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15
2018년 9월 25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성향이 맞지 않아 애를 먹고, 잘 지내던 형제자매들과 이런저런 말로 상처를 주고받아 서먹해질 때도 있고, 가벼운 친구부터 오래된 친구까지 이해에 이르지 못하고 오해가 쌓여 등을 돌릴 때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과 정도 있지만 미움과 증오도 같이 있기에 마음이 고달파지거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일들이 왕왕 있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이를 확인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일 것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내 사람’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위해 딱 한가지 방법을 주로 쓴다. 다소 유치할 수 있고 어이없는 방법일 수도 있으나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르니 이것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봐주면 좋겠다.
머릿속으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을 상상한다. (난 양평 문호리에서 바라보는 북한강을 좋아하므로 문호리 강변에서 해가 지고 붉게 물든 북한강을 바라보겠다.) 현재 삐걱거리는 관계로 인해 힘들거나, 가슴 답답한 말만 늘어놔 피곤케 만드는 사람도 그곳에 같이 있다고 상상하자. (현재 문제가 있는 관계가 없기에 지금 옆에 누워서 티브이를 시청하는 짝꿍을 북한강변으로 데려가도록 하겠다.) 그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나 없이도 지금처럼 잘 지내라고, 많이 보고 싶을 거라고, 같이 했던 시간들 잊지 못할 거라고,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하늘 저 멀리로 날아간다고 상상하자. (이 대목에서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 쉽게 말해 그 사람이 죽었다.) 상상이 여기까지 왔을 때 갑자기 고구마를 먹은 것도 아닌데 목구멍이 터질 듯 뭔가 올라오거나, 심장 한구석이 저릿저릿하거나, 눈에 물인지 뭔지 차고 올라와 금세 비 내리듯 후드득 떨어질 것 같다면 상상 속 그 사람은 바로 당신이(내가) 애정 하는 사람이다.
아직도 이 날은 기억이 난다. 아이가 두 살이 되던 해 봄이었다. 묵은 겨울을 밀어내고 꼬까옷으로 단장한 듯 포근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양평으로 주말 나들이를 가고 있었다. 성수대교 북단에서 남단을 향하며 남편은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나는 보조석 뒷자리에 앉아 옆에 앉은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맑은 봄기운을 담은 햇살이 부서지며 남편의 뒤통수와 목과 오른쪽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죽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토록 어여쁜 날 속으로 엉엉 울었다. 이 사람은 내가 애정 하는 사람이다.
이토록 애정 하는 남자가 주말에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라고 쓰고 여행을 ‘허락했다’라고 말한다.) 애 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을 내 모습이 안쓰러워 그는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 노동은 할 수 있다며 등 떠밀어 보냈다. 그는 작은 가방 하나를 챙겨 금요일 밤에 떠났다. 아이들은 선장(바로 나)의 전술전략을 잘 이해하고 지시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토요일은 한글학교를 시작으로 보타닉 가든, 클라키 역 쇼핑센터까지 이곳저곳 쏘다니고 베이스캠프로 복귀했다. 저녁밥 한 그릇 알차게 지어먹고 아이들은 초저녁에 쓰러져 잠들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세상도 잠들었다. 두 식구 저녁을 담았던 그릇 몇 개를 달그락거리며 씻어서 엎어 놓았다. 작은 아이가 줄줄 빨고 노는 장난감 몇 개 뜨거운 물에 소독했다. 걸레를 물에 적셔 집안 구석구석 굴러다니는 먼지를 훔쳤다. 거실에 굴러다니는 장난감 몇 개를 제자리에 갖다 놓으며 부산했던 오후 시간을 덩달아 정리했다. 