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29
2019년 1월 23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아가에게
아침이면 세수하러 옹달샘에 갔다 물만 먹고 돌아오는 산토끼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찾으며 꿈에서 깨어나는 너를 만난다. 이른 아침 너를 만나는 순간이야말로 새 날, 새 시간을 아로새긴 청량한 찰나이다.
‘안녕’
깜깜한 뱃속에 품었던 공기를 수제비처럼 빚어 입 밖으로 내뱉으며 너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 인사조차 어찌 그리 즐거운지 너는 배시시 웃고, 내가 뱉은 ‘안녕’은 비눗방울이 되어 ‘붕’하고 떠올라 뭉게구름을 향해 날아간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어제보다 단단해진 너의 허벅지를 어루만져 주고, 어제보다 또렷해진 너의 눈을 바라본다. 너도 나를 바라보며 소리 없는 함박웃음으로 나의 인사에 답한다. 아침마다 너를 만난 지 365일이 지났는데 너만 보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너에게 과거는 새로움 그 자체였다. 물로 가득 찬 자궁에서 유영하며 느꼈던 갖가지 진동들은 모두 어떤 색깔이었을까. 사람들이 온몸으로 내뱉는 소리는 핏빛을 닮아 붉었을까, 덜컹이는 지하철에서 느낀 묵직한 진동은 쇳덩이 무게만큼 묵직한 먹빛이었을까. 여름의 양평에서 만났던 풀벌레며 강바람이며 눈물 나게 아름답던 석양은 물빛이었을까 풀빛이었을까. 나와 너의 아빠와 너의 누나가 건네던 말들과 노래들과 웃음은 햇빛 아래 반짝이는 구슬처럼 투명한 빛을 품고 있었을까.
네가 지구에 등장한 후 지낸 과거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움 그 자체였다. 네가 이름과 성별과 국적을 얻은 후, 우리는 작정한 대로 그곳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네 똥 기저귀를 갈 거나 네가 젖 먹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사무치게 외로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땐 너에게 들려주는 자장가를 방패 삼아 구슬픈 노랫말로 눈물이 쏙 빠지는 노래들을 정처 없이 불러댔다. 너는 이내 잠들었고, 나는 곧 눈물을 쏟아냈다. 너를 안고 다닌 길들은 내가 너를 안은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어루만져 준 길들이었고, 우리는 부둥켜안고 세상을 누비는 연인 같은 존재였다.
고백컨대 너는 나의 속편이기에 태어난 후 보여준 모든 것이 100% 신선하진 않았다. 흥행에 성공한 전편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감동은 예상했고, 감동받을 포인트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감동의 진폭 또한 알아챘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편에서 느끼지 못한 감동도 있었고, 전편에 없던 반전도 있었고, 전편과 전혀 딴판인 전개도 있었다. 전편은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같은 대서사시였고, ‘임신-출산-육아’의 비밀을 캐러 나서는 모험기이기도 했고, 해가 나면 논이며 밭에 나가 물을 대고, 피를 뽑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채우는 농부의 일상이기도 했다. 반면에 너를 낳아 키우면서 마음 한편이 이상해지는 애잔함은 자주 찾아오지 않았고, 너무 행복해 두렵다고 눈물짓는 감동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으며, 너무 애쓰며 살다 티끌 같은 감정 하나에 온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허망함도 별로 없었다.
속편인 네가 주는 감동을 차근차근 찾아보니 전편보다 훨씬 큰 것이 하나 있었다.
