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14
2018년 9월 19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저녁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나눠 먹는 식구 4명 중 2명이 9월에 태어났다. 주인공은 바로 큰아이와 남편. 둘의 생일 선물을 뭘로 할까 고민했고, 둘에게 필요한 걸 해줬다.
큰아이 생일 선물은 유치원 친구들을 초대한 생일파티! 생일에 초대한 친구들 국적이 모두 달라서 파티 음식으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한국 음식을 한상 차렸다. 생일파티하기 전날 재료 손질을 마치고 새벽부터 일어나 지지고 볶고 굽기 시작했다. 잡채, 불고기, 떡볶이, 호박전을 내 손으로 만들어 손님상에 내어 놓고 너무 뿌듯했던 나머지 생일파티로 신난 아이는 사진에 담지도 않고 음식 사진만 연신 찍어댔다. 아이는 친구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큰 선물을 준 덕분에 파티 내내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이 친구들 엄마 아빠가 음식이 맛있다며 ‘엄지척’을 해준 덕분에 나는 아이보다 백배, 천배 신이 나서 입이 찢어져라 웃고 다녔다. 그리하여 두 시간 남짓 진행한 생일파티가 끝이 나고 남은 음식을 삼일 동안 내내 먹었다. (이 시점에서 ‘아멜리는 음식을 잘하는구나’라는 오판은 금물. 처음 먹는 ‘한국’사람은 조금 놀랄 수 있으나 계속 먹다 보면 먹을만한 정도이다.)
결혼하기 전,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생일을 챙긴 적이 없었다. 생일에도 야근을 하거나 밤을 지새우며 일했던 날도 허다했고, 생일이라고 특별히 뭘 하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생일날 아침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낳아줘서 고맙고,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내 마음을 전한 게 전부였다. 그나마 신경 써서 챙긴 게 남편 생일이었다. 회사로 꽃을 보내기도 했고, 마음 듬뿍 담은 편지를 써서 주기도 했다. 남편이 태어난 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흘러갔다. 대신 ‘시간’을 선물했다. 2박 3일 동안 배를 타고 다니며 스킨스쿠버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다녀오라고 했다. 애 둘을 오롯이 나 혼자 봐야 하기에 미안해하면서도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은 남편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아, 또 한 번 큰 선물을 전한 날이 있었다. 아이가 ‘칭찬 나무’ 스티커를 모두 채워서 약속한 대로 갖고 싶어 한 공책을 사러 쇼핑몰에 갔다. 큰아이를 칭찬했던 이유는 대부분 단순하면서 명쾌하다. 밥 먹을 때 돌아다니지 않거나, 울면서 떼쓰지 않고 마음을 말로 표현했거나, 누군가를 도와줬을 때 아이를 칭찬했다. 조금 덜 명쾌하지만 아이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행복했다고 느끼거나, 뭔가 뿌듯한 마음을 느낄 때도 칭찬 나무에 스티커를 붙였다. 칭찬받을 ‘짓’을 하거나 꾹꾹 눌러 담은 밥처럼 알찬 하루를 보낸 날 아이는 칭찬 스티커를 받을 수 있었다. 칭찬 스티커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파악한 아이는 뭔가 착한 일이라 판단되는 행동을 하고는 곧바로 달려와 스티커를 달라고 하기도 한다. 행위에 대한 대가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행동에 옮긴 게 귀여워 아낌없이 스티커를 준 적도 있다. 어떤 날은 아이가 배꼽을 잡고 크게 웃었을 뿐인데 칭찬 스티커를 줬다. 다 웃고 난 아이는 스티커를 받고 기분이 좋아서 연신 미소를 지었다. 살다 보면 ‘보물 찾기’처럼 예상치 않은 즐거움도 있으니 앞으로도 즐겁게 지내보자는 마음도 있었고, 앞으로도 칭찬받을 짓 더 많이 해보자는 격려도 숨어 있었다.
사회생활 12년을 통틀어 칭찬을 참 잘하는 분이라 생각하는 사수가 한 명 있었다. 밥벌이 2년 차 시절 전시 회사에서 일할 때 상사였다. 이 분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졌고, 칭찬받은 ‘짓’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서 명쾌했다.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고, 칭찬 속에 뼈가 담긴 말들이 있어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칭찬도 있다. 이유를 알고 칭찬받는 경우도 흔하지 않다. ‘좋다’, ‘잘했다’, ‘괜찮아’로 끝나는 칭찬이 대부분이거나 칭찬하는데 굳이 이유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부연 설명은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 똑똑한 나의 사수는 그때 이미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분의 칭찬 덕분에 더 많은 일을 도전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고, 일머리를 깨쳤다. 아낌없는 칭찬은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을 향해 뛰고 싶게 하는 ‘열정 제조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칭찬 범위가 1부터 10까지인데 오늘 레벨 4 정도의 칭찬을 받았다고 하자. 그 칭찬에 머물러 있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것보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 더 잘 할 방법을 찾아다니며 애썼다. 있는 힘없는 힘을 다해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마음은 고된 여행길에서 나침반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레벨 4를 뛰어넘은 레벨 5 정도의 칭찬을 받았고 새로운 감동의 물결 속에 몸을 던졌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 수 있도록 칭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칭찬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칭찬하는 이유’는 ‘피드백’과도 같은 말일 텐데, 결과나 행동에 대한 평가를 알아듣기 쉽게 알려주어 다음에 비슷한 행동을 할 때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때 당시 내 사수는 칭찬의 이유를 아주 명쾌하게 알려줬다.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셈이었다.
