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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레 Nov 01. 2023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해

아들의 사랑 고백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해’

중학생이 고백을 했다.

‘엄마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나는 엄마가 왜 이렇게 좋을까?‘


아마도 엄마가 너를 넘치도록 사랑해서?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해도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은 건 똑같았다. 나의 직업 특성상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보름 정도였다. 내가 한국에 있다고 해도 오롯이 함께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낮은 낮이라 실험실, 밤은 밤이라 실험실, 올빼미인 그는 나와 저녁을 먹고 내가 침대에 눕는 걸 확인 후 다시 실험실에 가서 일을 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해야 했다.


임신을 하고 휴직을 했다. 드디어 함께 보낼 시간이 생겼다. 모아 놓은 돈은 예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가정을 책임 지기 위해 그가 취직을 결정했다. 주중에는 회사 주말에는 실험실. 그전 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 일어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뱃속에 아가가 있었다. 아침 눈을 뜨면 아가와 인사를 하고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 아가와 함께 먹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14평 작은 아파트의 거실에 앉아 종일 FM 93.1 라디오를 들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함께 흥얼거리고 지루한 음악이 나오며 아가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뱃속 아가는 오전 11시에 하는 ‘풍류마을’ 특히 좋아했다. 신명 나는 우리 가락 소리에 아가는 열심히 내 배를 차며 춤을 추었다. 배 위로 존재를 드러내는 아가의 몸을 쓰다듬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키워 갔다.


임신 6개월. 오랜 투병을 뒤로하고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볼록 튀어나온 아가를 양손으로 받쳐 안고 나와 내 가족들의 지인을 맞이했다. 엄마를 보내며 곧 내가 엄마가 될 거라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엄마 힘을 내’

뱃속 아가는 내 배를 있는 힘껏 차며 무너지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출산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너무 바쁜 회사, 너무 바쁜 실험실. 여전히 나는 아이와 둘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함께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밥을 먹었다. 옹알옹알 나에게 반응하는 아가의 목소리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아가의 눈빛이 고마웠다. 종일 아가와 수다를 떨었다. 대화의 주제는 무궁무진했다. 날씨 이야기, 창밖 풍경 묘사,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야기, 나의 모든 생각이 언어가 되어 내 입을 통해 아이의 귀에 쏙쏙 들어갔다.


46개월 차이가 나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우리는 영혼의 단짝이었다. 나는 아가와 둘이 보낸 3년, 그 하루하루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가는 상실의 외로움을 달래줬고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느끼게 해 줬으며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게 했다.


아가는 나에게 넘치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줬다.

아마도 나는 중학생에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 같다.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앞으로 나아갈 힘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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