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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레 Jun 03. 2023

엄마의 하늘

백운호수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오늘도 나는 엄마와 함께 마을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은 항상 이곳 백운호수다. 청계산과 백운산 그리고 모락산에 빙 둘러 쌓여 있는 이 호수는 엄마와 나에게 한라산의 백록담 못지않은 절경을 선사한다. 햇빛이 물가에 반짝여 금방이라도 은빛연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날아오를 것 같다.

‘쿠르릉’ 드디어 소리가 들린다. '엔진 소리가 보잉 777 이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소리를 맛있게 음미한 엄마가 이야기를 하신다. 푸른 코가 보인다. 미끈한 하얀 배가 머리 위로 지나가자 엄마가 뿌듯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거봐 오늘도 내가 맞지’

고양이 같은 우리 엄마의 잘난 척 가득한 목소리가 귀에 닿는다.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김포 공항을 향해 착륙을 준비하는 비행기의 꼬리가 점점 시야에서 멀어진다. 이번에도 성공이다.

엄마는 비행기 박사다. 엄마의 발병과 언니의 항공사 입사는 같은 해에 일어났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언니의 입사 공부를 함께 하셨다. 비행기 길 아래 우리 집에서 엄마는 늘 엔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암세포와 싸우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셨다.

‘에어버스 비행기가 지나가네' '우리 00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 저 비행기인가?‘

통증을 잊기 위해서였을까? 엄마는 소리에 더욱 집중하셨고 청각은 날로 더 발달하는 것 같았다.


'하와이에 가보고 싶어' '꼭 데려갈게'

암세포가 이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숱이 참 많았던 엄마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새로 자라기를 반복한다. 암세포는 점점 엄마의 몸을 삼키기 시작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들이 자주 반복되었다. 호기심에 늘 반짝이던 엄마의 눈동자는 이제 흐린 가을 하늘 같다.

야자수 나무가 있는 제주도라도, 아니 경기도 인근에 살고 계신 이모네 집이라도 가고 싶다던 엄마는 결국 하와이의 하늘을 못 보시고 엔진 소리가 크게 들리는 화곡동 어느 병원 침상에서 생의 마지막 호흡을 하셨다. 엄마의 신비한 청력은 결국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

거실 창가에 앉아 하늘을 본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실 때 내 뱃속에 있던 아가는 하늘을 사랑하는 소년으로 성장했다.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함께 엔진 소리 배틀을 할 수 있을 만큼...... 엄마의 뒤를 이은 비행기 박사이다.  


경쟁자가 바뀌었을 뿐 이 놀이는 25년째 계속되고 있다. 오늘의 상대는 아들이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누가 맞는지 목소리 크기로 승패를 겨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휴대폰 앱으로 간단하게 경로와 비행기 종류 항공사 등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으니, 과학의 발전이 놀랍기도 하지만 엄마와의 추억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쓸쓸하다. 그 시절 오롯이 청각에 의지해 비행기를 맞추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귀에 엔진 소리를 가득 담아 본다. 마음이 귀보다 더 먹먹해진다.

나는 오늘도 엄마의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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