오늘 하루도 참 잘 살아나왔네. 많이 피곤했겠다. 고생 많았어.
내일은 오늘만큼 재미있거나 오늘보다 수월할 거야. 참 잘했어.
세월이 흘러 내가 후배들을 칭찬해야 하는 자리에 왔고, 아이를 칭찬하는 엄마가 되었다. 입말로 던지듯 내뱉는 칭찬보다 진심으로 생각하고 건네는 칭찬은 어려웠다. 칭찬한 이유를 이해하기 쉬운 말과 글로 풀어 전달하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꾸역꾸역 그 역할을 하다 보니 이제야 조금 할만한 일이 된 게 칭찬이다. 고래도 아무 칭찬 장단에 맞춰 춤을 추진 않았을거다. 춤을 춰도 되는 칭찬에 맞춰 진심을 다한 춤사위를 보여줬을거다. 그런 칭찬은 하기 힘든 만큼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칭찬을 듣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애정을 쏟아 쓴 글을 남편에게 읽으라고 건네는 날이 종종 있다. 남편은 내가 쓴 대부분의 글을 읽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잘 썼어.’ 첫 피드백은 주로 이렇게 시작한다. 칭찬의 힘이 얼마나 큰 지, 또 그 힘을 더 크게 하려면 뭐가 필요한 지 아는 나로서 그냥 넘길 수 없는 대화가 시작된다. ‘어떤 점을 잘 쓴 것 같아?’ 남편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내 질문에 걸려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일상생활이 생동감 있어서 좋아.’ 이 정도는 총평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마음을 잘 표현했고, 어느 문장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 것 같아?’ 이런 구체적인 질문이 시작되면 남편은 아마도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생각에 잠길 것이다. 여기까지 메신저로 잠깐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남편은 칭찬 거리를 정신없이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저녁 밥상을 받은 대가로 칭찬의 언어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칭찬의 대향연. 이 시간을 통해 다음 글을 쓸 체력과 정신력을 비축한다. 칭찬 사냥을 위한 장전 완료.
이래나 저래 나 제일 중요한 건 ‘셀프 칭찬’이다. 내가 나를 다독여주지 않는데 세상 어느 누가 나를 사랑스러운 마음과 눈으로 봐줄 수가 있냐는 말이다. 가끔 양쪽에 하나씩 누워 자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 잡고 눕는 대신 앉아서 척추를 늘리는 마음으로 상체를 곧추세운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를 비쥐엠마냥 세상을 꽉 채우는 어둠 속에 들어앉은 느낌이다. 양손을 머리 위로 쭉 늘리며 기지개를 펴고 오른쪽과 왼쪽을 바라보며 머리를 움직여 작고 여린 목 근육을 풀어준다. 양손이 서로의 손가락과 손바닥을 꾹꾹 눌러주고, 깍지 낀 손으로 손바닥을 열어젖히며 손안에 담겨 있는 불안과 걱정을 ‘툭’하며 떨어지는 밤알처럼 떨쳐버린다. 양손으로 반대편 어깨와 팔을 쓰다듬고 안아주며 조용히 읊조린다. "오늘 하루도 참 잘 살아나왔네. 많이 피곤했겠다. 고생 많았어. 내일은 오늘만큼 재미있거나 오늘보다 수월할 거야. 참 잘했어. 잘 자.”
내 마음에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칭찬 스티커를 붙여줬다. 하루 온종일이고 지고 생활한 긴장을 내려놓고, 물에 젖은 솜처럼 발목을 잡고 안 놔주는 근심 걱정도 잠깐 벗어던지고 고요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라고 토닥여주는 칭찬 순간이다. 이럴 때 비지엠은 정경화가 연주하는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Chaconne from Partita No 2 in d minor, BWV1004)여야만 한다. 특히나 마음에 풍랑이 깃들 때, 방향 없이 마음이 드나들 때, 작은 기척에도 마음이 안절 부절 못할 때 나를 향한 칭찬이 더없이 필요할 때, 바흐의 샤콘느는 사색의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위에 소개한 곡 영상을 보다 보면 감동이 배가 된다. 정경화의 바흐 샤콘느를 연주한 장소인 명동성당이 주는 느낌이 웅장함과 음향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두 다리는 굳건하게 땅을 디디고 두 팔은 자유자재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얼굴 표정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뛰어넘는 무수한 감정을 모두 끌어안는 정경화의 연주 장면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음악을 들으며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을 켜켜이 쌓아보며 돌아본다.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음에 스스로 칭찬한다.
며칠 전 자러 들어가는 딸아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잘 자 뽀뽀와 인사를 나눴다.
“엄마, 오늘도 즐겁고 행복하게 잘 지냈어. 칭찬해줄 거지?”
“응, 당연하지.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 진짜 어려워. 넌 그 어려운 걸 이렇게 잘 하니까 칭찬받아야지. 기특해. 어려운 것도 잘 해내고.”
“엄마, 또 칭찬 나무 스티커 다 붙이면 선물로 레고 사죠.”
“아... 그래... 한번 우리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잘 자 쪽.”
이제 칭찬에 필요한 건 ‘애정’이 아니라 ‘돈’이 아닌가 싶다. 칭찬받기도 힘들고 하기도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나 자신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는 칭찬에 인색하진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