아이들이 잠드니 시간도 더디 흘렀다. 잘 시간이 쉬 오지 않아 생각나는 몇 가지 동작으로 요가를 하며 숨을 고르고 생각을 내려놓고 몸을 어루만져 주었다. 따뜻한 물로 하루를 씻어 내고 아이들 사이에 몸을 뉘었다. 피곤한 탓에 서둘러 잠들 법도 한데 머리가 더 맑아졌다. 하릴없이 예전에 써둔 글을 뒤적였다. 작년 봄에 짝꿍이 출장을 떠난 날 써둔 글이 있었다. 아이들이 몸부림치며 홑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가르릉 가르릉 큰아이 코 고는 소리, 화장실 샤워 호수에서 느닷없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소리, 아파트 단지를 걸어가며 전화통화를 하는 누군가의 말소리, 희미하게나마 서늘하게 불어오는 밤바람 소리를 벗 삼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짝꿍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살을 맞대고 사는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와 나는 ‘결혼식’이라는 제도적 관문을 통과하고 ‘혼인관계’라는 법적인 절차도 밟았다. 그 남자를 공적인 공간에서 남편, 신랑, 아이의 아빠라 소개하고, 어떤 이들은 부군이라는 표현을 써준다. 그 말들이 아직 낯간지럽다. 남자친구였을 때에는 적당히 원하는 만큼의 무게를 지닌 존재였는데 요즘 그를 지칭하는 단어는 무겁다. 그 남자와의 일상이 그렇게 어른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기성품을 찍어내듯 제도화된 느낌이 이유 없이 싫다. 혼인신고를 하러 간 날이 떠오른다. 결혼’식’을 하고 세 달 정도 시간이 흐른 뒤 휴가를 내고 굳이 함께 가서 남편과 아내 영역에 이름을 쓰고 사인을 했다. 출생신고만큼 숭고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손끝과 마음 언저리에 느껴지는 감동은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이직할 때 나를 증명하는 몇 가지의 서류를 떼었다. 딱딱한 종이 위에 그 남자의 이름과 나의 이름이 나란히 쓰여있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받아보고 그와 나의 관계에 놓인 무게가 사뭇 남달라졌음을 헤아렸다. 그 남자와 나는 21세기에 태어난 한 생명과 묶여 하나의 운명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 남자가 자신을 어떻게 비유할 수 있냐고 물었다. 무색, 무취라고 답했다. 그 남자는 그 말에 당황했다. 나는 그 남자를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희미하게 느껴지는 존재라 여겼고, 그 남자도 그 말을 공기 중에 두둥실 떠다니는 먼지처럼 느꼈고, 그 남자는 당황한 표정을 얼굴 한구석에 숨겼다.
살을 맞대고 산다는 말이 몸과 마음을 늘 살갑게 포개고 산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속살이 스쳐도 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속살을 버젓이 드러내고 다녀도 마음의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함께 살기 시작하고 한동안 몸과 몸을 포개어 소파 위에서 뒹굴 거릴 때였다. 침대는 대지처럼 넓었고 집은 우주 같았다. 숨을 구석이 필요 없었고, 숨을 생각은 존재치 않았다. 서로의 속살을 파고들어 아이를 만들고 아이를 세상에 내놓고 둘이 셋이 될 무렵부터 사랑은 책임으로 애정은 사치가 되어갔다. 나와 그 남자는 소소한 일상으로 뜨개질을 하여 무릎 담요를 만들던 사이였는데 아이와의 일상에서 각자 색깔은 옅어지고 빛바랜 사진이 되어갔다. 이게 부모의 일상인가 푸념하는 사이에 남자와 여자라는 살아 숨 쉬는 색깔도 오래되고 낡은 색으로 탈색되어 갔다. 우리 사이에 놓여있었던,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었던 징검다리가 흔들리기도 했고, 거친 일상의 물살에 흘러가버리기도 했다. 아이와 가족, 사회생활과 책임 사이에서 나와 그 남자가 누리고 싶었던, 놓치기 싫었던 고유한 영역은 욕심이 되어갔다. ‘나는 누구야’, ‘여긴 어디야’, ‘꼭 해야 하나’,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라는 푸념 섞인 서글픔은 강물 위를 두둥실 떠다녔다. 나와 그 남자 사이의 강은 일상의 침식작용으로 깊어지고 넓어졌다. 몇 초 숨 참고 달린 백 미터 달리기와 같았던 우리 사이는 호흡 조절에 신경 써야 하는 오래달리기가 되었다. 숨을 곳이 필요해지고, 때론 도망가고 싶어 했다. 도망을 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정처 없이 남들이 걷는 길을 걷기도 했다.
