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며 산다는 것, 모차르트 '터키행진곡'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28

by 아멜리 Amelie
Yuja Wang - Mozart - Turkish March


2019년 1월 15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벌써 스물여덟 번째 글을 쓴다. 하나 쓰고 두 번째 글 쓸 때, 다섯 번째 글 나가고 열 번째 글 발행할 때 내가 이렇게 글을 끊임없이 쓸 수 있는 자체가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참 할말이 많기도 하구나’ 싶었다. 글을 발행하고 나서 보고 싶은 사람들, 내가 사는 이야기 들려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 링크를 공유한다. 가끔 사람들이 물어본다. 언제부터 클래식을 좋아했냐고, 클래식을 좋아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이 질문을 받을 때면 혼자 몰래 그냥 좋아하고 있었다고 웃으며 말한다.


대답하고 돌아설 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클래식이 가진 고상함과 우아함이 내 얼굴 표정과 몸짓과 말과 행동에 없었구나.’


또 다른 생각에는 약간의 걱정도 일부 섞여 있다.


‘내가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나를 꽉 막히고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주변 시선이 살짝 부담스러워질 때 그 생각을 얼버무리기 좋은 또 다른 생각이 있다.


'때론 한 사람을 잘 알고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그를 잘 모를 때가 있지. 암.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남이 나를 어떻게 알겠어.' (이런 생각은 사람 속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새롭고 신기한 것을 나서서 배우는 걸 참 좋아한다. 잘 못하고 잘 안되는 걸 끙끙거리며 하다가 갑자기 잘하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순간을 좋아했다는 게 더 맞다. 그래서 잘 못하지만 꾸역꾸역 하려 애쓰고, 조금 참아 보기도 하고, 쉬었다가 다시 해보기도 한다. 그러다 정말로 안 될 것 같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해결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그만두면 된다


그냥 미련 없이 다른 걸 찾아 떠나면 된다. 사랑도 일도 돈도 취미도 재미없고 싫증 나면 그냥 그만두면 된다. 그래서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이걸 배우다 그만두고 저걸 배우다 그만두면서도 ‘난 하나를 끝까지 진득하게 못해’와 같은 죄책감이 애초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살 것도 아니라면, 그걸로 국가대표 선수로 나갈 게 아니라면 그냥 즐기면 그만이다. 그래서 새로운 배움에 흔쾌히 도전하고 그만 두기에 주저함이 없다. 한마디로 소 쿨!


취미는 누구나 이렇게 그만둘 수 있다. ‘사랑’과 ‘돈’과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역시도 그만둘 수 있다. 아니, 그만둬도 된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버는 돈에 애들 우윳값, 기저귀 값이 달려 있다면,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면 당연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건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고, 하고 싶어서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연애 관계가 아닌 혼인 관계라 할지라도 ‘필요’하다면 그만두는 용기와 결단은 필요하다. 왜냐고? 내가 유지해낼 마음과 체력이 안 든다면 끝이 어딘지도 모를 그 여정을 진심으로, 행복하게, 온 마음을 다해 살아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클래식은 고루할까. 클래식 이야기도 해봐야겠다. 나는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클래식에 온몸과 마음을 모두 빼앗긴 애청자도 아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의 하나가 클래식일 뿐이다. 나와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지식이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혹은 내 지식이 더 미천할 수도 있다. 당연하다.) 내가 보고 만나고 듣는 클래식은 무궁무진하다.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베토벤과 오늘 내가 알게 된 베토벤은 다른 사람이다! 내가 이제껏 축적해온 경험과 생각이 다른 베토벤을 만들기도 하고, 애당초 몰랐던 영역을 알게 되기도 한다.


요즘 역사서에 꽂혀서 역사가들의 길고 어려운 이름 읽는 재미에 빠져있는데 역사서도 클래식과 같았다. 역사 또한 무궁무진하다. 이 드넓은 지구에서 ‘한반도’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태곳적 역사부터 끄집어 낸다면 그 양만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전 지구를 아우르는 세계의 역사를 상상해보거나, 더 나아가 인간의 출발점부터 시작하는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본다고 생각해보자.(더듬어내지도 못할 분량일 듯하다.) 미래를 저술한 책은 가끔 ‘뻥’으로 보이지만 과거를 담고 해석한 책은 ‘뻥’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내 생각과 비슷한 지, 근거가 옳은지 요리조리 뜯어보게 된다. 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클래식은 역사보다 조금 더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샛별처럼 등장한 신예 연주가들을 만나는 감동, 알고 있는 곡이지만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감동의 범위와 파동이 달라진다. (이렇게 말한다고 미묘한 바이올린 선율까지 죄다 캐치하면서 음악을 감상하는 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냥 막 듣는데 희한하게 감동적인 때가 있다.) 마치 마요네즈 듬뿍 뿌린 샐러드만 맛보다가 유자청을 곁들여 상큼 달콤한 샐러드를 맛보거나, 나물 무칠 때나 뿌려 먹는다고 생각한 참깨로 드레싱을 해 먹었을 때의 고소함! 이런 감동은 혀와 함께 뇌도 자극한다. 작곡가와 작품에 대해 이론적으로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연주가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능력도 없지만 자꾸 듣다 보니 들어본 음악도 많아지고, 수시로 만나다 보니 정이 든 음악도 많아져 듣고 싶고, 알고 싶어지는 음악이 더 많아지게 된 건 아닐까. 이렇게 시나브로 클래식과 친해져 능력에도 맞지 않는 글까지 쓰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피아니스트도 같은 맥락에서 멋지다. 과거에 머무르는 클래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같이 살아 숨 쉬는 클래식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 1987년에 태어난 중국인 피아니스트다. 그녀의 화려하고 다소 선정적인 의상이 먼저 눈에 띈다. 의상만큼이나 강렬하고 섬세하게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녀의 연주 영상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지게 된다.


KakaoTalk_20190115_170747172.jpg?type=w1 큰 아이는 요즘 수영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앓던 피부병이 다 낫고 나니 수영 수업에 다시 나가도 되냐고 물어본다. 아팠던 건 기억에도 없나 보다.


다시 배움의 이야기로 가본다. 한국에 있었으면 각종 마케팅용 달력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2019년’에 더 자주 노출되어 내 나이를 되짚어보고 행동할 시간도 많았을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 마케팅용 달력을 받은 게 없어서 ‘2019년’이라는 시간에 노출될 기회가 적고, 나이를 굳이 헤아려보는 행위를 덜 하게 된다. 내일이 둘째 아이 첫 번째 생일이지만 내 나이가 한 살 늘었다고 보기 보다 아이가 한 살 먹었다고 생각하기에 또다시 나이에 무뎌진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마흔을 향해간다고 조급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느긋해졌다.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자체를 알고 있기에 자만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 천천히, 조금 깊게, 조금 넓게 세상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은은한 허브향을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부지런히 배우고 느끼고 애쓰고 또 포기도 하고 깨닫기도 해야 한다.


오늘은 누구의 마음을 들어보고, 어떤 생각을 정리해보고, 뭘 써볼까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새 삶을 얻어 살아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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