행동을 할 때도 있을 애 둘 딸린 나이를 꽤 먹은 여자다. (아직도 세계여행을 떠날 만발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기에 객관적인 기준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싶지 않다.)

어느덧 내가 그 나이에 이르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살면서 현상 유지만큼 어려운 게 없고, 평범하게 사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고, 무탈하게 살아나가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것을.

반나절 동안 애들과 씨름하며 놀고 난 후 폭탄 맞은 듯 정신없는 집을 하루에 한 번씩 정리하고, 애 낳기 직전 몸무게로 가까스로 돌아왔기에 다시 임산부 몸무게로 돌아가기 싫은 마음에 하루에 한 번씩 체중계에 올라가고, 글을 대하는 마음과 지식이 한순간 무너져버릴까 봐 흘러가는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 책 한 쪽 간신히 읽는 이유는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현상 유지마저 버거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십 년 넘게 내 이름으로 월급 받아살면서 내 손으로 내 밥 지어먹을 돈은 벌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제 자부심을 위해 일하는 시기가 지난 듯싶다. 애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교육 삼아 여행도 다녀야 하고, 먹이고, 입히며 키우려면 의무감에 돈을 벌어야 한다.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일이 많아 골치가 아파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한 탓에 목 디스크와 오십견이 일찌감치 찾아와도 한순간에 다 때려치울 수 없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 버는 행위가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아 일 외의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가 되었다.

갑자기 마흔 운운하는 이유는 며칠 전 짝꿍의 서른아홉 생일을 축하하며 나이 이야기를 하다가 둘 다 상념에 젖었기 때문이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나, 어느새 애가 둘이나 되었나, 우리는 익어가고 있을까 아니면 저물어가고 있을까, 지금 우리는 인생이란 여정에서 어디쯤 지나가고 있을까.


IMG_0167.jpg 짝꿍이 생일을 맞이했다. 생일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살았는데 애를 낳고 나서부턴 '세상과 처음으로 만난 날' 정도의 의미는 부여하고 싶어졌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도전하기 딱 좋은 나이에 우리는 싱가포르에 온 셈이다. 짝꿍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멀리에서 오신 두 분도 함께 하셨다. 사십 년 전 짝꿍을 낳아 키우신 분들이다. 자식의 생일을 축하하기 보다 태어나자마자 멀리 보낸 손자와 곁에 두고 보던 손녀가 보고 싶어서 한달음에 날아오셨다. 큰아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온 듯 좋아했고, 부모님이 하루 온종일 둘째 아이를 안아주고 놀아주어 나도 덩달아 좋았다.

시부모님과 같이 여행하듯 생활한 지 일주일이 지나가니 문득 올해 설날이 떠올랐다. 짝꿍 없이 아이들과 설 연휴 내내 시댁에 머물렀다. 짝꿍은 이제 막 태어난 아이 얼굴만 보고 싱가포르로 가버렸고, 애 낳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몸 회복은 더디었고, 말을 안 듣는 큰 애와 말을 못 알아듣는 작은 애와 설 연휴를 보내기엔 마음이 조금 쓸쓸했다. 시댁에서 나흘 정도 어른들과 생활하면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묘한 광경을 엿볼 수 있었다. 형님네 식구들이 모두 다녀가면 어머님은 주방 정리를 마치고 ‘딸깍’ 소리를 내며 주방 불을 끄고 소파 오른쪽 끝, 어머님 자리에 몸을 기대신다. 아버님은 애들이 줄줄 흘리고 다닌 종이 조각이며 연필, 가위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휭’ 돌리고 소파 왼쪽 끝, 아버님 자리에 몸을 맡기신다. 곧이어 티브이가 제 할 일을 시작하 듯 환하게 켜진다. 한창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세상이 들썩이던 때였고, 경기 중계가 연일 이어지던 날들이었다. 부모님은 졸린 눈을 비벼가며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컬링과 피겨 스케이팅, 쇼트트랙 경기를 챙겨 보다 까만 겨울밤이 더 새까매지면 티브이 리모컨을 찾아 종료 버튼을 누르고 잠을 청하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내가 바라본 네 번의 밤 풍경은 비슷했다. 밤새 두어 번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고는 화장실을 가느라 거실에 나간 어느 새벽이었다. 총총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아이가 누워 자는 방으로 돌아가다 문득 이 집을 닮은 주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득한 마음이 몽글몽글 일어났다. 서울에 살 때 주말이면 드나들던 집이었지만 우리의 공간으로 돌아가고 난 후 부모님이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하시는지 몰랐다. 아이들이 흘리고 다닌 자그마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우리가 먹고 남긴 그릇을 정리하고 식탁을 슥 한 번 닦고 무거워진 어깨를 쉬게 할 자리를 찾아 앉는 어른들의 모습은 생각지도 못했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 위 불이 꺼지고, 굵고 진한 화장을 모두 지운 배우들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오듯 손님이 모두 떠나고 그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시간을 맞이한 부모님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만난 시부모님의 민낯이었다.

이제 막 배밀이를 하려고 애쓰는 손자를 눕혀놓고 내려다보는 어른들의 모습을 멀찍이 서서 바라본다. 웃음꽃이 한가득 피어난 얼굴로 찹쌀떡처럼 희고 맑은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연신 몽글몽글한 아이의 발과 다리를 만지작거린다. 저 모습 그대로 40년 전 내 짝꿍을 키우셨겠구나 싶었다. 나는 모르는 짝꿍 식구의 시간들과 생각이 조금씩 아이들의 놀이와 대화에서 엿보였다. 사십 년 전 당신 아들도 제대로 안아본 적이 없다는 아버님은 어색한 모습으로 둘째 아이를 잠깐씩 안아보시곤 희멀건 웃음을 지으셨다. 첫째 아이 생일 선물로 레고를 사주신 어머님은 아이와 나란히 앉아 돋보기를 쓰고 설명서를 더듬더듬 읽어가며 레고 집 하나를 완성하셨다.

부모님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십 년 후에 손자뻘 되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으면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에 다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좋아하는 일 중에는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 세계 동요를 배워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일도 재미있겠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전 세계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을 정리해 보여주는 것도 할 만해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 이걸 다 해내면 참 멋진 할머니가 되어 있겠다 싶다.


IMG_0272.jpg 오랜만에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시간에 야외에서 음악을 들었다. 풀벌레도 박자 맞춰 화음을 넣을 것 같은 밤이었다.


지난 주말, 보타닉가든에서 클래식 공연이 있다고 해서 산책도 할 겸 온 식구가 길을 나섰다. 한국에서 온 남성 중창단이 싱가포르 여름 하늘 아래에서 ‘아리랑’과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는데 느낌이 묘했다. 비가 내려 공기는 묵직했고, 해가 어슷어슷 지는 시간이라 하늘빛은 붉게 물들었고, 공연장을 빙 둘러싼 푸르른 나무들은 짙은 초록을 띄었다. 마지막 곡으로 이탈리아 가곡 <Non ti scordar di me>이 흐르기 시작했다. <Non ti scordar di me>는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중창단의 무겁고 단단한 목소리에 실려 훗날 식구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눌 추억 하나가 쌓이고 있었다.

설날에 내가 부모님의 민낯을 봤고 지난 일주일동안 부모님은 나의 민낯을 보셨다. 서로의 민낯을 조금 보여준 덕분에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 오늘 부모님은 어깨를 기대 쉴 수 있는 당신들의 소파가 있는 그 곳으로 향하신다. 지나온 세월도, 흘러가는 시간도, 닥쳐올 시간도 모두 꿈속처럼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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