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이끄는 삶, 차이코프스키10월 가을의 노래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16

by 아멜리 Amelie
Tchaikovsky The Seasons 'October' (차이코프스키 사계 '10월') - Seong-Jin Cho (조성진)


2018년 10월 2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주말에 대청소를 했다. 남편이 아이 장난감함을 정리하는 동안 책장 앞에 쭈그려 앉아 이리저리 책 위치를 바꿨다. 작은 아이에게 읽어주려고 챙겨둔 동화책 몇 권을 꺼내어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일렬로 줄을 세웠다. 잠깐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니 큰 아이에게 이 책들을 읽어줬던 몇 해 전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고 여린 생명이 군살 하나 없는 발바닥으로 뛰어다니고, 투명한 입술로 이야기를 쏟아내고, 손끝에 힘을 주고 연필로 해를 그려내고 있는 게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지난달에 꽉 찬 다섯 살이 된 큰 아이는 같이 있으면 참 재밌다. 내 속살을 찢고 태어나 젖을 물려 키웠으니 세상 누구보다 어여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심심한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유쾌한 아이다. 주말에 제 방을 청소하고 누구보다 좋아한 녀석은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방으로 달려갔다.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펼쳐 놓고 뭔가를 쓰고 그리기에 열심이다. 방구석에 놓인 장난감 통에 온몸을 다 집어넣을 듯이 들여다보며 블록을 찾아서는 위로 쌓아 올리느라 열심이다. 완성한 블록과 그림을 가지고 나와서는 조근조근 말하며 이야기를 만드느라 열심이다. 하루 종일 이 녀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티비보다 더 재미있다. 매 순간 열심이 아닐 때가 없어서다.


IMG_0624.jpg?type=w1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기구 '철봉'. 가끔 집에 있다가 철봉이 하고싶어서 나가기도 하고, 집으로 들어올 때 일부러 철봉을 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시간을 의미 없이 헛되이 쓰고 있었던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싱가포르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건 아이 유치원을 찾는 일이었다. 이곳 교육 시스템에서 정규 유치 과정은 하루 수업 시간이 단 3시간이다. 여기에는 조회 시간, 간식 시간, 말과 글을 배우는 시간 등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종일반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지만, 그 역시 정규 교육 과정은 단 3시간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유치원 재량에 따라 추가 수업을 하거나,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놀게 둔다. 유치원에 따라 교육비는 천차만별이지만 종일반으로 운영되는 기관은 대체로 비용이 높은 편이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둘째 아이를 돌보며 큰 아이를 봐야 하기에 괜찮은 유치원을 알아볼 겨를도 없이 들어갈 수 있다고 연락 온 곳에 바로 입소를 시켰다. 하루 세 시간 생활하면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이 정도를 해내는 것도 아이에게는 큰 숙제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첫 번째 학기를 다니고 아이는 유치원에 조금 적응했다. 두 번째 학기를 마치고 아이는 유치원을 좋아했다. 세 번째 학기가 되니 슬슬 욕심이 생겼다. 하루 세 시간 다니고 집에 와서 하루 온종일 노는 아이를 보니 뭘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유치원을 다녀와 곧바로 학원을 가는 아이 친구를 보면서 학원을 보내지 않는 내가 이상한 엄마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큰 이유였다.) 이곳저곳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알아보다 보니 좋은 학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좋은 학원은 죄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에 애들 교육비를 벌써부터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을 접기도 했다.