“온전함”
밑도 끝도 없이 누군가를 좋아할 때, 정말 말 그대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그 마음, 온전하게 한 사람만을 느낀 건 네가 처음이었다. 전편에서 이미 겪은 다양한 시도와 실패, 노력과 성공 덕분에 얻은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마음이었다. 그저 너를 바라만 보아도, 너를 품에 안기만 해도 입가에 묻어나는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너는 나의 햇살이고 바람이고 나무이고 꽃이다. 그저 곁에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하는 존재 그 자체였다. 속편이 주는 즐거움이 어느 정도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3편이 기대될 정도에요.’ 기대가 된다는 거지 결심을 했다는 것은 아니니 네가 너무 놀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너의 누나와 너를 얻어 뱃속에서 키워 세상에 내보내고 또다시 젖을 먹여 키우며 꼭 한 가지만 다짐한다. 좋은 사람이 되겠노라. 드넓은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동물에게, 바람과 꽃에게 좋은 사람으로 다가가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애쓴다. 그리하여 언젠가 너희가 오롯이 너희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에 나아가 수많은 사람과 자연과 세계를 마주할 때, 너희도 좋은 기운을 에너지로 좋은 인연을 만나 씨실과 날실로 찬란하고 선명하고 화려하게 얽히고설켜 기가 막히게 멋진 삶을 살아나가기를 기도한다.
아가,
너를 안고 걸었던 길들, 너를 안고 만난 사람들, 너를 안고 꾸던 꿈들 모두 기억한다.
너의 냄새, 너의 살결, 너의 웃음 모두 마음에 담아두었다.
앞으로 네 두 발을 딛고 뒤뚱거리며 걸어나갈 그 길을 기대한다.
앞으로 네 입을 통해 쏟아져 노래가 될 말들과 이야기를 기다린다.
너의 첫 번째 생일을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한다.
사랑한다.
2019년 1월 16일
엄마가
2018년 1월 16일, 둘째 아이를 낳기 전 써 내려간 일기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그날 밤 우주를 뒤흔든 진통은 잊은 지 오래이고, 남산 만했던 배도 코끼리 다리처럼 부은 발목도 앨범에 꽂힌 사진처럼 과거 어느 날로 돌아갔다. 이제 나도 나의 엄마처럼 늙어가는 엄마가 될 일만 남았다.
김광민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를 들으며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플 진통이 시작되었다. 멀리 있는 엄마를 한달음에 달려오게 했고 큰 코딱지에게 뱃속 동생을 낳아 올 터이니 할머니 옆에서 씩씩하게 기다려달라고 일러두었다. 둘째는 쏜살같이, 빛의 속도로 세상에 나온다던데 작은 코딱지는 날 닮아 굼뜨고 느린가 보다. 연신 배만 싸르르 아프고 세상에 나오겠다는 신호를 아직까지 보내고 있지 않다.(라고 쓰는데 엄청난 소용돌이가 뱃속에서 일어나며 아프다.)
신은 왜 인간에게 그것도 여자에게 40주 동안 아이를 뱃속에 품게 하고 몸 밖으로 나올 때 크나큰 고통을 느끼게 했을까. 이 험한 세상 애 낳을 때 힘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몸으로 배우게 하려고 그랬을까. 이렇게 온몸이 부서져라 아파가며 품에 얻은 자식 한없이 껴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살라는 가르침을 주시려 그랬을까.
옆에 앉아 있던 신랑이 묻는다. 진통은 어떤 식으로 아픈 거냐고. 뱃속에서 굵고 힘센 뱀 한 마리가 날쌘 동작으로 헤엄을 치고, 엉덩이뼈가 조각조각 분해되듯 으스러지고,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입을 앙 다물고 눈을 질끈 감고 또 감아도 헤어날 수 없는 악몽 같은 고통이라고 설명하려다 말았다.
우린 모두 한 여자의 자궁 속에서 그 여인의 온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세상에 등장할 준비를 했다. 한 여자의 생살을 찢는 고통을 지켜보며 세상에 등장했다. 세상을 만날 때 BGM은 제 스스로 목청껏 지른 울음소리였다. 그 여자는 우리 입에 젖을 물려 배를 채우게 했고, 되려 우리에게 고생 많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그 한 여자가 되려 한다. 뱃속에 품은 아이와 나는 가까이 있는 듯 멀리 있어 얼굴을 마주할 수도 없고 눈을 보고 웃을 수도 없다. 그저 뱃가죽 아래에서 노니는 아이의 손짓과 발짓에 살아있음을 느낄 뿐이다. 이어폰을 따라 흐르는 김광민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처럼 말이다. / 2018년 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