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엄마의 기일
11월 11일 1시 라니
지나치게 이타적인 엄마는 마지막 숨조차 타인을 위해 쉬셨다. 점점 기억력이 감퇴할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한 엄마의 마지막 배려라고 난 믿는다. 게다 ‘빼빼로 데이’라는 기일 타이틀도 획득하시며 만나본 적 없는 외손주들의 충치 방지까지 완벽하게 수행하셨다. 외할머니의 기일에 차마 빼빼로를 사달라고 조를 수 없는 아이들을 마주하며 엄마의 배려심에 감탄을 한다. 역시 이타심의 절정 우리 마미 인정이다.
찬바람과 함께 장례식 소식이 부쩍 늘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장례식장에 찾아간다. 남겨진 가족들의 손을 꼭 잡고 슬퍼해도 된다고 잘 챙겨 먹고 잘 자야 한다고 꼭 안아준다. 그날 나의 어깨를 토닥여 줬던 그 온기를 나의 지인들에게 베풀고 온다.
그해 가을 주민센터에 엄마의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고 돌아왔다. 이 세상에서 엄마가 완전히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장례식 내내 철 없이 생글거리던 내 눈에 드디어 눈물이 고였다. 11월의 가을이 내 모든 걸 빼앗아 갔다. 뼛속까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엄마의 주민번호로 비밀번호를 바꿨다. 엄마의 번호로 나의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말이다. 여전히 엄마에게 경계 설정의 주도권을 주고 싶었다. 홀로 서기에 나는 어리고 여전히 엄마의 허락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라고 우기고 싶었다. 하루에 수십 번 엄마의 번호로 조합된 수를 누르며 엄마와 대화를 시도한다.
‘엄마 나 이거 해도 돼?’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재치 넘쳤던 엄마의 일상을, 나와 언니를 키운 현명한 엄마의 육아담을, 때론 엄마가 된 나와 나의 엄마를 비교하는 글을,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감당하기 힘든 날 일찍 나를 두고 떠난 엄마를 원망하는 글을 , 쓰고 또 썼다.
그리고 나는 매년 엄마의 기일에 추모글을 쓴다. 16년. 중학생의 나이와 같다. 기일이 다가오면 이젠 먼저 기억해 주고 올해 나의 추모글을 기다려주는 지인들도 있다. ’ 이번 글도 재미있었어’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엄마 없는 슬픔과 허전함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엄마를 위해 쓰는 글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모든 노력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슬픔을 잊기 위한 노력이었나 보다.
나는 올해도 이렇게 엄마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