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 수학 잘해요?
10을 만들어 볼까?
만 4세 50개월 무렵 아이는 스스로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1에서 10까지 수를 알게 되었던 시기도 비슷하다고 기억된다. 아마도 그 무렵 이 놀이를 시작했던 것 같다.
놀이 방법은 이렇다. 둘이 수를 주고받으며 먼저 10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10 만들기>
나-과자 1
아가- 나는 2 그럼 다 해서 3 , 그리고 2
나- 그럼 5 , 그리고 2 더
아가- 그럼 7에 3 더하면~~~
나 -10! 게임 끝
큰 수가 익숙하지 않을 땐 한 번에 말할 수 있는 수를 3, 5 이하로 정해서 여러 번 주고받았다. 아이가 ‘10' 성공을 외칠 수 있게 엄마가 잘 조율하면 된다.
이 놀이가 익숙해진 후엔 10 짝 찾기 놀이를 했다. 이 놀이는 더 쉽다.
<10 짝 만들기>
나- 3
아가- 7 그러면 10 승리!
그다음 단계는 20 만들기, 30 만들기 점점 숫자는 커져서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 72개월 ) 무렵엔 100 만들기 놀이를 했다. 처음 규칙은 ‘10 만들기’와 유사하게 십 자릿수 ‘0‘ 꼭 거치기 , 익숙해진 후엔 십 자리 ’ 0‘ 꼭 넘기기.
<넘기기 예>
나- 19 그리고 3 더하기
아가- 22 그리고 5 더하기
나- 27 그리고 4 더하기
아가-31!
아가는 본인의 손가락 발가락을 총 동원해서 100 만들기 놀이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놀이가 능숙해진 후 우리는 0 만들기 놀이를 했다. 방법은 동일하다. 10에서 시작해 무한반복 0을 만들고 그 후 시작하는 수를 점점 높여 100에서 시작하는 0 만들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0 만들기>
나- 100 빼기 5
아가- 95 빼기 3
나- 92 빼기 2(는 쉽고) 3(은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가- 90
이 놀이들은 나와 아가뿐 아니라 모든 가족과 친척이 함께 해 주셨다. 7세 아가와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100 만들기 놀이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이는 종이와 연필 없이 손가락 발가락 머리를 사용해 10을 만들고 100을 만들고 0을 만들며 재미있게 숫자와 친해지는 유아기를 보냈다. 간식을 먹을 땐 간식 재료를 활용해서 산책을 할 땐 걸음 수나 계단으로, 아이와 보내는 모든 일상이 놀이를 할 수 있는 재료였다.
65개월의 기록
엄마 내가 9랑 9를 더하는 쉬운 방법을 알려줄까?
9에다 1을 주면 10이 되잖아 그럼 10!
거기에 남은 8을 더하면 18! 정말 쉽지?
이제 손가락으로 9를 다 세어보지 않아도 돼!'
68개월의 기록
계단 14개랑 14개 다하면 28!
10 하고 10을 더하면 20
4 하고 4를 더하면 8, 합치면 28이 되는 거지!
저 무렵 나는 정말 아이가 천재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입학 후 모으기와 가르기가 교과서에 나오는 걸 보고 아이가 스스로 터득한 이 방법이 떠올라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산은 시켜야지’라는 조언을 수백 번 수천 번 들었다. 고집불통 엄마는 귀를 닫았다. 스스로 방법을 찾고 재미있게 수와 친해지는 아이를 ‘수학=공부’의 공식에 갇히게 만들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중3) 수학을 사랑하는, 굉장히 잘하는 아이가 되었는가? 그건 아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수학은 안 할 수 없는 과목이라 하고 있고 잘해야 하니 노력해서 잘은 하고 있지만, 좋아하는 과목 순위에서 한 번도 5위 권에 진입한 적이 없는 그저 그런 과목이다. 수학 천재인 줄 알았던 엄마의 생각은 착각으로 판명이 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학에 질려 본 적이 없으니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부디 더 깊이 공부해야 하는 순간 ‘10 만들기’로 다져진 감각이 마술같이 살아나길 사심 사득한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그것이 수학이던 다른 무엇이던......
수학 어디까지 했어요?
문제집 뭐 풀어요?
오늘도 나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그냥 엄마랑 많이 놀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