아이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주면 좋을까 생각하며 나의 시간을 채웠다. 아이의 시간을 뭘로 채워주면 좋을까 생각하며 온종일 인터넷으로 찾아보느라 시간을 보냈다. 동네 친구가 다닌다는 학원에 대해 알아보며 마음속으로 아이의 스케줄을 그려가며 시간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파에 앉아 둘째 아이 젖을 먹이며 큰 아이를 바라보는데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제시간을 제 나름의 속도와 방향과 방법으로 채우고, 보내고, 쌓아가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배운 단어를 작은 입술로 읊조리며 머리와 마음에 담고, 그날 하루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친구들과 손잡고 불렀던 노래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며 즐기고 있었다. 아이는 노는 듯 하루 동안 배운 말과 문자와 이야기를 복기했고, 아이는 쓸데없이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몸으로 익히기 위해 또 하고 또 했고, 그 사이사이에 샘솟는 영감을 밑천 삼아 세상에 없는 밑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춤을 추며 느끼고 즐기고 감동했다. 시간을 의미 없이 헛되이 쓰고 있었던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그때부터 아이를 어디 보내야 하는지 궁리하는 일에서 해방되었다. 대신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던져주기로 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아이가 심심하다며 칭얼거릴까 봐 내가 먼저 책을 읽자고 하거나, 내가 먼저 뭔가 만들자고 하거나, 내가 먼저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곤 했는데 그때부터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대신 유치원을 다녀와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간식으로 내놓은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만들며 먹던 아이가 생각해낸 놀이에 ‘잠깐만’ 또는 ‘나중에’가 아닌 ‘응’하고 대답하며 같이 놀았다. 첫 번째 놀이를 하다 보면 곧이어 두 번째 놀이로 연결되고 세 번째, 네 번째 놀이로 아주 자연스럽게 갈 수 있다는 걸 같이 놀면서 배웠다. 놀이의 흐름을 깨는 건 단순했다. 놀이에 몰입하지 못하는 어른이들의 자세 또는 놀이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어른이들의 마음이었다. 판소리에서 추임새가 중요하듯 놀이 중 나의 적극적인 태도는 놀이에 큰 몫을 차지했다. 손으로 종이를 접는 놀이에서 가위를 이용해 종이를 자르는 놀이로 조금만 변주를 해주면 아이는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지난주 내내 색종이를 접어서 각종 동물을 만들다가 색종이를 잘라 거미줄을 만들었더니 아이는 내가 뭔가 창조라도 한 듯 존경하듯 바라봤다. 붓으로 색칠을 하던 아이가 물감을 짜서 그림을 그리기에 종이를 반 접어 한 쪽에 물감을 짜서 그림을 그리고 그 위를 한 쪽 종이로 덮어 옮기는 데칼코마니를 보여주자 아이는 피카소를 보듯 나를 바라봤다. 이렇게 놀다 보니 ‘오늘은 또 뭘 하며 놀아줘야 하나’하는 생각보다는 ‘오늘은 아이가 뭘 하며 놀까’라는 생각에 머물게 되고 그날의 놀이가 궁금해졌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 작가가 외국 사람이면 영어로 된 똑같은 동화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영어로 읽어주기도 하고, 아이와 아바(ABBA)의 댄싱퀸을 들으며 좋아하면 맘마미아 뮤지컬을 유튜브에서 찾아 보여주기도 하고, 나가 놀고 싶은데 작은 아이가 잠들어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거실에서 스쿼트와 팔굽혀펴기, 앞구르기와 다리 찢기를 하며 우리끼리 체육시간을 만들었다.


IMG_0708.jpg?type=w1 길에 핀 꽃을 사진으로 담아와 꼭 같이 그려본다. 아이는 가끔 그림 속 꽅을 잘라서 아빠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언제나 나는 시간에 쫓겨 사는 사람이 아니라 앞장서 시간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고 싶었다. 아이도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제 힘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으로 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자기 전 다음날 일정을 조근조근 알려준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는 시간부터, 유치원을 다녀와 또다시 손을 씻고 노는 시간과 아빠를 기다리고 저녁을 먹는 시간까지 모두 알려준다. 그 사이사이 제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시간들을 강조해서 알려주면 아이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물속에서 황금보화가 가득한 보물상자를 찾아온 사람처럼 좋아한다. 잠들기 전부터 내일은 뭐하고 놀까 상상하며 기대감 속에 잠이 드는 것 같다. 이렇게 기대하며 잠들면 즐겁기 그지없는 꿈을 꿀 것 같아 부러워지기도 한다.


주저리주저리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한국에 가을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서이다. 아침저녁으로 손가락 끝이 시원해질 만큼 선선한 바람이 불 테고, 엄마들은 여름 옷을 죄다 빨아 볕에 널어 말려서는 옷장 깊숙이 넣어두고 도톰한 가을 옷을 꺼낼 테지. 여름 입맛과 차원이 다른 가을 입맛은 뜨뜻하거나 구수한 먹거리를 찾아다니겠지. 손으로 창을 만들어 눈가 살짝 그늘을 만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또 얼마나 높고 맑을까. ‘아, 가을이네’ 하는 감탄사에 낙엽이 또르르 땅에 떨어져 구르기만 해도 옷깃을 여며야 할 것 같은 고독과 외로움이 속살을 찌르겠지. 이 모든 게 한국의 가을인데 연신 덥기만 한 이곳에서 여전히 볕이 아까워 하루에 두세 번 빨래를 널고 있으니 시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서 흐르는 지도 모르겠고 내가 늙어가고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어코 가을이 왔다고 한다. 가을이면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를 꼭 들어야지. 땅위에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물어보고, 힘겨운 일상 잘 살아나가고 있는 지도 헤아려보고, 온 마음 그대로 받아 주지 않아 섭섭하거나 마음을 주지 못해 미안한 사람은 없는지 둘러도 봐야지. 지나간 여름의 끈적끈적한 흔적은 깔끔하게 잊어주고 다가오는 차갑디 차가운 겨울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지. 그리하여 가을의 시간은 가을만의 몫으로 채워줘야지. 가을이니까. 가을에 걸맞은 외투를 입고 맞이해줘야지. (라고 쓰고 얼음 동동 띄운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더위를 식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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