그 남자와 짧지 않은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 남자가 오른 공항버스가 내 자동차를 뒤따르다 지나쳐 갔다. 그가 갔다. 그가 우리 곁에 없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고, 나와 그 남자의 아이는 나의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의 곁에 아무것도,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순간 우리가 타고 있는 자동차가 배처럼 느껴졌다. 나와 아이는 한 쪽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무게 중심이 왼쪽으로 옮겨지면서 출렁거리는 물결에 균형을 잃어버리고 기우뚱했다.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의 한숨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렸다. 그 남자가 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 남자를 닮은 아이가 좋아하는 연을 날리며 하늘을 바라보는데 그 남자가 타고 가는 비행기가 날아갔다. 품에 안긴 아이가 연신 뽀뽀를 해댈 때 거칠었던 그 남자의 턱이 떠올랐다. 잠든 아이를 들쳐 업고 고요한 집에 들어섰을 때 공허함이 벽처럼 느껴졌다. 잠든 아이에게 내 이불을 내어 주고, 그 남자가 덮고 자던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잠에 들었다. 그 남자의 냄새가 났다.
무색무취의 그 남자는 어쩌면 나의 모든 공기였다는 생각에 멈춰 섰다. 꽃 덤불 근처에 세상 꽃향기를 모두 품은 공기가 있고, 한여름 강렬한 햇볕 아래에 여름을 품은 공기가 있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두둥실 몸을 실은 겨울 공기가 있듯 그 남자는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닌 그가 만든 세상에 마지막 퍼즐 같은 모습을 한 공기였다. 그 남자 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서로 머리를 쓰다듬는 밤을 기다린다. 이 남자가 보고 싶다.
하루 지난 일요일 역시 짝꿍의 부재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후 무렵 큰아이에게 아빠가 도착하는 곳에 가서 서프라이즈를 하자고 했다. 서프라이즈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는 단숨에 좋다고 날뛰며 꽃을 사러 가자고 한다. 그리하여 나는 꽃을 든 5세 여자와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는 8개월 남자와 함께 짝꿍의 바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기뻐했고, 짝꿍은 놀랐고, 나는 안도했다. 그가 잘 놀고 탈 없이 돌아와서.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내가 없었고 그가 없었던 2박 3일의 에피소드를 나눴다. 그리고 여느 일요일과 다름없이 맹물만큼 일상적인 말투로 ‘잘 자’라고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꿈나라로 향했다.
하루 지난 일요일 역시 짝꿍의 부재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후 무렵 큰아이에게 아빠가 도착하는 곳에 가서 서프라이즈를 하자고 했다. 서프라이즈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는 단숨에 좋다고 날뛰며 꽃을 사러 가자고 한다. 그리하여 나는 꽃을 든 5세 여자와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는 8개월 남자와 함께 짝꿍의 바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기뻐했고, 짝꿍은 놀랐고, 나는 안도했다. 그가 잘 놀고 탈 없이 돌아와서.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내가 없었고 그가 없었던 2박 3일의 에피소드를 나눴다. 그리고 여느 일요일과 다름없이 맹물만큼 일상적인 말투로 ‘잘 자’라고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꿈나라로 향했다.
한국에는 가을이 성큼 찾아와 하늘은 높고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서늘하다고 한다. 가을이 온다 싶으면 어김없이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4번이 듣고 싶다. 양평 가는 국도에서 바라본 북한강도 여름과 가을은 물색이 달랐다. 1년 내내 다닌 양평 수능리 주말농장 뒷산도 여름과 가을에 입는 옷이 달랐다. 입맛도 여름과 가을은 사뭇 달랐다. 추석이다. 한국에 있는 피붙이들이 조금 더 그리웠고, 그리운 마음에 배추전을 부쳐먹었다.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배추전을 죽죽 찢어 아이에게 건네며 애정 하는 모든 이들이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랐다. 다들 애정은 나누고 사시길. 선착장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며 아바의 댄싱퀸을 부르며 춤을 추고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